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신도들의 얼굴엔 기쁨과 환희가 교차되었다. 이십여 분쯤 계속된 행사가 끝나자, 방으로 돌아온 탁원제는 당찮은 일이라고 혀를 찼다.

“이게 말이 됩니까. 유치한 짓도 유분수지.”

“왜요, 재미없었어요?”

“재미가 다 뭡니까. 이거야 유치원생 데려다 놓고 장난질 치는 것이지.”

“그렇게만 생각지 마세요. 이곳 사람들은 얼마나 신경을 썼겠어요. ‘레이져 쑈’까지 구상한 걸 보면 준비가 상당했던 모양이에요. 근데요, 탁기자님. 제문을 읽기 전 단상 아래 서 있던 사람들 옷차림을 봤어요?”

“글쎄…요.”

“각 지역의 특성을 나타내는 옷차림이잖아요. 제 생각엔 그래요. 굳이 옛 전설을 끌어들여 ‘레이져 쑈’를 한 것은 머잖아 나타날 특별한 인물에 대한 사전 포석일 거예요. 이를테면 [정감록]의 정도령 같은 인물이 아니겠어요? 신도교가 명목상으로 내세운 교주나 종사가 특별한 분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예고일 수도 있구요. 어쨌든 그건 그거구···, 우리 잠깐이라도 눈 좀 붙여요.”

그녀는 스탠드의 스위치를 내려버렸다. 잠깐인가 싶었는데 멀리서 뎅그렁거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새벽 집회시간인 모양이다. 불빛을 느낀 탁원제가 몸을 일으키자 방안을 서성이며 생각에 잠겼던 김순옥이 돌아섰다.

“피곤할 텐데 좀 더 자요. 아직 새벽이에요.”

탁원제도 일어나 침대 옆구리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어둑새벽 점괘를 열었더니 괘사(卦辭)가 흥미로워요. ‘낙양성 동쪽에 복숭아꽃 빛이 난다’지 뭐예요. 오늘은 좋은 일이 많을 것 같애요. 집회 시간에 역경원 가까이 가볼 생각이거든요. 등산로에서 멀지않으니 별일은 없을 거예요. 우리 팀이 하루 전 연락해 놓는다 했으니 그쪽에서도 기다릴 거구요.”

탁원제 역시 시원시원했다.

“좋아요, 가십시다.”

등산로를 따라 10여분쯤 오르자 송호정(松昊亭)이란 정자가 나타났다. 늦가을이 깊어진 탓에 새벽기운은 만만치 않게 싸늘했다. 두 사람이 정자 아래 이르렀을 때, 수런거리는 말소리가 송호정에서 들려왔다.

“선생님, 아니 올 듯싶습니다.”

“올 것이다.”

정자 가까이 다가갔다. 중앙에는 흰 수염이 반자는 넉넉한 노인이 하반신을 검은 천으로 가린 채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달빛을 받은 백발 때문인지 송호정 안은 천계의 신선이 하강했다는 착각이 일어날 정도로 신비감이 어렸다. 휠체어 옆에 서 있는 여인은 마흔은 넘어 보였다.

“선생님, 바람이 차가워요.”

“….”

“선생님!”

다시 한 번 불렀을 때에야 노인은 가볍게 탄식했다.

“알 수 없구나 묘화(茆花)야. 지금쯤 손님이 왔을 터인데….”

그것은 노인이 잠시 전 뽑아낸 첨자(籤字) 때문이었다.

‘원(元)’ 이었다. 원이란 그 모양이 이팔(二八)과 같다. 이것은 󰡔주역󰡕의 손괘(巽卦 ; ☴) 형상이다. 손괘는 동물로 닭이니, 필경 첫닭 우는 시각 동남쪽에서 손님이 올 것으로 내다보았다. 더 이상 머뭇거리고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김순옥은 송호정 안으로 올라갔다. 탁원제가 뒤따라오는 것을 감지하며 그녀는 무릎 꿇고 절을 올렸다.

“저는 방녀 김순옥입니다.”

휠체어 옆에 서 있는 묘화의 눈빛이 번뜩였다. 달빛에 드러난 그녀의 옷은 특이하게도 도의(道衣)였다. 그녀가 물었다.

“방녀가 무슨 일로 왔나요?”

김순옥의 답변이 차분했다.

“뒤에 계신 분은 오늘 본당에 입교식을 치룬 탁원제 씹니다. 어디서 무슨 소문을 들었는지 측자 선생님을 만나고 싶다하여 이렇듯 어둑새벽에 모시고 왔습니다.”

“측자 선생님을요?”

“네에.”

“무슨 일루요?”

“육관도사께서 보내셨답니다.”

“육관도사라…, 재밌는 별호로군요. 그런데 그 사람이 무슨 연유로 저분을 보냈답니까?”

탁원제가 정중하게 대꾸했다.

“옛날 얘기를 들려드리기 위해섭니다.”

“옛날 얘기를요?”

“한말씀 올리겠습니다. 오래 전 저의 스승님께서 말하기를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울 때 친구가 왔다간 것을 알고 있다. 너는 정성을 다하였느냐?’고 물으셨답니다.

제자는 의기양양해 대답했지요. ‘내 어찌 한 치라도 소홀할 수 있었겠습니까. 성심으로 대하였더니 저에게 글귀 하나를 주었답니다. 바로 봉(鳳)이었지요.’

어르신께선 제자에게 무어라 말했겠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