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회 회원들은 가벼운 흥분으로 몸을 떨었다. 점쟁이에서 월간 잡지의 취재부 차장으로 신분 상승했으니, 생각하면 할수록 감격스러웠다. 온몸이 뻑적지근하게 끈적거리는 이날, 어찌 그냥 보낼 것인가. 갑자기 방안은 그들 나름의 구수회의로 소란스러웠다. 더구나 금일봉이라 쓰인 두툼한 봉투가 전해지자 분위기에 기름을 끼얹듯 달아올랐다.

“약소합니다만 사장님께서 회식비로 준비한 겁니다. 단합 대회에 보태십시오.”

민도국이 양념 치듯 너스레를 떨었다.

“오늘은 징하게 기분이 째진 날잉께 억지루라도 부장님 모시고 옴팍집 가서 한잔 땡깁시다. 미스 유는 뿡알이 없응께 끼지 마시고잉!”

일우가 정색했다.

“아닙니다, 일본에 계신 사장님이 급히 연락하실 게 있는 모양입니다. 오늘은 여러분들끼리 회포를 푸십시오.”

마천수가 손바닥을 탁 치며 앞장섰다.

“뭐 술자리야 아무 때면 못 만들겄소. 오늘은 우리끼리 적당히 끝내고 돌아갑시다.”

모두들 와그르르 웃음덩이를 허물며 문을 빠져 나갔다. 이제껏 곱지 않은 눈길로 그들을 노려보던 유상희가 빈정거렸다.

“차암, 웃겨! 점쟁이가 점치면 됐지 감투는 무슨 놈의 감투! 감투 쓰고 허세부릴 일 있나.”

“감투란 건 괜찮은 거야. 요즘 그런 감투 하나 쓸 자리 없나 기웃거리는 치들 많아. 가진 건 돈밖에 없는 치들 있잖아. 우연히 부동산 투기 바람 불어 떼돈은 벌었는데 대가리에 든 게 없으니 사업을 할 수 있겠어, 투자할 수 있겠어? 그리고 누가 알아주기나 해? 속은 밴댕이 같으니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찾아가 불우이웃 돕는 건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고.”

“저기, 부장님. 사장님이 전화하신다 했어요?”

“전화는 무슨.”

“그럼요?”

“저 치들과 어울려봐야 오늘은 이득 없어. 구린네 나는 놈은 끼리끼리 어울려야 풍기는 냄새가 중화돼. 내가 끼면 쌩폼 잡느라 설레방구 칠거야. 이런 땐 자리를 비켜주는 게 상책이지. 어쨌거나 사장님이 일본에서 돌아오기 전 껀수 하나라도 올려놔야 나중에 불편한 일 안당할 거지만···.

일본에서 속달로 날라온 편지가 상당히 신경 쓰여. 사장님 얘긴, 1934년대의 우리나라 바둑 상황을 조사하라는 거야. 그것도 은밀히···.”

“1934년대요?”

“그 당시라면 손꼽을 만한 일이 없을 텐데요. 내가 알기론 민사장님의 누이 하나꼬(花子) 씨가 일본으로 건너간 게 그 무렵으로 우리나라에 온 바둑 기사와 살림을 차렸다고 했거든요. 이름이 가리가데(雁金準一)라고 하던데···, 정확한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

“허지만 그 분은, 1899년대가 황금기였어요. 이또오 히로부미 집에서 숙식하며 한국으로 건너온 후 줄곧 이또오를 따라다녔으니까요. 그런 걸 보면 민사장님이 궁금해 하시는 건 가리가데라는 사람의 조카가 아닌가 싶어요.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에선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이면 ‘국수(國手)’ 칭호를 붙였잖아요. 이른바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이죠. 국수 칭호를 받으려면 당연히 전국을 재패할 실력이 있어야했죠. 당대에 국수로 불리던 사람은 김만수(金萬壽), 백남규(白南圭), 윤경문(尹敬文), 노사초(盧史楚) 등으로 이분들이 일정기간 패자로 군림해 왔거든요. 물론 순장바둑이었지만요.”

유상희는 이러한 ‘국수’ 칭호를 붙일만한 인물에 버금가는 쪽으로 손득준(孫得俊), 권병욱(權秉郁), 채극문(蔡極文) 등을 거론했다.

“저 역시 사장님 부탁으로 일요일이나 공휴일엔 국립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그곳에서 찾아낸 자료에 의하면 1899년에 가리가네(雁金準一)와 백남규 국수가 순장바둑을 두었다는 자료가 있거든요.

그리고···, 1934년에는 기타니(木谷實)와 오청원이 경성(서울)을 다녀갔다고 했고요. 물론 표면적인 것은 바둑의 문화교류지만 다른 뜻이 있는지는 찾아내질 못했어요.”

“그밖에 다른 건?”

“없었어요. 근데 부장님, 저 사람들 차장으로 임명한 일 사장님이 아세요?”

“알면 길길이 뛰겠지. 잡지 꼬라가지는 그래도 대외적인 공신력이나 프라이드는 무척 따진 양반이니까. 난 그 양반 유식한 말 할 때마다 그게 맞는 건지 틀린 건지 분간이 안 돼. 이번에 일본으로 떠나면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전래동화를 수집하라는 건 또 뭐야? 게다가 점쟁이들에게 이십 평 이상의 기원을 접수하면 우대한다고 한 것도 도무지 모를 일이구···.”

유상희가 까르르 웃었다. 그녀는 사장의 측근 중의 측근이었다. 회사에 입사한 것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였으니 가장 고참이다. 그러고 7년, 어느새 스물다섯이 되었다.

“이번에 입사한 박일우란 놈은 만만치 않게 보여. 이력설 보니 S대 지리학과를 졸업했더구만. 그 학교는 일류야. 그쪽 출신들이 언론계는 꽉 잡잖아. 앞으론 미스 유가 날 도와주어야겠어.

미스유가 입사할 때 말했지만, 그 당시 고등학교 졸업할 시기에 바둑을 두는 여직원은 없었어. 미스 유는 3급 실력이니 일종의 특기생이지. 그러니 남들에게 알리지 않은 범위 내에서 내 일을 좀 도와주어.

물론 필요한 경비는 줄 거야. 렌터카도 준비해 뒀으니 충청도나 경상도 일대의 절이나 무속인들을 만날 일 있으면 그런 곳들을 취재해 봐. 경비는 따로 뽑지말고 ‘특집비’ 명목으로 지출하고···.

그리구 가끔 나와 외식하며 취재 당시의 에피소드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 특히 우리 직원들 얘길 좀 해주어. 불평이나 불만 말이야. 그런 게 있으면 사장으로서 먼저 시정해야 되잖아.”

민우기는 한 달 봉급이 든 봉투를 건네주었다. 그때가 8개월 전이었다.

봉급날인 10일을 하루 앞둔 그날은 토요일 밤으로 민사장은 야근으로 고생하는 유상희에게 푸짐하게 청요리를 시켜주었다.

봉급 전날은 내일 지불해야할 봉급이며 기타 잡비에 대한 결산을 하고 현재 잔고가 얼마인지를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점심을 김밥 한 덩이로 때운 건 어차피 야근하면 푸짐한 저녁 식사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빈 뱃속에 기름기 많은 청요리와 몇 잔의 빼갈이 들어가자 그녀는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휘청대며, 화로 곁에 있는 것처럼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화장실로 달려가 찬물에 손 담그고 얼굴에 물을 끼얹었다. 겨우 상반신만을 비춰볼 수 있는 벽거울을 들여다 볼 때였다. 언제 뒤따라 왔는지 민사장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