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황석굴에서 발견된 벽화에는 10세기 바둑두는 모습이 있어 돈황지역에 최소한 어떤 형식(?)의 바둑문화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1930년대 발굴된 티벳의 '라사' 근방 '매트로콩가' 17도 석국은 연대가 무려 기원전 수세기로 추정되어 바둑의 기원을 놓고 설왕설래하는 바둑문화계(그런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를 놀라게 했다.

17도 바둑은 바둑의 종주국인 중국에서 수말당초(隨末唐初)까지 두어지던 바둑이기에 돈황벽화나 매트로콩가의 17도 석국은 바둑의 기원과 보급사(史)를 동아시아 삼국에 국한하지 않고 아시아 전체로 확장하는 의미가 있었다. 바둑이 13도,17도,19도로 반상을 확대하면서 발전해온 것도 놀랍지만 그 도저한 시간 속에 1950년대 불쑥 우리 앞에 나타난 17도 바둑은 놀랍고 경이로운 것이었다.

물론 바둑이 문화사 속에 차지하는 부분이 미미하고 약소한 탓에 바둑지를 위시한 몇몇 마니아들의 논의에 그치고 철저하게 잊혀진 것이지만 바둑의 어제와 오늘을 묻는다는 이 칼럼의 취지상 고대바둑의 화석인 '시킴'바둑의 모습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시킴바둑이 세상에 불쑥 나타난 것은 1954년 일본을 방문한 시킴왕국의 한 왕자 때문이다. 그는 17도 가죽바둑판(?)을 갖고 일본을 방문하여 당시 바둑의 강국이던 일본에 시킴바둑을 소개했다. 이 기록이 일본 '위기'지에 상보로 보도되어 있다.

시킴식바둑의 룰은 생소한 것이었다. 흑백이 각각 6점씩 배치하고 잡은 돌을 모두 돌려주는가 하면 단수를 하여 잡을 수 있는 수순에서 곧바로 착수할 수 없는 룰과 사귀생에 30집 통어복에 20집을 어드밴티지 하는 등의 룰은 일본식 바둑과는 너무도 다른 파격이었다. 시킴바둑의 배치(配置)를 하고 두는 방식이 중국의 '4배자'나 조선의 '16배자' 형식과 비교되면서 동아시아 고대바둑의 원형의 모습은 아닌가 하여 관계자들을 흥분시켰다.

시킴왕국은 1975년 인도와 합방된 우리나라의 충청북도 정도의 작은 왕국이었다. 시킴은 서로 네팔, 동으로 부탄이 자리한 히말리야의 등뼈 같은 곳으로 해발 200미터에서 8560미터인 '칸첸중가'가 온전하게 들어찬 산악국으로 고대로부터 철저하게 외부와 고립된 지역이다. 시킴은 '파드마 삼바바'라는 인도의 승려가 티벳에 불교를 전파한 8세기부터 불교를 받아들여 '파드마 삼바바'의 예언에 따라 '욕섬'에 시킴의 첫 번째 왕 '푼쏙'이 세웠다. 이어 왕권을 받은 시킴의 두 번째 왕 '텐성 남걀'이 욕섬에서 천도하여 다른 곳에 수도를 옮기고 왕조의 질서를 세운다.
세 명의 티베트 승려가 강톡 부근에서 파드마 삼바바의 예언서에 의해 찾아낸 푼쏙이 왕위에 오르는 신화적 건국 과정을 거쳐 시킴왕국은 20세기까지  16대를  역사를 이어온 왕조다.

1956년 일본 위기지에 실린 시킴왕자와 일본기사의 기보.
(17도 바둑으로 흑백 6점씩을 배치하고 시작하며  단수로  따낸 석점은 가일수 할 수 없다는 룰로 흑이 사는 것을  볼 수 있다. 더구나 계가법에서 4귀생에 30집을 어복에 20집(안영이, 월간바둑)을 더해주는 룰로 오늘날의 바둑과는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특히 시킴지역은 티벳불교의 사대파 중 하나로 스승과 제자의 은밀한 관계로부터 마음을 전하는 캬큐파(백교)의 영향으로 이웃나라인 네팔이나 부탄보다도 더 외부와 고립되어 히말리야의 오지 중의 오지로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캬큐파를 위시한 티벳불교는 12년마다 한번 돌아오는 원숭이해 후년후월(猿年猿月 ) 11일에 연화생보살 즉 '파드마 삼바바'의 탄생일을 축하하는 대법회를 중요시한다. 티벳인의 생활속에 12지신(神)의 잔상이 자리한 것을 알 수 있다. 이 현상은 불교가 티벳의 토속신앙인 본교(本敎)와 융합된 것으로 보여진다.

시킴을 포함한 티벳지역에 이미 간지 12지신(神)이 있었고 그 영향 아래 바둑에 12점을 배치하는 형태가 도출된 것은 아닌가 하는 연구 과제를 생각할 수 있다. 17도 바둑은 시킴 외에 부탄 네팔 등에서도 발견된다. 시킴뿐만 아니라 티벳 전지역에 이 형식의 바둑이 두어졌다는 근거가 된다 하겠다.

이제 바둑의 기원설은 '요순설' '점복설' '시킴(티벳)설'로 삼분된 듯하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점복설을 믿으면서도 요순설보다는 시킴설이 과학적이고 타당하다고 본다.

 
주) 기보는 "위기"지의 것을 문용직 님이 편의에 따라 기호를 붙인 것을 얻어왔다. 국민일보가 출처다. 월간바둑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