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오늘의 운세’란을 만졌던 사람은 마천수로, 걸진 입담으로 풀어낸 인명사주길흉점법이 뜻밖에 홈런을 쳤다. ｢월간 스캔들｣의 판매고를 높이며 장안의 화제로 떠오르자 한 달 후 그들을 불러 모았다.

“여러분들은 어찌 생각할지 모르나, 앞으론 우리나라도 국제화시대에 걸맞은 대책을 마련하게 될 겁니다. 나 혼자 주먹구구식으로 살았던 골목 대장식 삶이 아니라 온 천하에 툭 터놓고, 있는 재주 없는 재간을 동원해 힘겨루기 한다는 거죠. 전자산업분야에서 백야청청 독주하던 일본을 제치고 우리나라 기업들이, 우리 기술력으로 힘겨루기에 성공했잖습니까. 이것은 국제사회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는 부단한 노력의 결과로 봐야겠지요.”

그렇다면 점법은 어떤가? 새로이 계발되는 게 아니라 예로부터 있어왔던 점법에 대한 연구나 노하우는 어떤가? 일우는 자문하듯 묻고 나서 답안을 제시했다.

“얼마 전 여러분들에게 일곱 종의 점법을 제시했습니다. 마천수 회원이 히트시킨 인명사주길흉점법을 비롯해 나머지 여섯 종류도 예전부터 있어온 겁니다. 그 점법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라도 연구해 풀어낼 수 있다는 거죠. 물론 풀어내는 기간의 차이는 있겠지요.”

잠깐 사이를 두었다가 이어갔다.

“예전엔 남사당패에서 땅재주 부리고 창을 하던 광대들이 지금은 어떻습니까? 그들의 소리는 무형문화재가 되고 소리꾼은 유형문화재로 대울 받습니다. 천한 직업에 속할수록 숫자가 적어 희소성이 더한다 그 말이죠. 광대 패는 티브이에 출연해 명사대접을 받는데 점쟁이는 어떻습니까? 고작 옵서버로 불러내 동물원 원숭이 취급하잖습니까.”

칠성회 회원들은 별다른 대꾸가 없었다. 그들은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열심히 셈하며 혹여 좋지 않은 일에 말려들지 않을까 조바심치는 빛이 역력했다.

“요즘은 전문화 시댑니다. 음식이나 옷, 먹는 것까지…. 어디 그 뿐입니까? 말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모임에 어떤 헤어스타일로 나갈 것인가? 실내장식을 어떤 식으로 꾸밀 것인가? 보기에 따라 자질구레한 부분까지도 전문 인력의 도움이 필요한 시대가 온 겁니다.

우리 잡지가 전문성을 띤다는 건 회원 상호간에 유대관계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교량 역할을 한다고 봐야겠죠. 그러자면 회원 각자가 서로를 배려해 주는 마음이 넘쳐야 합니다. 오늘은 그 문제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해볼까 합니다.”

장황하게 서두를 까발린 토론의 핵심 방향은 서울의 구획정리였다.

제1구역은 북문으로 ‘인명사주길흉점법’을 익힌 마천수(馬川秀;48세) 회원이 맡는다. 마천수의 고유번호는 전라도를 가리키는 5번이다.

제2구역은 동대문이며 ‘산통점법’을 익힌 고창수(高彰洙;43세) 회원이 맡는다. 고창수는 경기도 출신이므로 고유번호는 4번이다.

제3구역은 남대문이며 ‘송엽점법’을 익힌 박봉구(朴鳳九;36세) 회원이 맡는다. 박봉구는 충청도 출신이므로 고유번호는 3번이다.

제4구역은 서대문이며 ‘작괘동효점법’을 익힌 서문기(徐文起;40세) 회원이 맡는다. 서문기는 강원도 출신이므로 고유번호는 2번이다.

제5구역은 동소문이며 ‘육효점법’을 익힌 민도국(閔道國;38세) 회원이 맡는다. 민도국은 경남 출신이므로 고유번호는 6번이다.

