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당(1629-1703)의 책을 읽다가 '점수(覘手)'를 안다면 바둑에서 질 일이 없다(不事不勝碁覘手)는 대목을 읽고 필자는 한동안 당혹했었다. 점수란 용어를 이해하지 못한 과문 탓이다. 그러다가 필자는 박세당의 또 다른 기록물인 연행록에서 점수의 의미를 알고 무릎을 쳤다. 점수는 점국(覘國)의 다른말이었던 거다.

점국은 정탐(偵探) 즉 간첩활동을 말하는 용어로 박세당은 바둑에서 상대의 수(의중)를 안다는 의미로 점수라 표현한 것으로 이해하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박세당은 완고한 성리학자다. 그의 이력과 간첩활동은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지만 박세당의 무신년(1668) 북경사행(使行) 기록은 그가 얼마나 충실한 정보 에이전트였는지를 보여준다.

박세당은 서장관(書狀官) 자격으로 사행길을 따라간다. 1668년은 병자호란이 끝난 지 불과 30여년 후로 대륙은 아직도 대청제국의 권력하에 통제되지 않고 복명(復明)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한족의 동요로 아슬아슬하던 때였다. 이런 대륙의 분위기 속에서 적응기를 갖고 있던 조선은 무엇보다 대륙의 동향에 목말랐고 동향파악에 필수불가결한 정보수집 활동에 나름대로 애를 쓰고 있었다.

박세당의 북경사행길은 의주를 통해 국경을 넘어 북경을 돌아 다시 의주로 귀국하는 순간까지 한시도 거르지 않고 정탐에 열중한다. 박세당의 관심은 군사 지리 사회동향으로 집중된다. 특히 박세당은 반청복명을 꿈꾸는 사회적 동향파악에 온힘을 기울인다. 중국 사행 곳곳에서 만나는 청국의 관원과 한족들을 보면 탈(?)나지 않을 정도의 유도질문을 던져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복명의 조짐에 신경을 쓰는 모습은 안스럽기까지 하다.

박세당은 성리학에 조금은 반발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곧잘 성리학에 대한 반동적 논쟁을 내놓다가 이단으로 몰려 고초도 겪는다. 그가 죽으면서 아들에게 “장례를 지낸 후에 아침저녁으로 올리는 상식(上食)을 설치하지 말라”고 유언한 것도 반동의 증거다. 이 말은 조선후기 성리학자들의 행동양식 표준으로 인식되어 오던 예론(禮論)의 근간을 흔드는 것으로서 당시 정치세력에게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박세당도 결국은 명을 그리워하고 청을 증오하는 조선 유학자였다. 박세당은 송시열이나 여타 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주자학파의 존주론자(尊周論者)였다. 그도 대명(對明)을 숭상하는 사상에서는 어쩔수 없던 존재였다. 박세당의 정탐 활동은 청국의 허실파악에 있었지만 그의 활동결과는 크게 소용되지 않았다. 박세당이 사행에 나선 시대 앞에는 강희제란 거대한 역사적 인물이 동아시아를 이끌던 타이밍이었기에 박세당의 노력은 그야말로 노력에 그치고 만다.

박세당의 유학자로서의 면모는 더이상 업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알려져 있다. 다만 바둑이라는 축소된 관점에서 바둑에 이기기 위해서는 상대의 수(의중)를 파악해야 한다는 말에 방점이 찍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