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행은 전고(前誥)가 없는 글은 쓰지 않는 고증학자로 자신의 저작물 속에 단단한 학문적 자존과 능력을 불어넣는다. 그의 노고는 저작물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민노행은 일연의 송사(宋史) 시리즈물에서 '반신수'를 본 것이 아니다. 그가 송사에서 반신수를 보았다면 누구라도 '송사'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송사에서 제3자들이 그것을 확인할 수 없다면 도대체 민노행은 그 내용을 어느곳에서 본 것일까. 이 물음에 황경원(黃景源, 1709-1787)이 등장한다. 황경원은 정조시대 가장 촉망받는 문인 중 한 사람이다. 역사인물들을 베스트셀러 형식으로 선택하고 버리는 오늘날의 역사시스템(?) 속에서 황경원은 거의 무명이나, 결코 간단한 인물이 아니다. 

 (황경원의 필체)

위의 사전 소개에는 빠져 있지만 황경원은 삼례(三禮)와 고문(古文)에 밝아 학군(學君) 정조의 지음을 얻어 역사분야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한다. 정조는 평소 불만이었던 '송사'를 조선에 맞게 재편집하는 일을 황경원에게 맡겨 송사전(宋史筌)을 편찬하게 한다. 정조는 평소 중국의 역사서 중 삼국지와 송사가 잡박하고 황탕하다고 보고 있었다.

조선은 성리학의 영향으로 송나라 문물을 동경하고 본받으려는 경향이 있었고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 송사를 조선 나름의 성리학을 준거로  재편성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그 책임을 황정경에게 맡긴 것이다. 대중국의 역사서를 편찬하는 국가적 사업의 책임자로 발탁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황경원은 송사를 재편성하면서 본기와 열전을 위주로한 조선식 '송사'를 만들기에 이른다. 황경원은 송사를 비판적으로 검토, 수용한다. 이 말은 역사학자 '정옥자'의 논고다. 실제로 황경원은 송태종을 평가하기를, 검소했지만 가뭄에 자초(自焚)하는 등의 행위는 쇼에 불과하다는 거침 없는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송태종은 나라에 기근이 들자 주나라 제후들이 하던 스스로 화형을 당하는 자초식(自焚式)을 벌인 적이 있다.

황경원은 송사를 재편성하고 정조에게 별로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 학군 정조는 문인과 학자들에게 야박했다. 사실 문인과 학자들에게는 야박한 평가가 정답인지 모른다. 칭찬에 취해 인사불성에 빠져 녹아나는 문인 학자들을 보면 정조의 야박한 대우가 오히려 약이 됨을 느낀다. 황경원은 장정옥이 편찬한 명사(明史)에서 빠진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고 남명서(南明書)를 편찬하는 발군의 활약을 하기도 한다.

황경원은 '전록(筌綠)'이라는 송사편찬의 낙수를 기록한 문집을 남긴다. 반신수와 송태종의 에피소드는 그 속에 있다. 황경원은 송사열전을 재편성하면서 반신수를 반영하지 않았다. 민노행은 그 자료를 토대로 명수지문에 기결십요, 즉 위기십결을 넣은 것이다.

그렇다면 황경원은 반신수를 어느 자료에서 본 것일까. 그 자료가 중국의 것임이 분명하다면 그 자료도 노출이 되어야 한다. 필자의 위기십결 작가 찾기는 아무래도 다음편에 한번 더 써야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