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입력 버튼을 눌러 티브이를 끈 후, 처음의 자세로 돌아갔다. 탁원제가 깜박한 것이 있었다면, 송학수를 평범한 점장이 중의 한 사람으로 생각한 점이었다. 그는 50여 년 전 파자점(破字占)으로 명성을 날린 귀암(龜岩 ; 許蓮의 아호)의  하나뿐인 제자였다. 송학수의 말소리가 무거워졌다.

“차는 금요일에 없어졌지만 알았던 건 토요일이네. 빗발이 후질후질 쏟아졌으니 마음자리가 영 불편했어. 마음을 집중해 글자 하날 뽑았더니 ‘장(牆)'이야.”

송학수의 턱 끝이 가리킨 곳엔 사방 2센티 남짓의 조각들이 쌓여 있었다. 숫자나 뜻 모를 한자가 쓰여진 것으로 보아  그것들은 파자점을 치기 위한 점자(占字)가 분명했다. 송학수는 ‘장(牆)' 자를 보는 순간 하루만 기다리면 잃어버린 물건을 침대 밑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차를 침대 밑에서 찾습니까?”

“괘사가 그런 걸 어떡 허나.”

“이거야 도무지….”

“믿기지 않겠지. 하긴, 산에 오르지 않는 자가 어찌 정상이 있는 것을 아리. 미안해 할 것 없네. 장(牆)이란 왼편 획(爿)이 평상이나 침상의 왼편 글자지. 그리고 오른쪽은 내면(來面)인데 올래(來)자 밑에 발이 보이질 않아 침대 밑에 숨은 것으로 봤네.
허드렛일 하는 박서방에게 요 아래 맥반석으로 침상 만드는 공장의 주차장에서 찾아오라 했네. 박서방이 그곳에 가 보니 누군가 내 차를 새 것으로 둔갑시켜 놓았다더구만. 번호판도 임시로 갈아 끼워 덕분에 요즘 새 차를 타고 다니네.”

송학수의 말이 무심하게 떨어졌다.

“파자니 요참이라는 걸 과학적으로 따지면 답변할 수 없겠지만.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 된 일들이 우리 조선에 끝없이 나타났었네.”

사학과 출신인 탁원제가 그것을 모를 리 없었으나 그런 것들은 후대에 조립된 것이란 믿음 때문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송학수는 굳이 상대를 이해시키려는 제스처를 쓰지 않았으나 오히려 탁원제가 얕은 재주를 과신했다.

“제 생각엔 그렇습니다. 요참이라는 건 억지로 만든 부분이 많아요. 백제 무왕이 동요를 퍼뜨려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인 것이나, 신라 십현의 한사람인 원효가 노래를 퍼뜨려 요석공주와 인연을 만든 것도 그런 맥락으로 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요참이지 장차를 헤아릴 수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그야 관을 보지 않았으니까.”

“예에?”

“세상에는 관을 봐야 눈물 흘리는 사람이 많아. 파자점에 대한 이해도 그런 쪽으로 보면 무난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