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꼬 여사님 말씀처럼 오래전부터 수수께끼처럼 내려왔으니 당장 풀 수 있다고 보긴 힘들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일본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다시한번 뵙기로 하고 오늘은 그만 돌아가겠습니다.”

정겨운 웃음을 흘리며 최태원 소장이 돌아간 뒤 하나꼬 여사는 소파에 기댄 채 입을 열었다.

“나 역시 게이꼬(京子) 양을 만나면 금방 돌아가야지. 가져온 물건은 민사장에게 줬으니 마무리는 잘 알아서 처리할 거라 봐. 시게루가 납치된 건지 잠적한 건지 모르지만 돌아가면 실종 신고부터 해야겠어. 근데 말이야 민사장.”

“예에, 누님.”

“내 생각엔 그래. 1934라는 숫자가 요한복음 19장 34절을 가리킨 것이라면 당연히 ‘롱기누스 창’이겠지. 그것이 삼각형(△) 안에 들어있는 것으로 볼 때, 나는 삼각형을 특정장소란 믿음이거든. 그런 장소를 가리키는 의미로 기보를 내게 주었다고 봐.”

민사장이 대꾸 없이 티브이(TV) 채널을 만지작거리자 약간 높은 위치에 놓인 화면이 밝아졌다. 뉴스 시간이 꽤 흘러서인지 9시 종합뉴스의 초점은 평소와 다른 일본인 관광객들의 태도를 해학적으로 더듬었다. 그들은 전라도 지방에서 단합대회라도 여는 듯 한결같이 그쪽으로 관광코스를 잡았다. 예전 같으면 남들이 알세라 은근슬쩍 제주도에 들어와 기생파티를 즐기고 갔을 터인데 이번에 보여준 행동은 예사롭지 않았다.

“저것들 하는 짓이 심상찮아. 대거 전라도로 몰려가는 것으로 봐 뭔 일을 꾸미고 있는 거야.”

민사장이 못마땅한 듯 혀끝을 차며 투덜거렸다.

“예전 같으면 외곽에서 놀던 것들이 어느새 중심부까지 파고들었어. 요즘 들어 부쩍 한일 투자 유치가 늘어난 것도 이상 기류고···. 그것도 생산성이 있는 쪽이 아니라 소비성 향락문화가 주류라니까. 특히 성인 오락이 활기를 띠는 게 예사롭지 않아. 이것은 경제인들 중에 맞장구치는 얼간이가 있기 때문이야. 나라 안팎이 데모다 뭐다 시끄러운 판에 저것들까지 들어온 것은 심상치 않거든. 가만, 저 양반은 매국노 1번타자 장민호(張旻昊)잖아.”

나이든 관광객들을 안내하고 있는 인물은 ‘한국부동산컨설팅’의 장민호 회장이었다. 달랑 수행비서 한 사람만을 대동한 채 관광객들과 환담을 나누는 품새가 예사롭지 않았다. 

장민호.
그는 일정 때 이왕직이란 어용단체에 몸담은 채 친일행각을 서슴지 않고 저질렀던 위인이다. 사학단체에서는 그를 매국노로 재확인한 후 두어 달 남짓 호되게 비판했다. 즉, 친일매국노 전기응과 연계하여 서삼릉(西三陵)에 태실을 봉안해 민족정기를 말살시킨, 결코 용서해서는 안 될 매국노 1호로 단정한 것이다.

그런 그가 언론의 매질과는 상관없이 한반도 전역을 쥐락펴락 하는 ‘한국부동산컨설팅’의 회장이라는 입지가 뉴스를 타면서 석연치 않은 예감을 가져왔다. 민사장이 못마땅한 듯 빈정거렸다.

“아직도 저런 위인이 활보하고 있으니 참으로 희한한 세상이야. 하긴 자유당 때도 그랬지. 친일한 놈들 때려잡는다고 설치드니만 나중엔 그놈들한테 먹히드라구. 그러니 지금이라구 별 수 있겠어. 돈만 있어 뵈면 술집 작부마냥 이놈 저놈 문 열어주고 있잖아. 그러니 게나 고동이나 몰려와 대한민국만세를 외치는 거구.”

탁원제 역시 입술을 삐쭉거리며 볼펜으로 자신의 뒷머리를 연신 두드렸다.

“저 자식 요 앞전에 문화재 밀반출하다 걸렸어요. 아니라고 펄쩍 뛰었지만 그게 국보급 태호(胎壺)였대잖아요. 밀반출하다 걸리니까 문화재 관리국에 기증하는 것으로 피해나갔다는 게 말이 됩니까. 도대체 이 나란 정리가 안돼요. 어째서 친일 매국노가 큰소리치도록 교통정리를 안 하느냐 말입니다.”

“정치자금 몇 보따리 내놨겠지.”

“개새끼들, 그러고도 무슨···.”

탁원제는 속이 타는지 주전자를 통째로 들어 물을 들이켰다. 그는 제자리로 돌아와 네 페이지 분량의 기사를 민사장 쪽으로 가져왔다. <서삼릉의 미스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