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엘지경제연구원’에서 바둑에서 배우는 경영전략이란 보고서가 나와 주목을 끌었다.보고서는 바둑인과 경영인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매번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닮았다며 아무리 어렵더라도 일거에 성황을 만회할 묘책보다는 기본에 충실한 원칙을 지켜야 하는 것이 위기십결이 주는 교훈이란 결론을 내고 있다.

좋은 말이다. 필자는 바둑사 마니아로 바둑인의 금과옥조인 위기십결(圍棋十訣)의 덕목보다는 출처(出處)가 궁금했다. 위기십결의 덕목은 수많은 사람들의 논의로 실생활의 지침으로까지 수용되는 정도니 사족을 달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필자의 궁금증은 누가 왜 위기십결을 만들었냐는 점이다. 이 문제를 따지다 보면 곧바로 왕적신(王積薪)과 유중보(劉仲甫)를 마주하게 된다. 당나라 시대 황실의 ‘기대조‘였던 왕적신이 당 현종에게 만들어 바쳤다는 에피소드는 1992년 대만 학자 주명원(朱銘源)이 나오기 전까지 요지부동이었다.

주명원(朱銘源)은 중국(中國) 바둑잡지인 ‘중국위기(中國圍棋)’와 일본의 기다니 미노루(木谷 實) 등 몇 사람의 공동저서인 《위기의 연구》등에 비판 없이 왕적신설을 채택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며 백방으로 찾은 자료를 토대로 왕적신설을 부정했다.

주명원은 왕적신설이 명대 유중달(劉仲達)의 저작물인 유씨 홍서(劉氏鴻書)를 비판 없이 받아들인 결과라 말하며 명대의 항세방(項世芳)이 쓴 옥국구현(玉局句玄)과 유중보(劉仲甫)의 기법사편(棋法四編), 이 밖에 명대의 저극명(楮克明)의 추선유보(秋仙遺譜)를 들어 북송(北宋) 인물인 유중보가 위기십결의 작가라 말한다.

주명원은 이 외의 자료들 말고도 유씨 홍서보다 2년 빠르게 발행된 명대의 진요문(陳耀文)이 편집한 전60권으로 구성된 천중기(天中記)를 첨부한다. 천중기 제41권 위기(圍碁)편에 십세(十勢)가 있는데, ①부득탑승(不得貪勝), ②입계의완(入界宜緩), ③공피고아(攻彼顧我), ④기자쟁선(棄子爭先), ⑤사소취대(捨小就大), ⑥봉위수기(逢危須棄), ⑦신물경속(愼勿輕速), ⑧동수상응(動須相應), ⑨피강자보(彼强自保), ⑩세고취화(勢孤取和)로 기록되어 있다. 

주명원은 천중기를 쓴 진요문을 높게 평가하며 위기십결의 작가를 북송(北宋)의 유중보가 확실하다고 주장한다.

주명원의 주장은 중국은 물론 한국 일본에도 파급이 미쳐 한국 동조, 일본 부분적 동조로 일단 결말이 난다. 일본은 왕적신설의 폐기는 맞지만 유중보설은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명원이 제시한 자료가 유중보를 특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어 조심스럽다는 것이다. 어쨌든 왕적신설이 용도폐기 되었다. 사실 왕적신설은 조선의 문인들도 황당한 것이란 인식을 한 전설류(?)에 불과한 것이다. 조희룡(趙熙龍, 1789-1866)은 왕적신설에 코웃음을 쳤고 민노행(閔魯行, 1782-?)은 책자를 펴내며 위기십결의 작가를 규명(?)한다. 반신수설도 여러 문헌의 해제과정에 노출되어 반신수설을 취하는 연구자도 나오기도 했다.

    (명수지문 名數咫聞)속의  (위기십결.)

민노행은 송사열전을 들어 위기십결의 작가를 반신수(潘愼修)로 특정한다. 송태종(송나라 2대 황제 조광의)이 바둑을 좋아하여 바둑을 잘두는 반신수를 불러 바둑을 두다가 바둑의 요점이 뭐냐 묻자 반신수가 위기십결을 지어 바쳤다. 황제가 그것을 보고 크게 기뻐했다는 것이다.

민노행의 명수지문은 왕적신을 거론한 유씨홍서나 유중보를 거론한 천중기와 추선유보를 뛰어넘는 자료다. 이 자료를 토대로 필자는 위기십결의 작가규명이란 문제를  오로칼럼을 통해 제기한다.

민노행은 정사 송사를 거론했다. 그렇다면 간단하다. 역사학의 기본은 기록보다 자료를, 야사보다 정사를 우선한다. 옥국구현, 추선유보, 명수지문이란 자료들보다  상위개념인 정사를 찾아내면 끝나는 문제다. 필자의 발품은 항상 이런 식이다. 과연 정사 송사에 반신수의 기록이 있는 것일까. 있다면 왜 그동안 노출이 되지 않은 것일까. 다음편에 살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