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행은 위기십결을 '반신수'의 작품이라 하면서 주(註)를 달아 이해를 돕고 있다.
명수지문은 일종의 백과사전이다. 24권 13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1840년(헌종 6)에 시작하여 1842년에 완성되었다. 이 책은  세상의 모든 사물을 명(名)과 수(數)로 나누고, 인간이 지각(知覺)이 나면 먼저 수를 알아야 한다는 입장에서 저술된 것이다. 저자가 만2년간 온힘을 다하여 열서(閱書) 4천여 권, 사서(寫書)를 천여 권이나 인용할 정도로 열과 성을 다한 저작물이라 할 수 있다.

앞장에 이어 기설십요의 다음페이지로 넘어가면 민노행은 기설십요의 다른 설도 있음을 말하고 있다.

(자료 2) 또 이문광독에도 위기십결이 보인다. 홍서도 그렇다.
(우측상단에 又夷門廣牘圍碁十訣一云云出鴻書 보인다.) 

이문광독(廣牘)은 명나라 주리정(周履靖)이 편찬한 이문광독(夷門廣牘)을 말한다. '광독'이라  부르는 이 책은 예원(藝苑) 박아(博雅) 존생(尊生) 서법(書法) 등 13부로 구성되어 있다. 홍서는 같은 명나라시대 유중달의 작품 '유씨홍서'를 말한다. 홍서는 조선문인들 사이에 유명한 책이었다. 이규경은 홍서를 근거로 하늘을 나는 수레 등의 글을 쓰기도 했다.

민노행은 고증학자답게 위기십결을 기록하면서 이 자료들을 모두 살폈다. 명수지문이 백과사전의 일종이니 저작자가 많은 자료를 취사선택하는 것은 기본일 것이다.

민노행은 광독과 홍서에 보이는 위기십결의 출처인 '왕적신'을 무시한다. 한마디 할만도 하련만 그 한마디마저도 아낀다. 

필자는 그동안 국내의 고서들 속에서 위기십결이 나오는 자료 몇 건을 발굴하여 소개한 바 있다. 장서각 소장본 '기보'와 민노행의 '명수지문' 그리고 금년 5월호 월간바둑에 소개되는 민백흥의 '기론'이 그것이다. 이들 자료에는 위로부터 혁가십결, 기설십요, 위기십결로 되어 있고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민노행은 왕적신을 기록한 '광독'이나 '홍서' 등의 자료를 내치고 송사열전(宋史列傳)을 들어 '반신수'를 위기십결의 작가로 특정한다. 민노행의 이름을 걸고 만든 백과사전인만큼 민노행의 기록에 신뢰가 간다. 사실 왕적신설은 민노행뿐만 아니라 조선 중국의 옛날 학자들 거의가 믿지 않던 것이었다. 다만 정확한 특정이 없기에 그저 그렇게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러넘겨(?) 왔을 뿐이다.

이런 허술(?)한 동양바둑계의 맹점을 보고 대만 학자 '주명원'이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보고 손발을 걷어 붙이고 나섰고 그 성과로 나타난 것이 유중보설이다. 
유중보는 송나라 철종(1085-1100) 때의 사람으로 한림원에 근무하며 당대의 바둑 고수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망우집(忘沋集) 등을 저술하고 기세(碁勢) 기결(碁訣) 등 바둑론을 쓸 정도로 이론과 실력을 겸비했었다.

유중보는 바둑은 포석, 침투, 전투, 취사가 생명이라 말한다. 유중보는 뛰어난 바둑실력만큼이나 이론에도 해박했다. 그가 황실의 '기대조'에 속해 바둑마니아였던 철종의 사랑을 받은 이유기도 하다. 유중보의 활약상이 명대의 저작물들인 '천중기'나 '추선유보' 등에 담긴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유중보는 명대에 와서 바둑의 이론가로 가장 저명한 사람 중의 한명이었다.

그러나 어느 자료에도 유중보를 육하원칙에 맞게 위기십결의 작가로 단정한 기록은 없다. 이 점이 왕적신설을 팽개치고 유중보설이 등장했으면서도 아직도 유중보로 확정하지 못하고 설왕설래하고 있는, 논쟁의 초점이다.

과문(寡聞)한 필자는 위기십결의 탄생과정을 육하원칙에 맞는 기록이나 자료를 본 적이 없다. 조선사람 민노행의 기록이 처음이다. 이 점에서 조선의 한 학자의 분투(?)가 빛이 난다. 민노행이 기록한 '반신수' 그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