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의(1786-1865)는 다산 정약용과의 교류와 차의 재배와 생육에 대한 저술로 세상에 많이 알려진 사람이지만 기실 그의 내력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필자는 한적을 읽으며 불교의 책 또한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은 덕분에 조선의 유학과 승려들의 수준을 조금은 가늠할 수 있다고 본다. 사실 조선의 유학과 승려들의 학문의 수준 차이는 비교할 수 없다.

그것은 당시대에 승려들의 진출 통로가 엘리트들의 기피 대상이었고 사회가 불교를 극심하게 천대하는 상황에서 필연적일 일일 터이다. 겨우겨우 뜻있는 몇몇의 학풍에 기대어 유지되던 조선 불교는 선사니 화상이니 하며 고승으로 일컬어지는 인물들이 있었으나 왜 그들이 고승인지를 검증(?)할 수 있는 자료도 별로 없는 실정이다.

조선 후기의 불교는 한마디로 황폐 내지는 초토화라 할만하다. 그러나 그 속에서 법등을 끌어안고 법맥을 지킨 사람이 있으니 초의가 그런 사람이다.

초의는 무안에서 태어나 16세에 평안도 운흥사에서 출가를 하여 24세에 서남해에서 다산 정약용을 만나 제자 되기를 자청한다. 당시 정약용은 48세였다. 다산은 강진 유배지로 간혹 차를 가지고 찾아 오는 초의를 마다하지 않았고 공부를 하고자 하는 열정을 좋게 받아들여 자신의 유학의 정수를 가르켜 주는 데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 편지는 초의가 다산을 떠나 안부를 묻는 문안 시 겸 서찰이다.

富送人以財, 仁送人以言, 今將辭夫子,可無攸贈施,

先敬舒陋腹, 請陳隱凡前

眞風遠告逝, 大偉斯與焉, 閭巷滿章甫,千里無一賢,

州里旣愁愁, 蠻貊理固然.

我生當此時, 質亦非諶姸, 所以行己道, 將向問無緣,

歷訪芝蘭室, 意是鮑魚廛, 南室窮百城, 九韋靑山春.

(부자는 재물로 안부를 묻고 어진 자는 좋은 말로 평안을 묻지만, 오늘 이 사내는 달리 보내드릴만한 것이 없습니다.

다만 먼저 손을 모아 마음속을 가다듬고 산수간에 계신 선생께 인사를 묻습니다.

세상에 진실이 떠난 지는 오래고 크게 어지러운 풍토가 가득합니다. 길거리에 군자인 척하는 사람은 넘쳐나도 천리간에 어진 사람은 없으니 세상이 이 모양이 된 것은 오랑케 땅이기에 그러하겠지요.

저는 지금의 시대를 그렇게 봅니다. 재주는 아름답다고 할 수 없어도 하고자 하는 것은 바른 길을 추구해도 어디에도 한마디 물어볼 사람 없습니다. 본받고 따를만한 사람을 찾아 헤매도 겨우 생선전 정도에 견줄 수 있으니 서남해 수백리 안이 겨우겨우 이렇습니다...)

초의의 이 서찰은 충격이다. 당대의 지식인 사회를 거의 조롱과 경멸로 가득 채우며 오직 스승으로 삼을만한 사람은 다산 한 사람이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조선이 원래 오랑케 땅이라는 표현은 거의 자포자기 수준이다.

초의는 다산의 아들 학연과 추사 김정희 등의 친구 세대로 양 세대간을 두루 친하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패러독스는 지독하다. 이런 초의를 대하고 다산은 저으기 당황한다.

작은 중국을 자청하던 당시대의 풍토에서 아예 오랑케가 맞다고 말하는 사람은 위험하다. 실제로 이런 글은 당대의 검열 대상이다. 그러나 다산은 이 글을 초의의 젊은 날의 울분으로 받아들이고 그의 원숙한 학문을 기다리며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다산은 강진에서 낙하생 이학규의 서신을 받고도 그랬고 이유 없이 자신을 멸시하는 홍길주의 서신을 받고도 그랬다. 다산은 초의의 학문적 자질을 아끼고 사랑했다. 그리고 유학을 저버리고 불교에 빠진 그를 못내 아쉬워한다.

洵固善知識.其慧悟足以知輪回六道之膠妄. 狗子栢樹之誣網...... 考白首不肯變者. 邇誤零遂. 不無門可托.中夜

蔞絞. 仰嬉戱如此悲夫.

(이미 잘못되었으니 끝내 그것을 깨우치겠다는 마음이다. 마땅한 문도 없다. 한밤중에 탄식하다가 애오라지 장난삼아 말할 뿐이다.)

다산은 이미 당대의 선지식의 반열에 들어선 초의의 선시를 보고 이런 평을 한다. 완고한 유학자의 눈과 마음에는 불교의 한 터럭도 용납이 안된 것일까. 어쨌든 유교와 불교의 두 고수는 마음으로 서로 아끼고 존경하면서도 학문의 장에서는 조금도 물러섬이 없다.

초의가 보여준 선시는 아래의 것이다. 구차하게 해독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彼自詠檜.何與朕事.

我此亢頭.不爲律縛.

不爲敎縛. 不爲禪縛.

萬法歸一.夢所不到.

... ...

淸淨門內.本無此意.

다산은 목민심서에서 바둑을 세상을 어지럽히는 도구의 하나로 점찍고 있지만 그의 말년의 글에는 바둑으로 소일을 하며 즐기는 여러 편의 시를 남기기도 한다. 다산은 차로 마음을 달래고 바둑으로 평온을 찾기도 한다며 그의 또 다른 제자 李晴(주역사전의 저자)에게 말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