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은 자연지도(自然之道)다

역사 속에서 스스로를 개라 칭했던 비슷한 시대의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조선땅을 살았던 허균(1569-1618)이고 또 한 명은 이탁오(李卓吾1527-1602)다. 허균은 조서후기를 통해 가장 멸시받고 저주를 받았던 문인이고 이탁오는 허균을 뛰어넘는(?) 문제의 인물이다. 그러나 허균이나 이탁오는 16세기 이후 조선과 명나라의 문원을 종횡으로 누빈 간단하지 않은 인물들이다.

'고염무'는 이탁오를 '자고이래 아무 거리낌 없던 소인배'라 했고 '장문달'은 '미친 인간이 인륜을 망치고 행동이 호랑방탕하다'했다. 허균을 조선의 도깨비며 광인이란 평가를 서슴지 않은 조선 문원의 주류들의 평가와 비슷하다. 이탁오는 공리공담과 서자서아자아(書自書我自我)에 빠져 입으로는 도(道)를 외치고 행동으로는 온갖 모리배짓을 일삼는 시대의 주류들을 공격한다.

그의 필설에 공자도 주자도 절단(?)이 났다. 이탁오가 이단이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이탁오는 중국 천하를 떠돌며 많은 사람과 교제를 했다. 이탁오는 바둑을 좋아해 허균과 마찬가지로 바둑을 친구 삼아 유유자적한다. 이탁오는 바둑에 잠시잠깐의 시름을 잊는 단계를 벗어나 자신이 좋아하는 친구들이란 글을 남긴다. 제목이 이생십교문(李生十交文)이다.

가장 좋은 친구는 함께 술을 마시는 사이다. 그 다음 친구가 시정(생활)에서 만나 사귀는 사이다. 그 다음 좋은 친구가 함께 놀러다니면 즐거운 사이다. 기예(伎藝)가 있다면 금상첨화다. 기예는 거문고, 바둑, 활쏘기, 그림이다. 이들 중 고수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其中達士高人未可卽得). 뛰어난 기예를 가진 사람들은 거의 신이다(但其伎精則其神王).

이것은 속되거나 악착스럽기만 한 옹졸한 무리들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경지다(卑卑瑣瑣之徒所能到也). 잠시 그런 사람들과 함께 놀아보면 심신이 상쾌해지니 옛것을 찾거나 도덕을 살펴 인의를 설파하는 것보다 훨씬 유익함이 있다(談道德說仁意乎).

이탁오는 바둑을 음악에 비교하여 설명한다. 거문고 한 곡조를 연주해도 연주자와 청취자의 마음에 따라 맛이 다르다는 것이다. 바둑이나 활쏘기, 그림의 속성도 같은 것이라 한다. 이탁오는 바둑, 거문고, 그림 등의 감각은 원래 자연의 도(自然之道)라고 한다 자연의 것이 사람의 손을 통해 오묘한 경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得手應心其妙若此也).

바둑의 속성을 자연에서 궁리한 이탁오의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갖 허접의 놀이를 자연의 도에 비교한 것을 가볍게 넘기지 말자. 이탁오는 그저 술 한잔 먹고 바둑 운운하는 정도의 식견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내공의 소유자다. 그는 무려 80년의 생을 유불학을 파던 사람이다. 그의 제자 중에 원굉도 같은 중국의 천재가 배출되기도 했다.

바둑을 도라 말하던 사람들의 논리는 사실 허접(?)하다. 오청원의 논리도 별다른 게 아니다. 하여 이탁오의 말은 오늘도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