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단순(邯鄲淳, 132년~220년?)은 예경(藝經)에 바둑에 구품(九品)이 있다고 했다. 한단순은 17도(줄) 바둑판을 설명하고 바둑을 두는 방법을 말하며 바둑에 아홉 단계의 수준의 차가 있고 각기 특정한 이름이 있다고 했다. 우리가 말하는 위기구품(圍碁九品)이다.

한단순이 활동하던 시대 중국에는 바둑 투호 탄기 등 각종 놀이문화가 유행했고 수법 또한 자못 높고 고상하여 고수들의 실전과 함께 시와 노래로 만들어 즐겼고, 지배층만의 놀이를 떠나 보다 많은 대중들의 관심 유도를 실행하는 단계에 이른다. 조조나 조비 등 당시대의 유력자들이 '탄기부'를 지어 출간한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조조 부자가 '탄기'에 빠졌던 것을 한단순만 기록한 것은 아니다. 유의경(柳義慶, 404-444)도 '세설신어'에 언급을 했다. 유의경은 조조 부자가 활동하던 시대에 양침(羊忱)이 바둑의 고수라 하며 양침 이후 그만한 고수가 나오지 않았다 한다. 유의경은 양침 외에 왕중랑(王中郞)을 말한다.

왕중랑은 '구지(扣之)'로 알려진 인물로 부모상중(喪中)에도 문상객들과 바둑을 두었다고 한다. 왕중랑은 바둑은 수담(手談)이기에 상중대화 곧 묵언의 일종이라며 강변했다는 것이다. 세설신어는 바둑은 수담이고 또 좌은(坐隱)이다 기록하고 있다.

기록은 삼국시대 바둑은 17도였고 수법도 아홉 단계의 기준이 있을 정도로 높았다 말한다. 수준은 경쟁을 부르기 마련이고 상대를 꺾고자 하는 호승심과 아울러 기력(碁力)의 차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개인의 욕구는 필연적으로 마니아를 생산하기 마련이다.

이 시대의 기력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는 없다. 망우청락집의 손책의 기보는 송대 이후에 만들어진 위작으로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사서(史書)에 당시의 바둑의 수준을 평가할 수 있는 기록이 있다. '남제서'다.

- 바둑인 중에 장사와 왕랑이 일품이다. 또 적송과 사장이 다음 가는 이품이다. 적송은 속기파로 큰 자리를 선점하는 기풍이고 사장은 장고파로 전투력이 강했다.
(當時能碁人琅邪王抗弟一品 吳郡禇思莊會嵇夏赤松竝弟二品 赤松思速善於大行. 思莊思遲巧於鬪碁)

'적송'은 속기파로 큰곳을 선점하고 '사장'은 장고파로 전투력이 강하다는 말은 '김달수'의 해석이다. 김달수는 이 수십 자에 불과한 문장을 가장 바둑적으로 해석한 한 사람이다. 김달수는 한중일의 고대 반상게임을 연구하는 학자로 수년내 그의 노력으로 한중일의 고대반상게임의 비밀이 풀릴 것으로 본다.

남제서는 속기와 장고 그리고 바른 행마를 말한다. 이 정도의 바둑을 실현하는 사람들을 이품(坐照)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입신(入神)의 경지인 일품이 두명 더 있다 기록한다. 서기 2-4세기의 중국의 이야기다. 이 시대는 한반도에는 장수왕 개로왕 등이 활동하던 시대다. 도림과 개로왕의 바둑 에피소드는 나라안의 최고수를 국수(國手)라 했다.

한 나라의 국왕이 바둑의 고수를 초대하여 벌이는 대국장면은 세설신어 왕승상(王導)편에 실감나게 표현된다. '강복야'라는 일품 바둑인이 어렸을 때 왕승상이 그를 불러 대국을 한 결과 상대가 되지 않았다. 왕승상은 자신이 두점을 놔도 안되는 기력차를 알고 한탄(?)하는 대목은 바둑인의 기력의 극복에 대한 고민과 고수에 대한 부러움의 표시라 하겠다.

'예경'이나 '세설신어' '법언' '남제서' 등의 저명한 저서 속에 바둑이 이 정도까지 심층적으로 기술되어 있다는 것이 놀랍다. 기록을 중시하고 기록문화를 하나의 사업으로 인식하던 고대 중국인들의 모습이 경외스럽다. 전부의 모습은 아니지만 문틈으로나마 그 시대의 바둑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해준 기록의 문화 그곳을 한조각의 돛단배로 항해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