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례 --------------

1. 淸國의 고수 '범서병'

2. 한수대가 누구인가.

3. 朝-淸 고수의 만남.

4.  기보 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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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륭4년(1740) 북경의 한 기원(棋院)에서는 전설의 10번기가 벌어졌다. 그림자의 '시양하', 바람의 '범서병'으로 불려지던 불세출의 두 고수가 마주쳤던 대청제국의 혁왕(奕王)을 가리는 대국(對局)은 북경의 기단은 물론 중국기단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범서병은 중국 절강성에서 태어나 어린나이에 바둑을 배워 20대초반까지 산동, 요동, 북경을 떠돌며 수많은 고수들과의 실전으로 초일류 고수가 되어 한성의 최강자였던 '부가록'을 4점까지 접으며 중국바둑의 신성(新星)으로 떠오른 사람이다.

시양하는 '혁리지소(奕理指所)'라는 바둑의 기리와 사고법 등을 고민하고 바둑의 전략을 궁리하여 책을 출간할 정도로 차분하고 사색적인 인물로 주소송(周小松) 등과 더불어 중국바둑의 적통으로 당시대의 바둑계의 기대를 한몸에 받던 입장이었다. 혁리지소는 '사고전서'의 도서목록에도 보이는 내용이 있는 책이다.

어쨌든 풍찬노숙의 몸으로 도산검림(刀山劍林)을 헤쳐온 범서병과 어떤 경우에도 무너질 것 같지 않던 시양하가 대청바둑의 지남(指南)을 놓고 벌인 대국의 향배는 자못 뜨거웠다.

당시 31세인 범서병과 30세의 시양하의 대국은 폭풍과 태산의 격돌 바로 그것이었다. 거칠 것 없는 쾌속행마, 순식간에 상대의 뇌리속을 간파해 내는 전광석화의 수읽기의 범서병과 안정된 모양과 고금의 전례수(傳例手)를 중요시하는 시양하의 대결은 혁신과 전통의 충돌로 실로 세계바둑사의 한매듭을 꾸미게 된다.

- 온갖 장식으로 치장된 장막 안에는 바둑판과 바둑알이 준비되어 있고 상수는 남쪽을 향해 앉아 있다. 그를 찾아온 하수는 북쪽을 보고 앉는다. 하수가 먼저 상수에게 인사를 하고 가져온 예물을 바치면 상수는 술 한잔을 그에게 내려준다. 하수가 술잔을 비우고 수건으로 깨끗히 닦은 후 술을 채워 올리고는 비로서 바둑은 시작된다.

명나라시대 북경을 다녀간 '마테오 리치'가 묘사한 중국바둑의 모습은 명나라시대의 바둑의 융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명말청초 중국의 바둑은 '황룡사' '서성우' '정난여' '오득금' 등 불세출의 기사(棋士)들의 출현을 가능케 했고 최고수를 가리는 승부사들의 숙명은 범서병과 시양하의 10번기를 불러내는 충분조건이었다.

조선의 관원 '김순협'이 북경을 출장다니던 시대가 이때다. 김순협은 중국외교의 실무를 담당했던 예조의 관리로 자신의 연행록에 주목되는 두명의 바둑인을 기록한다.

- 한수대 이세중이 바둑두는 것을 지켜보았다. 두 사람 다 묘수들이다.

'한수대'는 승정원일기에 등장하는 바둑의 고수다. 영조가 한수대가 그렇게 고수냐? 물었을 정도로 그는 당대 최고였다. 한수대는 영조의 지시로 요동에 귀양을 와있던 청의 '유대인'에게 파견되어 그의 바둑친구가 되는 임무를 완수한다. 바둑을 좋아하는 유대인과 친교를 맺어 훗날의 조선외교에 이용하자는 영조의 심모원려를 잘 보필한 것이다.

한수대는 김순협뿐만 아니라 서평군 '이요'의 사신단에도 군관의 신분으로 수행한다. 순전히 바둑을 잘둔다는 이유로 사신단에 발탁되어 북경을 무상으로 출입한 것이다. 사신단 안에는 말타기 활쏘기 그림 바둑에 능한 사람들이 많았다. 사신단의 임무가 당면한 외교뿐만 아니라 자국의 외교적 역량을 보여주고 상대국의 문화와 기술을 습득해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의 임금 영조도 알 정도로 고수였던 한수대가 북경에서 당대의 최고수로 이름높던 범서병을 찾지 않았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다. 과연 한수대는 누구인가.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