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해 하니까 말해주죠. 난 다른 사람이 속 터지는 꼴을 못 보거든요. 어찌된 일이냐 하면, 뺑소니 사고의 현장 사진 말예요. 그건 문사장 여편네가 잡지사로 보냈던 거죠. 남편을 궁지로 몰아넣기 위해.”

“예에?”

“비오는 날 문사장이 낸 자동차 사고는 조작됐어요. 워낙 술에 취해 엉겁결에 뒤집어 쓴 거죠. 사고 후 걸린 현수막은 드라마를 샤프하게 꾸미기 위한 세트구요.”

“그래도 집 앞까지 올 정도면 웬만큼은 정신이 있었을 텐데.”

“있었겠죠. 그렇지만 문사장이 하남 공장 사무실에 있는 술을 마셨다면 문젠 달라요. 그곳에 있는 술엔 특별히 조제된 약을 탓으니까. 이런 게 있잖아요. 아무리 경미한 일이라도 일시적으론 큰 사건처럼 보이게 하는 착시현상? 술에 그런 약을 탄 거죠.”

“이유가 뭡니까?”

“땅이죠.”

“땅?”

“차차 알게 돼요.”

“그렇다면 자료를 우리 잡지사로 보낸 건 박부장님이 볼 것을 염두에 둔 치밀한 계산이었군요.”

“그래요.”

“왜 박부장님을 타켓으로 삼은 겁니까?”

“처음엔 단순한 제스처에 불과했죠. 주식회사 미로(美露)에서 판매하는 성기구들이 한국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구실을 붙여 박부장이 촌지 몇 푼 뜯어내려고 으름장을 놨었죠. 박부장은 시비조로 전활 했을 거예요. 한 번쯤은 목소리를 정확히 알아들었을 텐데 문사장은 박부장에 대해 기억하는 게 없어요. 사업이 궤도에 오르지 못하니까 경황이 없다고 봐야겠죠. 그러다가 차 사고를 내고, 급하니까 박부장을 제거하기 위해 사람들을 고용한 거죠.”

“신문에는 문사장 부인(이경실)이 행불이라 나왔던데요. 그건 어떻게 된 겁니까?”

“이경실은 시미즈 그룹의 미야타(宮田) 부장 소속 직원이예요. 두 사람이 깊어졌을 때 미야타가 제안한 거죠. 문치수와 결혼해 사업을 망하게 하면 평생 먹고 살 돈을 준다고 했겠죠.”

“망하게 해요?”

“문사장 부친은 몇 년 전까지 중곡동과 장안평에 미나리 밭을 경작했어요. 내가 알기엔 7억여 원에 그것들을 매각해 아들(문치수)의 사업 자금을 댔다고 들었거든요. 그러니 문사장이 망하려면 웬만큼 시간이 걸릴 수밖에요.”

“이거야 원….”

탁원제는 어이없다는 듯 도리질 쳤다.

“그 이윤 다른 데 있어요. 바로 삼남에 있는 수만 평 땅 때문이죠. 문사장의 조부가 왜정시대 소장수 하며 사두었던 것인데 일종의 그린벨트 형태로 묶인 곳이죠. 위치는 금산사 인근 오공산 일대로 어림잡지만, 확실한 건 몰라요. 그 땅을 뺏기 위해 시미즈 그룹에서는 문사장을 망하게 했어요. 시미즈 그룹이 문사장에게 물건 값 독촉을 하지 않았던 것은 그 땅을 담보 설정할 계획이었으니까요.”

그녀는 잠깐 말을 끊었다가 계속했다.

“얘기가 좀 야리꾸리 하죠. 어떻게 된 거냐면요. 지난 4월, 전라도 어디에서 이완용의 묘를 폐묘시킨 일이 있었죠? 천하에 둘도 없는 명당으로 소문난 이완용의 묘 말예요.

그 묘를 잡아준 어떤 풍수사가 그런 말도 했답니다. 한 사람이 들어갈 자리로는 이완용이 묻힌 그 자리고, 집단 촌락을 이루는 도읍지론 삼남의 어느 땅(문치수 소유의 땅)이란 말도 했다는군요. 그곳에 전라도 사람들이 촌락을 이루거나 공동묘지를 조성하면 머잖아 전라도 대통령이 나온다고요. 3김의 하나인 김대중 씨가 대통령이 된다는 거죠.”

“설마?”

“믿고 안 믿고는 탁기자님 자유죠. 집단 촌락을 이루면 도읍지가 된다는 곳에 외국인들이 기웃거리니 문제잖아요.”

“혹시, 일본인들이?”

“일본인들뿐만이 아니에요. 중국인들도 그곳을 노리고 있어요. 차암, 신문 보셨죠. 시월이십 일경에 수상한 일본인들과 중국인들의 한국 방문을! 무라야마 역사연구소를 비롯해 미우라 클럽과 시미즈 그룹에서도 들이닥쳤어요. 일본기원 소속 관계자들이 그들과 합류하여 그곳으로 향한 것도 최근에 밝혀졌잖아요. 그만큼 그 땅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거죠.

오늘밤 자정이 지나면 교명고천제를 올리게 되는데 이 행사에 기막힌 쑈가 숨어 있어요.”

“쑈요?”

“말보다는 직접 보세요. 저의 팀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일에 차질이 있었대요. 시미즈 그룹으로서는 문사장을 곤경으로 몰아갈 뿐 살해할 계획은 없었답니다. 근데…, 잘 돼가던 일이 그만 문사장에게 들통난 거죠. 간단한 도청 때문이었데요.

그 이후가 문제였죠. 화가 난 문사장이 청부살인을 의뢰한 곳이 바로 ‘얼룩 고양이’들이었으니까 문사장은 운이 없었어요. 이미 문치수에 대한 청부 살인은 5개월 전 이경실이 먼저 의뢸 했으니까요. 만약 문치수가 자신의 일을 알고 살인을 의뢰할 때엔 그를 죽여 달랬던 거죠.”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문은 있었다. 그것은 박부장을 태운 승용차에 대한 문제였다. 육관도사 송학수가 차를 빌려주지 않은 이상 어떻게 감쪽같이 도난당할 수 있는가였다. 김순옥은 상대의 의중을 읽고 있었다.

“궁금한 건 범행에 사용한 차죠?”

“그래요. 송학수 원장 말 대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건 믿음이 안 가거든요.”

“그럴 거예요. 상식 밖의 일이니까. 사고가 나기 이틀 전, 송원장님은 파자점을 쳤답니다. 그분이 찾고 있던 스승님 때문이었죠. 늘상 해오던 대로 파자점을 쳤는데 점괘가 이상했답니다. 송원장님이 타고 다니는 차를 열쇨 꽂은 채 맥반석 침대 만드는 주차장에 가져다 놓으면 방법이 생긴다지 뭐였겠어요. 망설일 필요가 없었죠. 그래서 송원장님의 승용차가 그곳에 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얼룩고양이’라는 청부살인 업자가 자신의 차를 이용할 것을 송원장이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것참.’

탁원제는 내심 혀를 찼다.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을 며칠 전 어떻게 알았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자신이 이곳에 오게 된 것은 이미 그려진 도형처럼 정해졌다는 말과 같았다. 김순옥의 뒷갈망이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