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수의 저서  '상고도회문의례'는 선인들의 에피소드를 골패(놀이)를 시연하면서 느끼고, 문장, 시, 가(歌), 곡 등을 배우기 쉽게 유도하는 초급 학습교재라 하겠다. 박규수는 외교 행정가로 구한말의 풍운을 살면서 선진문명의 조선 도입을 끝없이 주창하던 선각자답게 이 책을 스무 살 남짓한 때에 쓴다.

골패는 오락(도박) 기구로 32쪽의 나무패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을 4번 던져 나오는 숫자에 따라 부, 목, 표제어를 따라 4언 또는 5언 시를 짓게 하는 것이 박규수가 만든 골패식 놀이다. 노는 방법은 상고전도(尙古全圖)를 따랐다. 상고전도는 말판으로 보면 된다. 말판은 정사각 종횡으로 9x9=81도의 칸에 천원 한 자리를 제외한 80개의 숫자 위에서 승부를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

박규수는 학문을 하는 방법에 어린시절 시작하는 것보다 좋은 방법이 없다고 보았다. 박규수는 모든 학문은 책읽기로부터 시작한다고 본다. 박규수만큼 책읽기를 권장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박규수는 시간을 핑계로 책읽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여유 있는 시간을 기다려 책을 읽고자 하면 한해를 마칠 때까지 책을 읽을 날 없다. 여유 있을 때 남을 돕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방법 없다. 여유도 바쁜 순간을 쪼개 한 순간이다. 독서를 한다는것도 그런 것이다.

박규수는 당시대 가장 인기 있던 놀이 중의 하나인 골패를 이용하여 아동들의 학습욕구를 고취하는 방법을 찾는다. 책읽기를 등한시하는 풍토는 과거도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박규수는 연암 박지원의 손자로 조선 개화의 등불이었다.

조선의 아동들이 상고도와 같은 놀이를 통해 학습의 재미(?)를 느꼈다면 어른들은 '팔선와유도'를 통해 원숙한 놀이와 학문의 장을 펼친다. '팔선와유도'는 유본정이 지은 책으로 어른들의 풍류를 담아낸 놀이를 기록한다. 조선 8도에 가장 이름난 명승 80곳을 간추려 시인, 술꾼, 승려, 기생, 가객, 바둑고수 등으로 나뉜 패를 갖고 노는 놀이로 한때 조선의 양반 사대부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놀이다. 일명 '남승도놀이'로도 불린 팔선와유도를 유본정은 이렇게 말한다.

주사위를 던져 점수에 따라 길을 나서 자신이 멈추는 곳에서 술을 한잔 마시고 시를 짓는다. 유람지를 구경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술잔의 수나 시를 짓는 수를 비교하여 승부를 내니 선비의 놀이로 근사하다. 바둑과 비교할 만하다. (於儒者事最近則比之博奕亦云賢矣)

팔선와유도에서 기객(棋客)의 자리로 지정된 열 곳의 명승은  청간정(간성), 죽서루(삼척), 월송정(평해), 범어사(부산), 강선루(성천), 금수정(영평), 속리산, 한라산, 서사루(송도) 등으로 하나같이 절경의 명승지다. 청간정 죽서루 월송정 등이 관동팔경으로 유명한 곳임은 너무도 잘 알려진 것이다.

30년대 동아일보는 성천의 강선루에서 벌어졌던 바둑대회를 기록한 바 있다. 여름 지역의 유지들이 모여 황해지방의 바둑고수들을 불러 놓고 연 바둑대회로 '피서를 위한 바둑대회'란 타이틀을 달고 있다. 아름다운 누정 위에서 둔 한판의 바둑은 참으로 신선하고 운치가 있다. 놀이를 공부와 연결하고 놀이를 풍류와 연결하여 가치부여를 하던 그 사람들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