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꼬 여사가 내놓은 낡은 사진엔 황폐한 땅을 배경으로 폭탄이 터지고 탐조등이 밤하늘을 비추고 있는 장면이 있는가 하면, 아래엔 방공호에서 주사위 놀이를 즐기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다. 표 밑에 쓰인 세 단어가 ‘주의’ ‘경고’라는 독일어와 영어 그리고 불어였다. 광고는 계속되었다.

“가공식품, 양초, 물병, 스웨터, 담요, 책, 비타민제를 잊지 마세요. 물론 주사위는 ‘the Deadly Double’도 꼭 챙기셔야죠. 2달러 50센트만 내면 운동기구점이나 잡화점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광고에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해 지면의 여기저기에 또 다른 소형 광고들이 배치되었다. 오른쪽엔 두 개의 주사위가 그려져 있고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죽음을 상징하는 XX가 있다. 흰 주사위는 달(月)을 나타내고 검은 주사위 숫자가 날짜를 일컫는다고 추론할 경우 이 그림이 나타내는 날짜는 12월 5일이 아니면 12월 7일 수밖에 없다.

쉬버즈의 보고가 있자 에프비아이(FBI)는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지만 눈앞을 스쳐가는 연기처럼 소득이 없었다.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파고 들어갈수록 이 그림이 진주만 공격을 가리킨다는 확증은 잡을 수 없었다고 시게루 기자는 결론을 내렸다.

“이게 일본이란 나라가 저지를 수 있는 교활함과 잔인성이에요. 일본에는 1900년대에 들어와 카마키리(かまきり)라는 결사단체가 있었어요. 여자들은 어깨에 사마귀(螳螂) 문신을 새기지만 사내들은 허벅지 안쪽에 그런 걸 새긴다고 했거든요. 어떤 목적이 정해지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거해 버리는 일종의 살인 특공대, 그게 ‘카마키리’에요. 닌자 훈련을 받은 일본 여인들은 그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알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흥미로운 미끼를 자위책으로 삼는답니다.”

이러한 ‘카마키리’ 결사대가 1940년 초 히틀러를 찾아가 긴요한 흥정을 벌였다. 그 내용이 세상에 알려지진 않았지만 시게루는 그것을 ‘롱기누스 창’으로 규정했다. 그것을 구했기 때문에 일본은 미국에 시비를 걸었고 동방의 등불이란 한국을 영원히 집어삼킬 궁리를 한 것이다.

좌중이 물을 끼얹듯 조용해지자 하나꼬 여사는 네 겹으로 접힌 묘수풀이 기보 한 장을 내놓았다. 실종되기 전 진주만 습격을 알리는 사진과 함께 전해진 것이라 했다.

“나는 처음에 일본기원에서 일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림에 딸려 들어온 것이라 생각했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가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언뜻 그런 생각이 떠오른 거야. 하필이면 수많은 묘수풀이 중에 시게루가 그런 것을 집어넣었을까를 생각한 거지. 이걸 봐요.”

그녀가 내놓은 기보엔 다음과 같은 도형이 흐릿하게 자리 잡은  채였다. 기보는 오랫동안 지녔던 탓인지 접혀진 부분이 약간 찢어지고 한쪽 면은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기보를 가리키며 하나꼬 여사가 말했다.

“이것은 이도살삼사세(二桃殺三士勢)라는 명칭이 붙어 있었어요. 이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았더니 일세의 기사 제갈공명이란 사람이 나오더군요. 그의 집안은 산동에서도 낭야의 양도 출생으로 소년 시절을 보낸 건 태산 기슭이었죠.”

하나꼬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 태산 기슭에는 양보(梁父)라는 언덕이 있는데 사람들은 양보(梁甫)라고도 썼다. 태산은 하늘을 제사지내는 곳이고 양보는 땅을 제사 지내는 곳이다. 산봉우리의 흙은 모으는 봉(封)은 높은 곳을 더욱 높게 하여 하늘에 이르고자 하는 소망을 담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가하면 양보의 언덕을 파헤쳐 지신(地神)에게 제사 지내는 것은 지령(地靈)과의 교류를 의식한 것이다. 그곳에 있는 옛무덤은 옛날의 훌륭한 영(靈)이 매장되었다는 전설이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지방의 민요 ‘양보음(梁父吟)’이다. 물론 이 곡은 공자의 제자 증자(曾子)가 금곡(金曲)으로 지었다는 전설이 있으나 시간이 흐른 탓에 제갈공명이 지었다는 주장에 무게를 두는 것도 어설픈 일은 아니다. ‘양보음’은 옛날의 만가(挽歌)라고 생각하면 무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