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달이 고아한 선비 엿보며
작은 창에 환한 빛을 비추네.
옛스런 두건을 단정히 쓰고
새로 입은 겹옷은 서늘하여라.
섬돌에 서리꽃 눈이 부신데
티끌 하나 보이지 않네.
뭇 짐승들 저마다 둥지에 들고
고요한 생각 오롯하고 은미하여라.
맑은 얼굴의 어린 아우가
나를 보며 영기(靈機)를 물어보기에
마음을 원만하게 할 수 있다면
옛사람처럼 될 수 있다 말해 주었네.
문득 다시 충고의 말을 하려니
밤하늘에 기러기 울며 가는군.

이 시는 이덕무가 어느 새해를 맞으며 동생에게 써준 글로 참으로 우애 있는 형제의 정을 느낄 수 있다. 이덕무는 친구들에게도 응당 이런 따뜻한 마음을 보여준다. 그의 문집 속에 증약(윤가기)에게 보낸 편지 한 통이 전하는데 무엇인가 마음이 불편함을 표시하면서도 완곡하고 밀도 있는 문장으로 친구에게 조언을 하고 있다. 이덕무는 친구에게 기보(棋譜) 한 권을 편지와 함께 보내고 있다.

이덕무는 시간이 금이라 말한다. 시간을 바둑판으로 삼고 시간에 실려가는 몸을 대국 상대로 삼아 열심히 산다면 세상에서 못이룰 꿈이 없고 못이룰 성취 없음을 말하고 있다. 이덕무는 '혁기론'이란 글에서 바둑에 대한 비평적 의견을 피력한 바 있지만 이덕무의 바둑에 대한 진심은 그렇지 않음을 그의 다른 글에서 볼 수 있다. 아래의 글이 대표적인 것이다.

청장관전서는 이미 20년 전에 국역이된 책이지만 이 부분은 필자가 손질(?)을 하여 소개한다.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원본을 찾아 대조를 해보시기를 바란다. 책읽기는 원본이 최선이다. 소개본이나 번역본은 절대로 원본의 맛과 향을 전해주지 못한다. 이덕무는 여러 방향에서 바둑을 말한다. 공적인 면에서는 바둑이 세상을 망친다면서도 사적인 면에서는 이렇듯 바둑이 삶이고 인생이다 말하고 있다.

댁은(증약) 할일이 없는 듯 이곳에 와서 한 살을 더 먹고는 한강의 북쪽으로 돌아가시니 마음이 흡족합니까? 공가산 촉산땅으로 들어가 3천 리나 되는 잔도(棧道)를 불태우고, 음평(陰平)에 다시 수병(戍兵)을 설치하고, 어복(魚腹)에 호조(虎鳥)ㆍ용사(龍蛇)의 진(陣)을 배치한다 하더라도, 세월이 한번 몸에 달라붙게 되면 원규(元規)의 티끌은 포규선(蒲葵扇)으로도 막을 수 없고 세월이란 비록 날마다 목욕을 한다 하더라도 조금도 씻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갖고 있던 기보(棊譜) 한 권을 족하(足下)에게 드릴 터이니, 1년 360일로 바둑판을 삼고 나의 재업(才業)과 연기(年紀)를 대국인(對局人)으로 삼은 다음 시간에게 쾌승(快勝)하는 것으로 요법(要法)을 삼아, 저 시간을 무심히 흐르게 하고, 나의 재업은 십분 힘을 발휘하여 만전의 세력을 보존하면서 두게 하면 마치 샘물이 솟듯, 불이 타듯, 토끼가 뛰듯, 매가 내려앉듯한 기상으로 한번 큰 소리를 치면 우리 군사가 승리를 거둘 것입니다. 내년의 바둑판도 이와 같이 하고 내후년의 바둑판도 또 이와 같이 하면 비록 1백년일지라도 나는 편안할 것입니다.

(曾若空然下平地。瞥眼之間。添了一齡。復入北漢去。於心快乎。假使逃入蜀山中。燒三千里棧道。陰平。更設戍兵。魚腹。排虎鳥龍蛇之陳。然何來新歲月。從天而降。粘着渾身。則元䂓塵。猶可以蒲葵扇障之。此雖日萬洗沐。不可少解脫。我有一棊譜。持獻足下。以見在年三百六十日爲紋楸。以吾之才業之年紀爲對局人。長以快勝年紀爲要法。使彼爲無心之着我才業。則加十分力。保萬全勢。泉漲火燒。兎起鶻落。大喝一聲。我師得雋。來年之局。如此。又來年之局又如此。雖百年。我其日休矣. -청장관전서 16권 중)

이덕무는 어린이 바둑대회를 말한 바도 있다. 본인은 바둑을 잘 두지 못하고 잘 두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서도 바둑을 비교하여 친구를 조언하고 격려하는 점을 보면 바둑을 잘 모른다던 말은 겸양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