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여인이 가볍게 미소를 머금었다.

“봉(鳳)이란 범조(凡鳥)로 나뉘어지는 것이니 친구의 제자를 잡새로 비유한 거죠. 분명 그 제자는 스승의 친구분에게 소홀한 대접을 했을 거예요.”

김순옥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럼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여전히 대답은 중년 여인 쪽에서 떨어졌다.

“말해보세요.”

“한 아이가 있었답니다. 어미는 산후 조리를 잘못해 목숨을 잃고 아비는 도박판을 전전하는 투전꾼이었지요. 그 아이가 태어난 지 이레 만에 아비는 사기도박을 하다 몰매 맞아 죽고, 마침 근방을 지나가던 어떤 점쟁이가 핏덩이를 거둬들였답니다. 아이 이름은 해(亥)였지요.”

묘화라는 여인이 말을 받았다.

“필경 이름을 바꾸었을 것이네. 해(亥) 자의 윗부분은 육(六)이 완전치 못하고 가운데는 오랠 구(久) 자도 되지 못했으며 마지막은 사람(人)이 다 자라지도 못했네. 이 이름자를 쓰면 그 아이 수명이 6개월을 넘기지 못할 터인데 어찌 개명치 않겠는가. 그래, 이번엔 무엇으로 바꾸셨는가?”

“그 다음은 우(于)라 했지요.”

“우는 손목(手) 잘린 글자인데 어찌 이름자로 가당하겠는가?”

“그래서 이번엔 학수(鶴壽)였죠.”

“그거라면 환갑 진갑은 넘길 수 있겠군요.”

중년 여인은 휠체어를 옆으로 밀어갔다. 그 앞은 여느 곳과는 달리 계단식이 아니라 미끄럼틀 형식이었다. 휠체어가 정자를 벗어나기 직전 문득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얼마 전 꿈을 꾸었는데 휠체어를 잊어버렸네. 온종일 돌아다니며 그것을 찾았는데 어디에도 없었지. 밤이 지나고 그 다음날에야 찾았는데 어딘 줄 아시겠는가?”

도무지 뚱딴지같은 질문에 김순옥은 답변할 건덕지를 찾지 못했다. 뒤쪽에 앉은 탁원제가 고함치듯 말했다.

“맥반석 침대를 만드는 주차장입니다!”

중년 여인이 놀란 눈으로 한동안 탁원제를 바라보자 화제가 바뀌었다.

“육관도사가 아직도 귀암을 찾는가?”

“지난 50여년 동안 허선생님의 행방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 정도 세월이면 저승 사람이라 믿었을 터인데?”

“살아 계신다는 확신이 있었으니까요.”

“확신이라…, 이 세상에 확신할 수 있는 게 몇이나 될까. 그런데도 확신 했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어르신.”

“흐음.”

노인은 중년 여인을 돌아보았다.

“묘화(茆花)야, 문밖을 조심하거라. 어둑새벽이면 먹일 노리는 고양이들이 엿볼 수 있잖겠느냐.”

그녀는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며 물러났다. 노인의 이마에 패인 주름이 꿈틀거렸다. 그는 잠깐 생각하고 나서 탁원제를 향해 물었다.

“내 꿈길에 들어오지 않았을 터인데 어찌 아셨는가. 휠체어를 그곳 주차장에서 찾을지?”

탁원제는 잠깐 망설였다. 육관도사 송학수의 차가 주차장에 있었던 것을 설명할까 싶다가 이내 생각을 고쳤다.

“제 차를 그곳에서 찾은 경험이 있거든요.”

어이없는 답변이었던지 노인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하, 배포가 있는 젊은이로구만.”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이곳 역경원엔 측자선생이 계시는지요?”

“어찌 묻는가?”

“송학수 원장님께서 그런 말씀이 계셨습니다. 파자점을 치니 분명 이곳에 귀암 선생이 계시다는 말씀이셨거든요.”

“그리 생각한 이유가 있었을 게 아닌가?”

“[격암유록]이란 책자 때문입니다. 그 책이 필사되어 국립도서관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2년 전인 77년 9월입니다. 그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신도교의 등장이 엿보이거든요. 그동안 우리나라에 신흥 종교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여타 종교보다 신도교만이 말세의 구원 종파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풍기거든요.”

“계속해 보아.”

탁원제는 가볍게 목례 하고 나서 뒷말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