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이에요. 내가 한국에 올 때 그 분은 자신의 약혼자···, 아니 비공식으로 미래를 약속한 여인을 한국에 보냈거든요. 누구냐 하면, 탁기자님도 들으면 아실 거예요. 일본에서 격월간으로 간행되는 미스터리 잡지 [무(毋)]의 야마다 시게루(山田茂) 씨에요. 약속한 날짜로 보면 벌써 한국에 왔어야 하는데 보름이 지나도록 연락이 끊겼거든요.

그 분의 약혼자인 유끼꼬(雪子) 씨를 내일 만나기로 했어요. 그 분은 일년 전 한국에 들어와 대학원에 진학하여 ‘한국의 무속학’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어요. 오늘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하나꼬 갤러리의 사장님이 오셨다는 말에 일단 김선생님을 따라 이곳에 와 본 거예요.”

“기미꼬 씨가 시게루 씨에게 보고할 게 뭡니까?”

“글쎄요.”

“비밀입니까?”

“뭐 그런 것까지는 아니에요. 그치만 이번엔 상당한 수확이 있어요. 나는 그 동안 심부름센터에 묻혀 있어 특별히 내세울만한 일이 없지만 유끼꼬 씨는 그 동안 한강이남 지역을 돌아다니며 비문(碑文)을 촬영하거나 탁본을 해왔어요. 이틀 전엔 경기도 이천에 있다는 말과 함께 중요한 단서를 발견했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내일 오전에 충무로에 있는 파라다이스 모텔 307호에서 만나기로 했거든요. 자신이 발견한 것을 시게루 기자가 보면 크게 기뻐할 것이라고 했어요.”

“요즘 일본인 관광객들이 전라도 지방으로 내려가는 이유를 아십니까?”

“나도 얼핏 들었어요. 들리는 얘긴 ‘금쟁반형’이라는 터를 찾는다는 말이 있어요. 그곳 어디에 남악이 있고 또 오공형이란 명당이 있답니다. 그곳으로 모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녀는 언뜻 화제를 바꾸었다.

“한국에 오기 한달 전인가 그런 책을 봤거든요. 한국인의 사상과 성격을 분석한 자료인데 지은이는 그런 말을 한 것 같애요. 한국인들은 사대성이 강하대요. 지리적으로 동남의 일본, 서남의 중국, 서북의 야인들 사이에 끼여 있어서 언제나 강자에게 의존하는 사대정책이 필요했다는 거죠. 그런 이유로 면종복배(面從腹背)가 자연스러웠다는 거예요.”

그녀는 잠깐 생각을 덧붙였다.

“그 다음으로 음모성을 들 수 있어요. 일제강점기 때에도 요령 좋은 사람은 충분히 관리가 됐었죠. 그렇지 못했다 해도 강자에게 빌붙어 기생했구요. 날이 갈수록 성격은 여성화 되고 시기와 허영과 음모가 많아졌어요. 그러다보니 한국 사람들은 입으로 전쟁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죠. 처음엔 다루기 쉬울 줄 알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강해지는 한국인. 왜 그럴까요? 우리 일본 사람들이 나누는 농담 중에 재밌는 게 있어요. 한국 사람은 무력엔 굴복해도 은혜엔 굴복하는 경우가 없다고요.”

그녀는 흥미로운 일이라고 되묻더니 글라스에 담긴 냉수를 반 컵이나 마셔버렸다. 그녀가 입술을 손바닥으로 쓰윽쓱 문지르고 말을 이었다.

“조금 전 남악과 오공형을 얘기하다 그만 뒀죠. 이런 말씀 들어보셨어요. 한국의 어느 지리학자가 주장한건데요. 한국은 아시아를 향해 기어오르는 거북이랍니다. 장차 아시아의 모든 재정권을 한손에 쥔다는 거죠. 물론 풍수상으로요.

