박규수는 그의 할아버지 박지원의 손자답게 어린 나이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중 돋보이는 것이 20세에 쓴 16권 16책의 <상고도회문의례>이다. 상고도회란 제목은 '상우고인尙友古人 - 옛사람을 친구 삼는다'와 '이문회우以文會友 - 글로써 친구를 모은다'에서 가져 온 말로, 이 책에는 그가 본받고 싶고, 친구 삼고 싶은 옛사람들의 개성과 특징이 그의 생각과 함께 담겨 있다. 그들과 대화하고 어울리고 싶다는 박규수의 소망이 담겨져 있는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이 좀 특별한 것은, 이런 선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줌과 동시에, 놀이를 통해 문장 연습을 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즉, "자, 내가 이런 얘기를 해주었으니  너희들도 이 이야기들 듣고 느낀 점을 4언의 문장, 5언 시, 혹은 가歌,, 곡曲 , 어느 것으로라도 한번 써 보렴." 이런 식이다.

놀이를 통한 학습은 당시에 유행하던 골패를 이용했다. 골패는 일종의 오락(도박)기구로, 32쪽의 나무 패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을 4번 던져 나오는 숫자에 따라 그 지시대로 부, 목, 표제어 및, 문체를 선택하여 글을 읽고 작문을 하는 것이 박규수식 골패 놀이 방법이었다. 
지시는 <尙古全圖>에 따랐다. <상고전도>는 말판이라 생각하면 된다. 정사각형의 판에 종횡으로 9 x 9 = 81의 네모 칸을 만들고, 중앙의 하나를 제외한 80개의 숫자를 (골패가 정해주는 숫자대로) 선택하여 찾아보면, 그곳에는 친절하게 다음과 같이 써 있다.

 <동씨가 세 가지 여가에 독서하다 >

1, 2가 나오면 4언의 글을 짓고 3,4,5,6이 나오면 오언시를 지으라.

놀이를 통한 학습방법은 근래에 각광을 받는 학습방법으로 박규수를 통해 그것을 본다는 것이 놀랍다. 박규수는 인간의 덕목으로 공부를 꼽으며 공부에 재미있고 흥미롭게 입문하는 방법을 말하고 있다. 박규수는 말한다.

여유있는 시간을 기다려 책을 읽고자 하면 한해를 마칠 때까지 책을 읽을 수 있는 날이 없다. 여유가 있을 때를 기다려 남을 구제하려는 사람은 죽는 날까지 남을 구제할 시간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야말로 여유가 없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옛사람은 "한가로울 때도 바쁜 한 순간이 있듯이 바쁠 때도 한가로운 한 순간이 있다"라고 하였다. 어찌 독서만이 그러랴? 무릇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이 말을 자신을 반성하는 도구로 삼아야 하리라. 이 이야기를 적어두어 옛일을 본받고자 한다.

박규수는 공부에는 때가 없고 여유가 그것을 담보해 주지 않는다 말한다. 박규수는 공부는 어린날의 입문을 주장하며 그들을 돕기 위해서는 골패(?)를 끌어다 교보재로 사용해도 좋다고 강조한다. 여타 유학자들이라면 금기사항일 터이다. 이 점이 박규수가 개화된 사람이며 실용을 중시하는 사람임을 말해준다.

상고도회는 방대한 양이다. 그러나 이렇게 방대한 양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읽을 필요가 없다. 골패를 던져 숫자대로 읽고 그 지시에 따라 글을 짓다보면 어느새 책도 다 읽게되고, 문장 실력도 느는 1석 2조의 효과를 노리는  교재라 하겠다. 박규수의 아이디어가 번뜩인다. 그 할아버지 박지원 역시 수레, 벽돌, 똥거름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당시로서는 파장을 가져 왔었는데, 이런 파격과 참신함이 피로 유전이 되는 모양이다.

박규수 문하에서 유대치 오경석 김윤식 김옥균 등이 나왔음을 주지의 사실이다. 박규수는 말년에 자신의 사랑방으로 찾아온 문객들과 자주 바둑을 두며 청담(淸談)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 청담 속에서 조선의 개화사상이 나와 꽃을 피운 것이다.

박규는 말한다. 오래된 것이 새로운 것이기도 하다고.
바둑이 바로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