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서화 삼절(三絶)에 거문고까지 능했던 안평은 바둑 마니아로 옥으로 만든 바둑판과 바둑돌을 만들어 당대의 고수들을 불러 바둑을 두고 그들의 대국을 감상하며 즐겼다. '금기서화'는 고려시대를 거쳐오며 조선 상류사회의 문화트렌드로 자리잡은 것이라고 필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금기서화는 독자들에게 잘 다가서지 않는 모양이다. 도무지 금기서화가 무슨 말이고 의미이기에 강조하고 내세우는 것일까. 필자는 고려 사람 목은 '이색'의 인식을 소개하며 그 대답을 하고 싶다.
거문고
소리의 이치는 큰 무엇과 같지 않아서, 바른소리는 끊어지고 속된소리가 가득차도다. 줄이나 나무판도 손가락 움직임에 달린 것이, 다만 한촌의 사람마음에 달렸다네. (理象年來異大同 / 正音將絶俗誇雄 / 非絲非木還非指 / 只在人心方寸中)
바둑
타오르는 봄들판의 불길은 샘물의 그것과 같나니 강한것은 삼키고 약한것은 뱉는 것이 정해진 수순. 정년코 한수 한수가 쉽지 않으니, 승패가 한수에 달렸음은 분명하도다. (野火春泉勢自同 / 强呑弱吐定誰雄 /丁寧下手無容易 / 勝敗分明一着中)
글씨
흩어진 구름 닮은 글씨는 서로 닮기 어렵거니와 진초는 난분분 빼어나도다. 둥글고 파리하고 길고 짦은 것은 모두 아름답지만 육서의 방법을 벗어나는 것은 저어되도다. (浮雲字體竟難同 / 眞草紛紛儘逞雄 / 肥瘦短長俱媚嫵 / 只愁跳出六書中)
그림
모사한 걸 무엇으로 서로 다름을 비교할꼬. 까마귀떼 암수를 구별하는 것이 쉽던가. 머리 희어 꽃과 새들에 관심둘 일 아니나 눈앞의 산과 강을 그려볼 뿐이라네. (模寫何從較異同 / 瞻烏未可辨雌雄 / 白頭花鳥無心管 / 祇許江山入眼中)
이색의 목은집에 나오는 이 네 편의 시는 금기서화를 말한 그 어떤 사람들보다 찰지고 튼실하다. 이색은 이미 '아버지의 바둑'이란 수필로 바둑인들에게 친숙하지만 이런 시를 또 남겨놓아 바둑인들을 즐겁게 한다.
사족이지만 옛사람들은 현대인을 능가하는 문학적 감수성과 시심(詩心)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들은 일상에서 마주치는 현실과 충돌하며 그 공간 안에서 시심을 키우고 문단을 일궜다. 그들은 시를 짓고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전인격적 존재가 될 수 없고 인간의 감수성을 모두 발현할 수 없다고 믿었다.
옛사람들은 완전한 인간의 감수성은 시심과 풍류가 조화된 어떤 것으로 보았다. 그들은 바둑과 음악 그리고 그림으로 전인적 인간상을 이룰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금기서화의 출발은 바로 이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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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선달
달선공팔
고기뀐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