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학수는 점상 한 켠에 놓인 탁원제의 명함을 곁눈질하고 나서, 준비된 흰 봉투를 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 목걸이가 어떤 모양이며 재질은 무엇인지. 그리구 목걸이의 앞뒤엔 무슨 내용이 써 있는 질 알아봐 주겠소? 일단 착수금으로 오십 담았소, 일이 잘되면 오십을 더 드리구. 이것은 광고완 별갭니다. 광고는 별도의 절차를 밟아 연락을 드리겠소만.”

“며칠 내로 알아오겠습니다.”

탁원제는 점퍼 속주머니에 봉투를 챙기며 별 미친놈 다 보았다는 듯 가늘게 웃었다. 가끔 영화배우 김모 양이 섹시해 보인다느니 탤런트 누구누구가 어떻다느니 궁상을 떨며 연모의 침을 흘리는 작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연기며 미모에서 처지는 신인 탤런트 이은하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경우는 처음이었다. 탁원제는 화제를 바꾸었다.

“저기 송선생님, 신문이나 잡지에 ‘오늘의 운세’라는 게 실리잖습니까. 무슨 띠는 동으로 가면 귀인을 만나고 또 어떤 띠는 물가에 가면 위태롭다고 씌어 있는데 그거 믿어도 될까요?”

송학수의 반문이 의외였다.

“만약 기자 양반이 복권에 당첨될 운세라면 어쩌시겠소. 복권을 사시겠소, 안사시겠소?”

질문이 애매했다. 그 자신 스물넷이 되도록 복권 한 장 사본 기억이 없었다.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오늘의 운세도 맞으면 좋고 맞지 않아도 전연 기분 나쁘지 않은 심심풀이 땅콩이다.

“인타발이 긴걸 보니 사진 않겠구먼.”

“아마 그럴 겁니다.”

“오늘의 운센 일기예보 같은 거요. 그러고 보면 점쟁이는 통보관 역할을 맡은 배우라고나 할까. 통보관의 주의를 소홀히 듣고 길을 나서면 비를 맞아요. 때론 그 반대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어느 쪽이든 준빌 한다는 게 중요하죠.”

송학수는 물건 하나를 내놓았다. 빨간 껍질에 바탕이 하얀 중앙에 청사(靑蛇)가 그려진 명함 크기의 물건이었다.

“이런 것이 내 차 안에 떨어져 있었소. 그날 내 차를 움직인 자들의 물건이라 생각되는데, 그리 보면 기자 양반에게 흉측한 일을 저지른 건 필시 그 자들일 게요. 범인이 궁금하다면 그건 기자 양반이 알아보시오. 그러나 저러나 미안해서 어쩐다? 오늘은 점심 선약이 있으니!”

“그럼, 일어나셔야죠.”

“그럽시다. 이삼 일 안으로 자릴 한 번 마련하리다.”

송학수는 지나가는 말처럼 한 마디 던졌다.

“내 누구한테 들었는데 정확한지는 장담 못해요. 사당동 네거리에 포장마차 촌이 있잖소. 거길 가면 매월 25일 오후 세 시에 전라도에 있는 신도원(神道院)으로 관광버스가 떠난답디다. 예전에 무전선원(巫田仙院)으로 불리던 곳인데, 당일 출발하여  다음날 저녁 늦게 돌아온답디다. 범인을 찾고 싶으면 그 버슬 타 봐요. 뭔가 실마리가 잽힐 게요.”

“그러지요.”

황극경세원을 나온 탁원제는 곧장 진역관으로 향했다. 연락을 받은 소하가 반갑게 맞아들였다.

“박부장님을 한 번 뵙고 싶은데요.”

“몸에 침입한 사기(邪氣)를 몰아내려면 시일이 필요해요.”

문득 그 날의 일이 눈앞에 스쳐갔다. 반송장이 된 몸으로 어렵사리 진역관을 찾아와 뜸뜨는 것만을 보고 돌아갔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생각이지만 죽지 않고 살아난 것으로 감사했다. 어둑새벽 진역관을 나서면서 어쩌면 박부장의 얼굴을 못 볼 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한 게 내내 불안했었다.

“그날 밤 부장님에게 극약을 먹인 놈들의 차가 송학수의 소유로 밝혀졌습니다.”

“육관도사, 송학수?”

“그 자를 추궁했더니 엉뚱한 말로 횡설수설하더군요.”

탁원제의 설명을 들은 초하가 한숨을 쏟아냈다.

“탁기자님은 그 분을 몰라요. 이제껏 살아오면서 입으로 뱉은 건 무엇이든 지키신 분이세요. 그러기에 허련 선생은 따님보다 제자를 택해 모든 걸 사사하신 거죠. 그 분은 파자점에 관한한 청출어람(靑出於藍)이니까요. 매화나무 가지를 베어내는 관매점은 매란방 철학관의 이송자를 능가할 거예요.”

“파자점을 신용할 수 있습니까?”

“점법은 나름대로 특색이 있어요. 특히 관매점이나 파자점은 제 분야가 아니어 뭐라 말씀드리기 어려워요. 사직동에 가셨다니 아실 일이지만 그 분의 거천 황극경세원이에요. 황극경세원은 송나라 때 관매점으로 이름을 떨친 강절(康節) 소옹(邵翁)의 점법을 연구하는 기관으로, 그는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명분아래 [황극서] 열두 권을 집필했어요. 천지 대자연의 변화를 담은 그 책은 너무 오묘해 뜻풀이를 못했답니다. 그러던 것을 지금으로부터 50여년 전 허련이란 한학자가 황극서를 해독해 제자인 송학수에게 전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