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선 그렇다는 얘기죠. 얼핏 보기에도 이 아가씨 얼굴은 사반(死斑)이 많이 피었어요. 사흘 안에 해독제를 쓰지 않으면 독극이 심장을 침범하게 됩니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할 텐데….”

“진역관에 온 환자는 선녀보살이 치료했습니다만.”

“신약으로요?”

“복수재접법(覆手栽接法)이란 법술이었어요. 독물에 중독된 환자의 독을 발산시켜 주는 기술입니다만, 법술을 쓰려면 상당 기간 훈련이 필요합니다.”

“초하가 그런 훈련을 받았습니까?”

“구결(口訣)만 알 뿐이지요. 행술을 시전 하는 건 그만큼 위험이 따릅니다. 당시엔 독물에 중독된 상대가 남자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잖습니까. 그러니 어느 사내가 기 치료를 할 수 있는 방법에 능하겠느냐 그 말이지요.”

어김없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중증에 빠졌어도 일단은 치료한 경험이 있어야 했다. 상대가 여자일지라도 방법만 알면 치료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란 확신이어서 더욱 우암을 흔들었다.

“허허허, 딱도 하시오. 사람을 데려와 방술로 치료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내가 나설 일이라면 진즉 그리했을 것이오.”

그 말에 대해 송학수는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본인도 모르게 중독된 상태인데 치료한답시고 방술(房術)을 펼친다면 독극물이 상대에게 옮겨간다는 가능성도 계산에 넣어야 했다. 그렇긴 해도 손을 놓고 죽음을 맞이할 수는 없었다.

“이보시오, 우암. 산목숨 끊기는 걸 구경만 할 수야 없잖은가. 어떻게든 방도를 마련해야잖소.”

“그래 하는 말입니다. 방도라는 건 답안이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시전 해야 할 치료사가 없는 이상 만사휴의지요. 우선은 치료사부터 구해야 손을 써보지요.”

‘치료사라.’

아무리 생각해도 난감했다. 민주아가 들어와 전화 왔다는 것을 알린다.

“원장님, 사당동에 사는 김말순이라는 분입니다. 안부 전화인 듯싶습니다.”

“나중에 전화하겠다고 해라.”

민주아는 가볍게 목례하고 물러났다.

“내 언젠가 그런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때 환자와 함께 왔었는데 내 기억에는 부하 직원이라 들었거든요. 태양혈(太陽穴)이 보기 싫지 않을 만큼 솟구친 그 젊은이는 심성이 괜찮아 보였어요. 허우대가 멀쩡한 걸 보면 어떤 식으로든 기 수련을 한 듯 보였습니다만.”

“그가 누굽니까, 우암!”

“가만, <월간 스캔들>이라던가. 그 잡지사 취재부에 근무한다 했는데. 어떻게 생긴 젊은인가 하면…”

머릿속을 한 줄기 불기운이 관통해 가는 것을 느끼며 송학수는  벌떡 일어났다. 그는 민주아를 불러 급히 탁원제를 호출하라는 말을 던졌다.

황극경세원 별채에서 우암을 본 탁원제는 감개가 무량한 얼굴이었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싶은 몸짓은 착 까부라진 분위기 탓에 멈칫거릴 수밖에 없었다.

“폐일언하고, 자넬 이곳으로 부른 이유부터 설명하겠네. 복수재접법이란, 상대의 기를 뽑아 자신의 것으로 만든 다음 그것을 다시 두 배로 만들어 되돌려 주는 수법이네. 이 법술은 상대의 몸이 허약하거나 독극에 중독됐을 때 치료를 목적으로 사용되어온 청성파의 독보적인 법술이네. 세상에는 장삼봉이 완성시킨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건 상관없는 일이고. 어쨌거나 자네가 이 법술을 사용해 사람의 목숨을 구하라는 것이네.”

대충 얘기를 들은 탁원제는 별다른 꼬리는 붙이지 않았다. 다만, 그러한 법술에 대해 본 바도 들은 적도 없는데 어떻게 시전 하느냐는 곤혹스런 물음이었다. 우암이 공소하게 웃었다.

“말을 하자면 그렇지. 그런 방법은 오래 전에 신선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즐겨 사용했으니까. 그들은 먹는 음식도 달랐어. 우리처럼 쌀을 주식으로 한 게 아니고 봄에는 의이인(薏苡仁 ; 율무쌀) 여름에는 낙안(落雁 ; 녹두고) 가을에는 연육(蓮肉 ; 연꽃 열매) 겨울에는 낙화생(落花生 ; 땅콩)을 상복했었네. 그러니 몸 안에 체적된 것은 허섭스레기 같은 음식 찌꺼기가 아니라 충만한 기였지. 그러한 몸으로 복수재접법을 썼으니 병 치료가 원만할밖에.”

