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인의 말대로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하자 남자는 제1선원으로, 여성은 제2선원으로 갈라졌다. 기다리고 있던 신도원 관계자들은 선학원(仙鶴園)이란 현판이 붙은 강당으로 일행들을 몰아넣고 입교 의식을 서둘렀다. 그들이 불러주는 강령을 재창하고 하늘과 땅과 사람에게 서약하는 것으로 간단히 끝맺음하자 마이크가 칙칙대며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에, 잠시 안내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곳 신도원은 장차 닥쳐올 후천개벽을 준비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본래는 골프장으로 허가가 났습니다만 작업 중 환경관계의 여러 문제가 발생해 부득이 종단(宗團) 본부로 사용하게 됐습니다. 이곳에는 대략 1천여 대의 차를 주차시킬 수 있는 공간과 3만 명이 숙식할 수 있는 시설을 3년 후인 1982년 10월 25일까지 7단계로 완공할 예정입니다.”

교도들을 위한 위락시설과 편의 시설을 확충하여 21세기를 선도하는 신도교로 거듭 나야 한다는 말을 끝으로 환영사를 마쳤다. 사회자의 칙칙한 목소리는 선학원 아래서 가든파티를 한다는 안내 방송을 덧붙이고 전원이 꺼졌다.

주위를 둘러보자 이곳에 온 숫자는 대략 서른 명이 못돼 보였다. 여성들이 제2선원으로 빠져나갔으니 그래도 적지 않은 숫자가 입교 의식을 마친 셈이다.

준비된 음식은 참석한 인원이 먹기에 충분했다. 시중에서 흔히 구할 수 없는 음식들을 넉넉하게 차린 것은 신도원의 위용을 알리려는 뜻이 다분했다. 서먹하던 분위기는 한두 잔 술이 들어가면서 마음자리가 넉넉해졌다. 방문객들은 서빙 하는 아가씨들을 눈동냥하며 감탄사를 터뜨렸다.

“카하, 신선이 되는 공부를 한다드만 진짜루 그런갑네. 어쩌면 하나같이 선녀 같을까.”

“긍께 말이여. 방뎅이가 토실토실 한 걸 보니 애는 쑥쑥 잘 뽑겠어!”

동행인들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낄낄거리며 몸을 흔들어댔다. 그럴 때마다 곱지 않게 흘김 하는 처녀들의 눈빛 또한 그렇게 요염할 수 없었다. 누군가 와이담을 넉살좋게 까발렸다.

“지난달 이곳에 온 우리 동네 만득이 성님은 고장 난 뻔데기를 고쳤답디다. 긍께 고게 어찌 된 것이냐 하믄….”

스포츠머리로 짧게 깍은 삼십대 후반의 사내는 한손에 잡은 술잔을 빙글 돌리며 입기름을 쳤다.

“그 성님이 집에서는 성수님 눈치만 실실 봤는데 으떻게 고쳤는지 모르겄당께.”

이만득이라는 쉰여섯 먹은 쌀가게 주인이 신도원에 들어와 정성금 십만 원을 낸 후 어떤 아가씨와 잠자리를 했는데 발기불능인 이만득 씨의 처지가 영 아니올시다였다. 그런데 이만득 씨와 지내게 된 아가씨는 방에 들어와 티브이를 만지작거렸다. 그건 건넌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발가벗은 남녀의 행위를 엿볼 수 있는 이상한 장치였다. 얘기를 꺼낸 사내는 입맛을 다시며 마무리 지었다.

“그러니께 포르노 대신 그런 걸 보여 준갑디다!”

주위에 둘러선 사람들의 눈빛이 호기심으로 번들거릴 때였다. 서빙 하는 처녀가 탁원제 곁으로 다가왔다.

“절 지목해 주세요.”

불빛에 드러난 그녀의 얼굴은 갸름한 계란형 미인이다. 나이가 스물둘이라 했지만 그보다 서너 살 정도 아래로 보였다.

“그 악세사리 말순이 언니 꺼죠. 저도 똑같은 게 있어요. 자 보세요. 맞죠? 제 이름은 순옥이에요, 김순옥.”

“지목만 하면 됩니까?”

“아녜요. 정성금을 먼저 내세요.”

“정성금?”

“일테면 헌금이죠. 불교에선 시주금이라 하잖아요. 기독교에선 헌금이구요. 여기서도 헌금이라지만 명목은 정성금이예요. 오늘은 입교 의식을 치렀으니까 이름을 붙이자면 ‘입교 정성금’이죠.”

그녀는 뒤쪽에서 다가오는 기척을 느낀 탓인지 재빨리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마이크가 칙칙거리며 의례적인 인사말이 흘러나왔다.

“에, 이제는 한식구가 된 여러분들에게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이곳 신도원에 들어온 첫날이니만큼 상당히 긴장되셨을 줄 압니다. 에, 피곤하시다는 분들도 있으니 일단 입교 환영식은 이것으로 끝내겠습니다. 오늘밤 자정 고천제 행사가 있으니 특별한 일이 없으시면 참석해 주십시오. 그리고 새벽 집회는 동짓달이 가까워졌으므로 새벽 다섯 시라는 것을 참조 하시구요. 준비한 입교 정성금은 봉투에 금액과 이름을 적으신 후 본당 담당자에게 내시기 바랍니다.”

탁원제는 잠깐 망설였다. 김말순이나 조금 전 서빙했던 김순옥이라는 처녀나 ‘정성금’ 액수에 대해선 귀띔이 없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헌금 액수가 많다는 것이 좋을 수만은 없어 보였다. 일단 만원권으로 열 장을 봉투에 넣었다.

“에, 탁원제라는 분이 본당에 입교 헌금 십만 원을 정성금으로 기탁하셨습니다. 아, 여기도 있습니다. 박도식 씨도 입교 헌금 십만 원을 정성금으로 내셨구요. 최철한 씨가 5만원, 그 외 3만원 2만원 내신 분이 몇 분 있습니다. 본당 교령을 대신해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탁원제 씨와 박도식 씨는 잠시 남으시고 나머지 분들은 본당 안내원을 따라 숙소로 가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신분을 호법으로 밝힌 쉰 살가량의 사내는 두 사람에게 지명권을 주었다.

“이것은 입교 관롑니다. 조금 전 서빙했던 분 가운데서 고르시면 됩니다. 산중 깊은 곳에서 새벽이 올 때까지 다감한 얘기를 나누실 상대는 어느 분입니까?”

탁원제는 늘어선 처녀들을 휘둘러 보다 김순옥을 지명했다. 뒤 이어 박도식의 지명이 끝나자 네 사람은 영빈관(迎賓館)으로 안내되었다. 탁원제가 105호실, 박도식은 옆방이었다.

이제까지 다소곳하던 것과는 달리 김순옥은 방에 들어서자 이곳저곳을 조사했다. 전화선이며 화병, 티브이 수신기, 전축, 그리고 가재도구 등을 차례로 뒤적거리더니 기어코 장식용 스탠드 안에서 도청 장치를 찾아내 탁원제의 귓가에 속삭였다.

“가능한 와이담이나 음담 종류로만 말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