일본의 어느 술가(術家)가 그런 말을 했답니다. 한국을 수중에 넣으려면 2015년이 오기 전 접수해야 한다구요. 그때 남북통일이 되기 때문에 그런다는 것인지도 몰라요. 물론 지금에 와서는 무력을 사용할 수 없죠. 그렇다고 무한정 자금을 투자해 한국 땅덩이를 사들일 수도 없구요. 그래서 절충방안이 나타난 거죠. 아주 오래전부터 대치해 왔던 풍수전쟁을요. 특히 전라도 어느 지방에 대해서만큼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계획이거든요.”

그것이 이른바 ‘남악의 쟁취’였다. 풍수상으로 볼 때 전라도는 금구몰이형(金龜沒泥形)이다. 즉, 금거북이의 자궁에 해당된다는 뜻이다. 이곳은 생명을 탄생시키는 근원지다. 그렇다면 삼남최대의 명승지는 어디인가. 일본인들이 풍수사를 앞세우고 찾아 헤매던 곳, 바로 무안의 승달산(僧達山)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엔 원나라 때 임천사의 원명이라는 중이 바다를 건너와 이 산을 택해 풀을 엮어 암자를 만들고 교세를 떨쳤으며 제자 5백 명이 찾아와 도를 이루어 승달산이라 하였다고 적고 있다.

이 승달산과 목포의 유달산(儒達山), 해남의 두륜산을 연결하여 그 꼭지점이 되는 부분이 남악이라는 게 무라야마 역사연구소 풍수 전문가들의 공통분모였다. 관광목적으로 대거 서울에 온 그들이 약속이나 한 듯 전라도로 몰려간 것은 바로 삼법회통(三法會通 ; 유불선 세 가지 종교를 통함)의 명승지인 남악을 찾기 위해서라는 점에 기미꼬는 비판적이었다.

“그 사람들 못 찾을 거예요. 하늘이 숨겨놓은 천장비처(天藏秘處)니까. 아니죠. 찾을지도 몰라요. 한국의 풍수사들이 도와주면요. 심술궂은 어린애들은 욕심내는 물건이 제 소유가 되지 않으면 아예 훼방을 놓거든요. 무라야마 팀들은 자기네가 삼남의 최대 길지를 손에 넣지 못하면 혈자리에 쇠말뚝이라도 박을 거예요. 그러니까 그들의 재주로선 찾지 못해요. 마음자리가 평화롭지 못하고 실리를 앞세우니까.

시게루 씨는 그런 점보다 저에게 과제 하나를 주셨어요. 구로다(黑田) 그룹 산하에 무라야마 역사연구소가 자리 잡았는데 그 연구소의 비밀을 파헤치라는 거였어요.”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탁기자님은 관동군 731부대에 대해 들은 적 있으시죠. 그 부대엔 수많은 사람을 마루타로 만든 이시이 중장이 있었죠. 멀쩡한 사람을 잡아다 생체실험으로 악마의 소굴이 돼 버린 731부대. 731부대는 해체되기 전에 다섯 가지 독가스를 보유하고 있었답니다.”

첫째가 이베릭트, 둘째가 루이사이트, 셋째가 청산가스, 넷째가 호스겐옥심, 다섯째가 에지페닐시안알신이다. 이러한 다섯 가지 독극물은 아주 끔찍한 것으로 전쟁이 끝난 후 청산가스는 열대지방의 열매와 섞이어 또 다른 형태의 독극물로 탄생했다는 것이다.

“저희가 짐작하기엔 그래요. 그 독물은 청산성 독극이면서 사람에게 큰 고통을 주거든요. 일본에서는 어떤 종교단체가 암살용으로 만들었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런데 그 독극물이 한국으로 건너가 삼부요인이나 방해가 되는 정적들을 살해할지 모른다고 우려하셨거든. 그것을 밝혀내는 게 내가 한국에 온 목적 중의 하나에요.”

불현듯 얼룩고양이라는 작자가 사용한 게 그 독극물이 아닌가 싶어 탁원제는 골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