제6구역은 서소문이며 ‘토정점법’을 익힌 옥필호(玉畢鎬;38세) 회원이 맡는다. 옥필호는 서울의 본토박이므로 고유번호는 1번이다.

제7구역은 자하문이며 ‘당사주법’을 익힌 차석만(車碩萬;42세) 회원이 맡는다. 차석만은 경북출신이므로 고유번호는 7번이다.

구획을 정리하고 보니 사소문(四小門)에서 빠진 곳은 남소문(광희문)뿐이다. 회원 수가 일곱인 탓도 있었지만 굳이 남소문을 뺀 건, 죽은 이를 문밖으로 내치는 시구문(尸口門)이기 때문이었다.

“여러분들의 구획은 개인에게 있어선 삶의 영역입니다. 아무리 향기 나는 먹잇감도 구역을 침범하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자기 구역이 아닌 곳에서 어떤 제의가 들어와도 응해선 안 된다는 거죠. 그런 제의가 들어올 때엔 해당지역의 회원을 소개하는 것으로 미련을 버려야 합니다.

일전에 제가 여러분들의 고향에 남아 있는 전설이나 전래동화 그리고 바둑에 관한 어떤 자료라도 채록해야 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모두 협조적이어서 눈물나게 고맙습니다. 다른 분의 자료는 검토가 끝났습니다만, 마천수 회원이 촬영한 정읍(井邑) 인근의 산자락과 무속인들의 집, 그리고 무속화(巫俗畵)와 풍수 전설 등은 지금 관심을 갖고 검토 중에 있습니다. 이점 마천수 회원님과 여러분의 노력이 눈물 나게 고맙다는 것을 이 자릴 빌어 감사드립니다.”

때맞추어 일곱 사람 앞에 붉은 리본이 달린 사각 봉투가 하나씩 놓여졌다. 일우의 낯빛 또한 자못 근엄해졌다.

“사각 봉투 속엔 여러분의 신분증이 들어있습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월간 스캔들｣의 취재부 소속 차장으로 발령 났습니다. 뜻 깊은 자리에 사장님이 참석해야 될 줄 압니다만, 일본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참석 중이시니 그 점 양해해 주십시오. 앞으로 여러분에겐 사규에 의거 취재비와 섭외비, 그리고 특종비 등을 지불하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여러분은 자사의 발전을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경주해 주십시오!”

 박수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마천수가 불콰해진 낯으로 입을 열었다. 주체하기 어려운 감정 탓인지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박부장님께 한 말씀 드리겄습니다.”

“말씀하시죠.”

“우리들이 분에 넘치게 ｢월간 스캔들｣의 취재부 차장으로 발령 났습니다. 어지러운 세상을 살다보면 빽 쓸 일도 많을 것이니 음으로나 양으로 이 쯩이 도움될 거로 봅니다. 생각하면 폼 나는 일이지만, 저 같은 경운, 주위에서 일어난 일을 조리 있게 글로 쓸 재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앞전에 드린 것처럼 고작 사진촬영 밖에 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일우가 얼른 상대의 말을 받았다.

“아, 그 점을 말씀드리지 않았군요. 여러분은 월간 스캔들의 취재부 차장입니다. 이제부턴 언론인이죠. 마천수 제1 차장의 질문은 음···, 이렇게 말할 수 있겠군요. 여러분들은 품안에 마패를 감춘 암행어사라고나 할까요! 이 사회의 병리현상, 썩어문드러진 구석구석을 찾아가 상한 곳은 도려내고 굽은 것은 펴면서 올바른 사회를 구현하는 게 목적입니다.

그런 점에서 글을 쓰기 불편하신 분은 녹음기를 이용해 테이프를 보내주시고, 기사를 작성하시되 시간 없는 분은 메모를 하셔도 됩니다. 기사 내용은 어떤 것이든 좋습니다. 가십기사는 물론이고 크고 작은 사건 · 사고라도 상관없습니다. 내용물이 도착하면 그것을 추려내는 작업은 저와 미스 유가 대신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