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바둑의 대모, 기타 후미꼬(喜多文子).

오청원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름은 잘 모르지만 소년 오청원을 친모마냥 보살펴준 여인을 기억할 것이다. 그녀가 프로였다는 것, 그리고 그녀가 일본바둑 여명기에 어느 정도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었다는 정도를 아는 사람은 일본바둑사에 지식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사실 필자도 일본바둑사는 잘 모른다. 일본 역사학계나 인접 학계에서 간헐적으로 나오는 바둑관련 논문 정도를 접하는 처지에서 최근 나온 논문 한편을 주목한다. 다니오카 이치로(谷岡一郞)가 발표한 '일본바둑계의 어머니 기타 후미꼬'다.

기타 후미꼬는 1875년 출생하여 다섯살 때 부모를 잃고 '하야시 사노'라는 프로기사의 양녀로 입적하면서 파란만장한 바둑인의 삶을 산다. '사노'는 어려서 바둑에 재능이 있어 그의 아버지가 '토자부로'라는 바둑고수에게 양자로 보내는데 토자부로는 저 유명한 바둑의 명저 '난가당당화'의 필자 하야시 겐비(林元美)의 친아들이다. 사노는 슈호(秀甫)가 방원사를 설립할 때 일정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사노는 양녀 후미꼬가 아홉살 때 바둑에 뜻을 두자 그 뜻을 확인하고 머리를 삭발케 한 후 입단할 때까지는 남자로 살라는 의지를 심어주며 채찍을 가한다. 후미꼬는 15세에 입단을 하고 머리를 다시 기른 후 기모노를 입게 된다. 후미꼬가 방원사의 예비반(일종의 연구생)에서 수련을 할 때 사범들이 슈호를 비롯한 '나카가와 카메지로' '슈에이' '다무라 야스히사'등 내로라하는 사람들이다.

후미꼬는 18세에 2단으로 승단한 후 일본 전통 예능가인 '기타 록페이타'와 결혼을 한다. 록페이타는 훗날 인간문화재로 성공한 인물인데 결혼 초기에는 후미꼬에게 자격지심(?)을 갖는다. 후미꼬가 미모의 프로기사로 '이토 히로부미'나 '도야마 미치루' 등 당대의 유력자들의 초대사범으로 잘 나갔기 때문이다. 후미꼬는 남편이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는 것을 알고 중대한 결심을 한다. 남편이 예능인으로 성공할 때까지 바둑을 접겠다며 이후 13년간 바둑계를 실제로 떠난다.

후미꼬의 의중대로 남편이 예능계에서 이름을 얻자 후미꼬는 다시 바둑계에 복귀를 한다. 복귀한 후미꼬는 슈사이, 인세끼, 세고에 겐샤쿠 등과 두점 바둑을 두어 이긴 후 4단으로 승단하고 곧바로 5단에 올라 1924년 설립한 일본기원의 배후에서 맹활약을 한다. 필자는 관심대상인 김옥균과 후미꼬의 접점을 궁금해 했는데 이 논문에서 그 점을 볼 수 없어 아쉽기는 했다. 어쨌든 후미꼬는 이후 많은 여성기사를 키워 일본 여성바둑계의 초석을 놓는 한편 소년 오청원의 대모를 자청한다. 오직 바둑으로만 천재를 간파한 일본바둑의 힘(?)이기도 하다.

오청원은 15세에 세고에 겐샤쿠를 가교로 일본에 와 '이누가이츠우시' ' 요시자와켄키치' '오쿠라키시지로' 등의 풍부한 자금지원을 받고 기타 후미꼬의 자상한 보살핌 속에서 그의 천재성을 발휘하게 된다. 오청원은 훗날 일본기원의 1층 로비에 있는 오쿠라와 슈사이의 흉상 외에 기타 후미꼬의 흉상이 없음을 안타깝게 지적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