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는 바둑을 문방아기(文房雅伎)라 했다. 이 말은 정조가 처음 한 말은 아니다. 옛말을 들어 바둑을 논하며 한 말이다. 文房은 유교시대 선비라 부르던 사람들의 방(房)이다. 문방에는 사우(四友)가 있다. 붓, 먹, 벼루, 종이다. 선비가 문(文)과 덕(德)을 행하는 자리에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 사우다.

아기(雅伎)는 고상한 취미다. 선비가 문과 덕을 행하는 것은 사우(四友)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선비는 문과 덕을 닦고 실행하는 한편 바둑과 거문고를 곁에 두고 애지중지했다. '장혼'은 '계곡집'에 문방에 사우와 아기가 함께(四友雅伎同類) 갖추어진 이유를 말한다.

- 업무가 끝나면 편안하게 복건과 평복 차림으로 작은집을 짓고 들어가 쉰다. 방안에는 거문고와 바둑판 서책을 두고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옛날의 학자들은 열심히 공부를 했지만 유식(遊息)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장혼은 선비는 문과 덕도 중요하지만 문과 덕을 돕기 위한 고상한 취미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공부와 휴식을 함께 중요시 하는 오늘날의 관점에서도 타당한 말이다. 장혼보다 조금 후대 사람인 '이유원'은 '임하필기'에서 선비의 문과 덕을 돕은 것으로 거문고의 화락과 바둑의 고요함만한 것이 없다 했다.

문방은 조선문화의 가장 중요한 트랜드다. 조선인은 누구라도 문방의 삶을 꿈꾸고 흉내라도 내고자 했다. 선비의 방을 고상하게 해주고 선비의 품위를 높여주던 바둑이 조선후기로 오면서 폭발한 것도 사실 문방의 아우라다.
'김이양'은 조선인은 모두 타희지사(惰嬉之士)를 꿈꾼다 했다. 옷차림이 화려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매를 맞은 듯 수모로 알았고 바둑을 모르면 본업을 잊은 듯 근심걱정거리로 안다 했다.

'이상수'도 '전가잡훈'에 김이양과 비슷한 말을 한다. 이상수는 당금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잡기가 투전과 바둑이라 했다. 투전과 바둑의 유행이 나라를 망칠 정도라는 것이다. 장혼 이유원 김이양 이상수는 비슷한 시대의 사람들이다. 이상수는 투전과 바둑의 지나친 유행을 걱정하며 자못 진지한 논설을 설파한다.

- 잡기의 본질은 놀이다. 놀이는 놀음이 되기 십상이다. 놀이가 노름이 되고 놀음은 패가망신을 부른다. 투전을 박멸해야 한다. 바둑은 투전에 비교할 수 없는 단아(端雅)한 잡기다. 그러나 노름이란 점에서 같은 것이 되었다.

이상수는 투전은 논외로 치고 바둑을 운치 있고 격조 있는 놀이로 인정을 하면서도 조선인 누구나 바둑에 몰두하여 생업을 돌아보지 않는 지경에 이름을 경계하고 질타한다. 무엇이든지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한 것이다. 불가에 여래장심(如來藏心)이란 말이 있다. 굳세고 참된 마음이란 뜻이다. 맹자에 '혁추'가 바둑을 가르칠 때 했다는 전심치지(專心致志)와 같은 말이다. 

문방을 지키던 선비들이 주목한 것도 바로 이것이다. 여래장심하고 전심치지를 잊지 말아야 할 찰지고 단단한 공부에 바둑과 거문고가 필요했다는 것은 바로 바둑이 담아내고 있는 전심(專心)이다.

   (장서각소장품)

 석인에 바둑의 타희지사가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