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원제가 단숨에 <풀이도>를 찾아내자 윤일경은 몹시 놀란 표정이었다.
“저의 관점은 그래요. ‘영’과 ‘고’의 싸움은 반드시 숫자적인 다툼으로 결판난다고 보진 않거든요. 일본에 있을 때 저의 스승님이 이런 문제를 내놓고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어떤 일의 진실이라는 것은 단지 ‘눈으로 보았다는 것’만으로 확실하지 않다는 거죠. 그렇다면 듣는 것이 확실하냐? 그것도 아니죠. 진실은 항상 생과 사처럼 마지막까지 목을 조이는 수가 나타나야만 알 수 있다는 얘깁니다. 어쨌건, 탁군 같은 동문에게 그런 전화를 받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윤일경은 손수 녹차를 건네며 질문을 받을 자세를 취했다. 그의 입가엔 넉넉한 여유가 깔려 있었다.
“윤교수님께선 오랫동안 외국에 체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에 돌아와 <고(蠱)>라는 책을 간행해 학계의 관심을 끌었다는 것도 우연히 알게 됐습니다. 우선 간행된 책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죠. 교수님께선 지리학을 전공하셨는데 어떤 연유로 그런 책을 쓰셨는지?”
“그렇습니다. 전 고대사를 공부했습니다. 대학 4학년 때 지리학으로 방향전환을 했어요. 그것이 쉽지 않았습니다만 모든 학문이 마음먹기에 달린 거지 어떤 게 쉽고 어떤 게 어렵다거나 나쁜 건 아니잖아요.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옳다 여긴 일도 자신도 아니다 여기면 그것이야말로 평범의 극치죠. 비범한 사람일수록 남들이 가볍게 여기는 것을 다른 각도로 분석해 구분 짓는다잖아요. 그렇게 함으로써 새로운 이론이나 발명을 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그런 걸 종종 봤습니다.”
윤일경은 찻잔을 들어 입안을 가볍게 헹구고 나서 뒷얘길 덧붙였다.
“동문께서도 아다시피 전 지리학을 전공했어요. 흔히 지술(地術)이라 불리는 풍수지리학을 비롯하여 과학적인 탐사법에 이르기까지 지술에 대한 여러 분야를 섭렵했어요. 제가 일본에 머문 기간이 짧진 않았지만 논문을 준비하면서 쨤쨤이 세계 여러 지역을 돌아다닌 경험들을 정리했어요. 그러다 보니 악마니 컬트니 하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무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그래서 나름대로 인도의학(印度醫學)에 관심을 갖게 돼 <고(蠱)>라는 책을 쓰게 된 겁니다.”
“그렇군요. 그럼 <고>라는 걸 알기 쉽게 설명해 주시죠?”
“악마라는 말은 불교에선 ‘사악한 신’ 또는 ‘사람을 나쁜 길로 인도하는 마물’이라 하죠.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귀신이란 뜻으로 서양에선 ‘데블’이라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대문자와 소문자로 쓰는 경우 뜻이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데블을 소문자로 쓰면 초자연적인 정(精)이나 영(靈)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 종류가 엄청 많습니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에 모습을 나타내는 귀신이나 도깨비가 여기 속하죠.
소문자로 썼을 때 데블은 데몬(demon)이라 불리죠. 이러한 데몬은 민족이나 종교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지만 대개 민화(民畵)나 몽마(夢魔) · 흡혈귀(吸血鬼) 등을 의미합니다. 데블을 대문자로 쓰면 어떤 뜻이 될까요? 이땐 그리스도교에 나오는 사탄(satan)을 가리킵니다.”
사탄의 이름은 루시퍼인데 하늘의 대천사(大天使)였다. 죄를 짓고 벌을 받던 중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인간세계로 떨어졌기 때문에 타락한 천사라 부른다. 그러므로 가톨릭에서는 악의 천사 사탄이라 불러 선한 천사 미카엘과 구분 짓는다. 이것이 악마라는 말의 포괄적 의미라는 주장이었다. 자신의 궁금증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탁원제는 꾸욱 눌러 참았다.
“몇 해 전 엑소시스트라는 영화가 상영됐었네. 악마가 깃든 소녀의 행위를 통해 악마와 사제 간의 싸움이 볼만했지. 악마가 깃든 사람을 치료하는 걸 구마(驅魔)라 하는데 이른바 귀신을 쫓아내는 축귀(逐鬼)지. 이것은 종교나 주술의 성격에 따라 내용을 달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네.”
사람이나 사물에서 악마나 악의 세력을 쫓아내는 행위가 여타의 종교에 있으나 기독교는 구마의식이 없다. 고대 바빌론이나 이집트 등지의 기록엔 당시의 문화적 풍습으로 시행하는 걸 볼 수 있으나 구약성서엔 구마에 대한 기록이 없다. 신약성서는 어떤가? 물론 여기에도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모든 질병의 원인을 악령 탓으로 돌린다.
“생각해 보게. 예수가 병자를 치유하는 걸 성경엔 사탄에 대한 투쟁으로 나타내지 않던가.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시발점이 되는 게고. 성경을 보면 초기 교회 시대에 예수 제자들은 귀신을 축출하는 능력과 권세로 병자들을 치유하지 않던가.”
윤일경은 한국에서의 구마기록은 어떠했는가로 돌아왔다. 기록으로 보면 그 시작은 신라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훨씬 이전부터 그런 행위가 행해져 왔다는 것을 학자들이 믿는 건, 샤머니즘 형태가 고대에서부터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불교가 들어오면서 전통적인 샤머니즘과 혼합되었고 도교나 유교 등 여타의 종교가 전래되자 세시풍속에까지 젖어들었다는 게 윤일경의 시각이었다. 그러한 결과로 한국에서의 구마 행위는 첫째, 개인적인 고사 둘째, 무당이 주재하는 푸닥거리 셋째, 공동체의 집단적인 의례나 주술 등이라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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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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