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하는 만면에 미소를 그려냈다.

“만나보니 어때요? 학처럼 고고한 분이지요. 학문은 깊은  바닷속처럼 측량하기 어렵고, 흐르는 물처럼 고운 심성으로 천기를 느끼시지요. 이젠 신선의 경지에 오르셨을 거예요.”

그 분도 한때는 저희 아버님(벽암)과 교분이 있었다고 말 하려다 초하는 다음 말을 꿀꺽 삼켜버렸다.

“좀 전에 강절 소옹이라 하셨죠. 나는 그 분을 유학자로만 기억하고 있거든요. 그 분이 점쟁이였다는 것은 금시초문인데요. 어찌되었건 송원장의 말은 뜬 구름 잡는 것 같아 믿음이 안 갑니다.”

“저도 아버님께 소옹에 대해 들었습니다. 그 분은 송나라 하남 출신으로 사십여 년 간을 하남에 살며 기행이 많았던 모양이에요. 옹(翁)은 이름이며 자가 요부(堯夫)죠. 평소 지내던 곳을 그 분이 안락와(安樂窩)라 하여 안선생이라 불렀답니다. 강절(康節)은 사후에 내린 시호구요.”

그녀는 부친(벽암)이 들려준 소강절에 대해 털어놓았다. 관매점은 매화나무 가지를 잘라 길흉을 헤아리는 점법이다. 다른 말로 소강절 점법이다. 신점(神占) 치는 무당들은 소강절에 대한 믿음이 의외로 강하다. 앉아서 백 리 밖을 보고 오늘에 살면서 천년 뒤의 일을 짐작하는 초인적인 재주를 가졌다고 믿는다. 그래서 태어난 아이의 복을 빌 때 늘어놓는 사설에 이런 것이 있다.

<수명은 동방삭이오, 부자는 석숭이라, 문장은 이태백이오, 인물은 두목지라, 알기로는 소강절이 되어서···.>

어느 날 소강절이 우물 옆 담 밑을 바라보는데 매화나무에 앉은 참새 한 마리가 까닭없이 툭 떨어져 죽었다. 괴이하게 생각하여 특기인 관매점으로 길흉을 헤아렸다. 점친 결과에 대해 혼자서만 알고 집안사람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오후가 되면 이웃에 사는 누군가가 매화 열매를 따기 위해 나무에 올라갈지 모른다. 그렇다 해도 소리 지르거나 놀라게 해선 안 된다는 당부였다. 심부름 나간 하녀만은 주인의 주의를 듣지 못했다. 오후가 되어 돌아온 하녀는 이웃집 아낙이 매화나무에 올라간 것을 보고 도둑으로 몰았다.

아낙은 얼른 뛰어내린다는 게 그만 발을 헛디뎠다. 다리만 다쳤는가 했더니 임신한 아이까지 유산되자, 다리를 질질 끌고 돌아가며 악담을 퍼부었다. 그깟 매실 한 알 때문에 다리가 부러지고 유산했으니 너희들이 얼마나 편히 지내는가 보자고 악을 썼다. 아차 싶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소강절은 다시 점을 쳤다. 아이를 유산한 이웃집 아낙의 악담이 자신의 11대 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괘가 떨어졌다. 소강절은 고심 끝에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다. 조그만 궤를 만들어 밀봉한 글을 넣고 자물쇠를 채운 것이다. 그 위에 글을 썼다.

<이 궤는 함부로 손 대지 말고 나의 11대 손이 위험에 처했을 때 열어보라.>

11대라면 대략 3백 년이다. 이 기간 동안 후손들은 소강절의 유훈을 지키며 내려왔다. 이윽고 문제의 11대 손에 이르렀을 때, 그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어떤 사기꾼의 농단에 빠져 살인 혐의를 뒤집어썼다. 진범이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이 무죄라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당황한 가족들은 그제야 11대 할아버지가 남긴 궤를 뜯었다. 궤 속엔 그 고을 원님에게 보내는 편지 한 통이 들어 있었다. 허겁지겁 원님에게 가져간 편지의 사연은 간단했다.

<내 11대 손자는 살인범이 아니오. 일주일이 지나기 전에 진범이 잡힐 것이니 처벌을 서둘러서는 아니 되오. 그것보다 더 급한 일은, 지금 사또가 앉아있는 곳이 무너지게 됐으니 이 편지를 보는 즉시  밖으로 피하시오.>

평소 소강절에 대한 명성을 익히 들었던 모양이었다. 고을 원님은 황급히 밖으로 피한 직후 와그르르 지붕이 무너져 내렸다. 관매점의 명성은 이것으로 대변할 수 있다고 그녀는 말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