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사후 수년간 수렴청정을 한 정순왕후가 어린 군왕이 무작(舞勺)을 알 나이가 되었다며 수렴을 거둔다. 무작은 술과 춤을 말한다. 조선은 대체적으로 남자가 13세가 되면 술과 춤이 허락되었다. 소학은 13세가 되면 술과 춤 그리고 활쏘기를 배운다 했다. (十有三年學樂誦詩, 舞勺, 成童舞象, 學射御) 다시 말해 조선은 13세를 성인으로 본 것이다.

10세 미만에 혼인을 한 왕실의 자식들이나 양반가의 자식들이 13세를 기준으로 아내와 합방이 허락(?)되었으니 조선의 13세는 아이와 성인을 가르는 기준이라 하겠다. 술과 춤은 여흥을 말한다. 술과 춤 속에는 기녀대동이라는 성의 탐닉까지도 반영되는 말로 자칫 방종하고 사치한 놀이로 빠지기 십상이다. 이 불편한 혐의를 벗기 위해 첨가된 것이 바로 금기(琴棋)다. 금기는 거문고와 바둑이다.

술과 춤 그리고 음악과 바둑의 이해는 조선시대 성인의 척도이자 품위의 기준이다. 이것을 갖추는 것은 양반 사대부의 체모에 관계된 것이기도 했다. 음악과 무용 그리고 바둑을 이해할 정도의 인물이라면 오늘날의 기준으로도 교양인의 범주에 들 것이다. 악과 무를 알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학식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조선시대의 악과 무는 그저 술 한잔 먹고 노래방에서 고성방가하는 오늘날의 그것과는 근본이 다르다.

음악은 내면에서 움직이는 것이고 예의는 외면에 나타나는 것이다. 하여 예는 겸양을 중하게 여기고 음악은 감성을 중하게 여긴다. (樂也者動於內者也.禮也者動於外者也)
-예기(樂記)

고성방가에 불과한 오늘날의 음주문화와 비교하면 어떤가. 춘추시대 동양의 음주문화의 일단이다. 조선시대의 악과 무는 음감과 춤의 동작 하나하나에 어떤 의미와 덕목을 부여했고 악과 무를 실현하는 사람과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 모두가 그것을 공감했다. 음악과 춤을 이해할 정도의 사람은 문화인이다. 조선의 문화인은 시서(詩書)를 기본적으로 습득하고 악무(樂舞)를 보충한 지경에 금기(琴棋)를 첨가했다. 거문고는 악이기는 하지만 누구나 실현(實現)해야 하는 악(樂)이기에 의미가 다르다. 바둑도 실현의 그것이다.

악과 무는 스스로 터득하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것이나 거문고와 바둑은 스스로 터득하고 실현할 때 그 맛을 알게 된다. 거문고와 바둑의 실현은 습득하기 힘든 탓에 한번 습득을 하고 나면 평생 전심(專心)하게 된다. '마니아'가 된다는 말이다.

조선은 서권기문자향을 강조한다.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지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룬 인격체를 완전한 인간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완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학문을 통해 지성을 배양하는 것 못지않게 예술을 통해 풍부한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비들은 시모임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시회를 여는가 하면, 그림을 그린 후 서로 돌아가며 감상하는 품평회를 빈번하게 가지며 스스로를 연마했다. 악과 무의 이면에는 이렇게 감성 훈련이라는 목표가 있었다.

글을 짓고 쓰는 데도 원칙이 강조되곤 했다. 손끝의 잔재주 대신 정신의 품격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추사 김정희는 “가슴 속에 만 권의 책이 들어 있어야 그것이 흘러 넘쳐서 그림과 글씨가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서권기(書卷氣) 문자향(文字香)'이란 말이다. '서권기'란 책에서 나오는 기운을 말하며, '문자향'이란 글자에서 나오는 향기를 뜻한다.

글에 의미가 있어야 하고 글씨에도 뜻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악과 무는 의미와 뜻을 아는 사람을 더욱 여유롭고 너그럽게 한다고 믿었다. 그것은 공자가 악경(樂經)을 강조할 때부터 인식된 것이다. '금기'는 문자향서권기를 알고 여유와 너그러움을 갖춘 인격에 한껏 품위의 가치를 강조한 말이다. 거문고와 바둑이 '문방아기'로 주목된 이유다.

혹자는 조선의 한다하는 유학자들과 바둑이 괴리되어 있음을 말하곤 한다. 그것은 단편적인 생각이다. 이황, 이이, 기대승, 정약용, 한원진, 최한기,박규수 등 조선성리학의 골수들 모두 바둑을 이해했고 즐겼다. 그들 모두 수 편에서 수십 편씩 바둑에 관한 글을 남기고 있다. 근거가 있기에 최남선은 "조선의 모든 놀이 중의 왕이 바둑이었다"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