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인 중 다소 특별한 사람들이 있다.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 박제가 등은 위항인들 중에서 학자이자 성군이던 정조의 발탁으로 나름대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다. 이들은 '후4대가'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졌고 학문적 언어로 실학파라는 말로 대접(?)을 받는 사람들이다. 동시에 이들 모두는 바둑에 대한 기록들을 남겨 바둑인들을 즐겁게 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실학파는 조선 후기 '이용후생경세치용' 하자던 사회 운동이다. 우리는 실학파를 암울하던 중세 봉건시대에서 근대라는 신천지로 안내하는 사상의 조타로 배웠고 또 그리 알고 있다.
실학파 중 박제가는 단연 발군이다. 그는 서얼 출신으로 타고난 재주가 있어 정조의 발탁으로 규장각 검서관으로 자신의 포부를 펼친다. 박제가는 초 일류 시인이었다. 그는 일류의 문장과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심원한 학문적 역량을 자랑(?) 했다. 박제가의 시는 청의 유력 학자 '이원조'에게 당 시인 백락청에 버금간다는 평을 받은 정도다.
-박제가의 시는 볓처럼 반짝이고 조개처럼 광이 나며 이무기가 노는 듯하고 언덕의 그늘같이 어두우며 구름의 음산함을 닮았다. 마르고 건조함이여 봄날 냇가에 핀 꽃과도 같으니 아 천하의 기이한 문장이로다.
(초당집)
박제가는 연경의 유리창에 들어와 있는 선진 문물을 조선에 들여올 것을 주창한다. 새로운 사조만이 조선을 부강케 한다는 것이다. 정조는 박제가의 이런 생각을 주목하고 그를 이용한다. 유득공 이서구 이덕무 등도 마찬가지다. 성군 정조의 인물 사랑을 포장은 하지 말자. 정조는 실학파에 대해 냉정했다.
-이덕무 박제가 등의 문체는 패관소품이다. 내가 이들을 내각(조정)에 두는 것은 이들의 문체가 좋아서가 아니다. 다만 이들의 처지가 특이하고 스스로 하고자 하는 표방이 있기에 한번 길러 보는 것이다.
(홍제전서)
조선실록 속의 정조의 박제가 평은 한술 더 한다. 박제가를 비방하는 심환지의 말에 찬동을 하고 있다. 박제가는 근무처에 책상을 들여놓고 업무를 보았다. 이것을 본 심환지가 한마디 하자 내 돈으로 사다 일을 보는 것이라며 책상을 엎어버린다. 심환지는 이 사건으로 박제가에게 감정이 있었다.
-격률을 모르고 경솔한 인물이니 신경 쓰지 마라.
정조는 실제로 박제가의 문체가 순정하지 못하다 하여 반성문을 쓰게 한다. 박제가는 이렇게 반성문을 쓰고 있다.
-신은 13경을 날줄로 삼았고 25사를 씨줄로 삼아 서로 얽어 근본을 따르고자 하는 것이며 실용에 귀일토록 할 것입니다.
(초당집)
정조는 즉위 후 대대적인 문체개혁 운동을 전개한다. 6경에 근본을 둔 고문(古文) 정신을 되살려 문란한 사회의 기풍을 바로 잡자는 것이다. 정조는 실학파 중 대장격인 박지원을 문체 타락의 원흉으로 지목하고 또 한명의 탁월한 문인인 '이옥'을 문장이 기이하다 하여 귀양까지 보낸다. 박제가의 실학은 한마디로 화명매방(華名媒訪)하다.
-우리나라가 중국에 가깝고 성음이 대략 같기에 우리가 말을 버리고 중국말을 쓴다해도 무방하다. 그렇게만 하면 오랑캐라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되고 주.한.당.송의 풍속이 되는 것인데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육서책)
나는 박제가를 평가할 생각이 없다. 그럴 입장도 되지 못한다. 그저 박제가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놀랍고 흥미롭다. 지나친 미국주의가 조승희 같은 사건을 부르듯 박제가의 모화주의는 정조가 죽자 바로 화가 되어 자신에게 나타난다. 종성땅으로 귀양을 간 것이다. 화명매방한 죄, 서학 근친의 죄가 박제가에게 주어진 죄명이다.
박제가는 종성에서 5년을 보낸 후 고향으로 돌아와 선영에 고한다. 1805년 4월7일에 쓴 이 글이 그의 마지막 글이다.
小子有北不死, 歸骨松楸感恩造之無窮,異沒齒于先疇.嗚乎風流渴矣,
綺語絶矣. 考德問業今其蔑矣.
소자 북쪽에서 죽지 않고 해골이나마 부모님 곁으로 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임금의 성은이옵고 뼈와 이빨을 선영에 뉘려니 오호라 세상의 기풍은 모두 말랐나이다. 아름다운 글은 모두 끊겼으니 덕을 살피고 학문을 묻는 것도 이제 허무해졌나이다.
(초당집)
박제가는 이 글을 쓴 지 18일 후인 1805년 4월25일 56세로 죽는다. '북학의'는 박제가가 연경을 다녀온 보고서로 5백 편의 연경록 중 발군으로 꼽힌다. 박제가는 북학의 곳곳에서 바둑을 두고 바둑 두는 것을 구경한 기록을 남긴다.
연행의 길고 긴 여행길에서 즐거움이란 오직 바둑뿐이다. 북학의는 좋은 책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책을 읽는 사람은 주마간산 해선 안된다. 숲도 보고 나무도 보아야 한다. 서점에 있는 책들은 너무 주마간산이다. 어디 주마간산만이랴, 편저자의 생각이 본의를 대신한다. 독자들은 편저자의 생각을 읽고 원저자를 다 이해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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動善時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