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스포트라이트가 꺼져 있던 음지에서 세상을 한탄하며 자아를 분출하던 사람 중에 조성기(趙聖期)가 있다. 그는 조선의 문인 중에서도 고독한 자의식을 개성 있게 표현한 5백여 편의 시를 남긴 문인으로 당대의 천재였다.
그러나 그의 삶은 우울했다. 그는 항상 문원(文苑)의 주류들에게 배척 받고 왕따를 당했다. 이유는 사공(事功)에 치우친 이단이란 것이다. 그는 바둑을 좋아했다. 당대의 고수들과 교류를 할 정도의 기력의 소유자기도 했다. 조성기는 어느날 매화를 보고 시 한 편을 짓는다.

겨울 창에 만나 옷자락 가쁜하기도 하지

한번 웃는 웃음 옥같이 맑아

지란지교 맺은 향내 방안에 가득하고

주는 정 공평하여 형이라 부를만 하네

이미 시와 술로 마음을 맞추어 보았고

거문고 바둑과 더불어 반평생 보낼 만하겠군

해 바뀌어 뜨락에 송죽 여전하니

겨울에 맺은 친교는 더욱더 깊구나.

寒窓邂逅縞衣輕 / 一笑襟期映玉淸/交比芝蘭香滿室/情均物我喚新契/ 己將詩酒湊新契//欲其琴碁過半生/更有庭前松與竹/歲寒三益結深盟/

조성기가 이 시 속에서 말한 지란지교는 홍세태(1658-1725)다. 홍세태는 유하집을 통해 조선 후기의 바둑고수 유찬홍(술부)을 소개한 사람이다. 일본 중국을 역관으로 오고가며 많은 시문을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조성기는 말년에 자기 주변에 남은 친구로 거의 유일하게 홍세태를 꼽는다. 조성기는 45세 되던 어느 해 홍세태와 헤어지며 이별을 슬퍼한다.

요즈음 나는 오직 그대에게 기울었네

병석에서 떠나는 이별 어찌 견딜꼬

그대는 넓은 가을강을 배를 타고서

바다를 보며 시 한수 짓겠구나

서울아래 쟁쟁하던 이름들을 떠올리며

세상 흔적을 누가 가볍게 보리

매년 한번씩 만나 시짓기로 했으니

국화 피면 반갑게 그대를 보리라.

年來意氣向君傾/惜別那諶病裏情/歸悼秋浮江漢闊/

新詩吟向海雲生/才名洛下爭相慕/浪跡人間莫漫輕/

社會年年佳約在/菊花開復好逢迎/

늘 고독감과 소외감에 젖어있던 조성기에게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대했던 홍세태의 존재가 선연하다. 홍세태는 또 한 사람의 문제아이자 괴짜였던 유찬홍을 알아주고 보듬어 주던 인물이기도 한 것으로 보아 그의 인물됨이 짐작된다.
유찬홍은 술주정과 안하무인의 행동으로 당대의 기피 인물이었다. 홍세태가 사랑하고 아낀것은 그들의 재주였다. 유찬홍의 바둑과 조성기의 학문이 그것이다. 문원의 주류에서 밀려나 있던 조성기는 당대의 문원을 향해 일갈을 한다.

- 정주의 말에 부합되지 않아도 성인의 도와 어긋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들은) 어둡고 살피지도 않고 이단이라 배척하고 사공(事功)이라 비웃는다. 자신들이 도를 해치는 것도 모른다. 이름은 이단이 아니지만 이단보다 더하고 사공(헛된 논리)보다 한참 아래다. 이들이 나라를 망친다. (졸수재집 권9)

그랬다. 조성기의 일갈은 당대의 마이너리티의 존재감이다. 이들은 서로 아끼고 사랑한다. '내수사' 아전 출신으로 재산이 있었던 임준원(林俊元)은 홍세태 유찬홍을 후원하고 나선다. 특히 유찬홍의 숙식을 해결해 주고 좋아하는 바둑과 술을 마음껏 두고 마시게 해주었다. 재주를 아끼는 마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겠다.

조성기를 제외한 홍세태 임준원은  중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신분 사회를 살면서 시와 술 그리고 바둑으로 교감을 나누며 서로를 위로한다. 문장이 통하고 술이 대작되며 바둑으로 소통되니, 매(梅) 송(松) 죽(竹), 삼우(三友)가 아니고 무엇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