우암의 설명은 계속됐다.

“수행하는 스님이나 도인들이 날 음식을 먹어도 탈이 나지 않은 건 무슨 이윤가? 그건 단전호흡으로 몸 안의 열을 높여 작은 벌레가 유동하는 걸 막기 때문이네. 우리가 음식을 데워 먹는 것보다 더 높은 열을 발생시켜야 생식으로 인한 탈을 방지할 수 있거든. 이게 삼공술(三功術) 원리네.”

몸 안의 열을 높인다는 것, 그것은 불순물을 땀구멍으로 내보내는 것을 뜻한다. 삼공술을 쓰기 위해서는 기가 흘러가는 관문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필요했다. 단전(丹田) · 회음(會陰) · 미려(尾閭) · 협척(夾脊) · 옥침(玉枕) · 이환(泥丸) 등등으로 기가 흐르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단전은 너무 들은 말이라 이해가 쉬울 것이지만 다시 말한다면 배꼽 아래 반 뼘쯤 되는 곳이고, 회음은 음부와 항문 사이를 말하네. 미려는 척추 뼈끝에 있으며 협척은 척추 뼈의 중간 부분이야. 옥침은 후두부 아래 베개를 베면 목침 닿는 곳이고, 이환은 눈썹과 눈썹 사이의 안으로 들어간 부분이네.”

기혈이 쉬었다 가는 정거장에 대한 설명을 마치고 우암은 시선을 허공으로 띄웠다.

“사람의 일이란 때로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일어나기 마련이야. 그러다보니 예기치 않은 봉변에 허둥대기도 하고. 어쨌거나 내 능력 밖의 일들은 하늘에 맡길 수밖에 다른 도리가 있겠는가.”

무슨 말을 할 듯 말 듯 싶다가 우암은 그 자리를 벗어났다. 탁원제는 기혈이 충동하는 것을 억제시키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런 다음 슬그머니 손을 뻗어 죽은 듯 누워있는 여인의 몸으로 손을 가져갔다. 물 위에 떠 있는 나뭇잎이 휘그르르 불어 닥친 바람에 미끄러지듯 허벅지 안쪽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것은 마치 물고기가 유영하는 동작이었다.

손길이 스치자 여인의 몸에 불씨가 살아 돋았다. 다리 안쪽을 파고들던 손길은 슬쩍 밑으로 물러나며 허벅지 안쪽을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방술의 시작점인 미혈이다. 탁원제는 슬그머니 측면으로 이동시켜 상하로 비벼나갔다. 그것은 비파의 장인(匠人)이 지긋하게 누르며 음률을 조정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여인의 몸이 꿈틀거리며 두 팔로 감아오자 그제야 몸을 움직였다.

단전 부위가 화끈거렸다. 일단 움직임을 멈추고 단전으로 내기(內氣)를 몰아갔다. 내기는 조금씩 덩어리를 만들며 아래로 흘러 미려와 회음으로 밀리다가 진로 방향을 바꾸어 협척과 옥침 쪽으로 타고 올라왔다. 이러한 기의 흐름이 옥침을 지나 이환까지 오는 것을 양화(陽火)라 한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이환은 우리 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그곳에 머문 양기는 진로 방향을 바꾸어 인당을 거쳐 젖가슴 중심부 전중(顫中)으로 내려온다. 이것을 음부(陰符)라 부른다.

젊은 남녀의 성행위는 쾌락이라는 극점에 도달하면 끝을 맺지만 복수재접법에 이용되는 삼공술은 상대의 내기를 뽑아 그것을 두 배 세 배 열기를 실어 되돌려 보낸다. 그렇게 하면 상대의 몸에 체적된 독극물이 땀구멍을 통해 발산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것만으로 치료가 가능한 것인가. 그건 아니다. 한 바퀴 돌아온 양기가 솜사탕처럼 부풀려졌을 때 이 덩어리를 단전에 머무르게 한다. 용어로는 봉고(封固)다. 이때가 되면 모든 기의 흐름은 감지되기 쉬울 정도로 하얀 빛을 띠며 몸으로 흡수되기 마련인데 이것을 채약(採藥)이라 한다.

이러한 과정, 단전에서 한 바퀴 돌린 양기가 채약의 과정까지 오는 것이 일공(一功)인데, 복수재접법에서는 최소한 삼공을 펼칠 수 있어야 뜻한 바를 얻게 된다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기를 되돌려주었다가 훔쳐온다는 비술, 이것만으로 오노다의 몸에 스며든 독물을 중화시킬 수 있을까? 우암은 1프로의 가능성을 믿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