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헌. 모를 심듯 얼기설기 꽂힌 오죽(烏竹) 사이로 보이는 1미터 너비의 철문은 검붉게 녹이 슨 상태였다. 퍼렇게 낀 이끼는 철문과 바위가 맞닿은 곳까지 내려와 그곳에 그런 문이 있는지를 분간할 수 없게 만들었다.

목침 안에서 나온 쇳조각은 초하의 예측대로 비밀의 문을 열수 있는 열쇠였다. 그것을 태극 도형의 중심부에 찔러 오른쪽으로 돌리자 끽끽거리는 진동과 함께 거치적대는 느낌이 왔다.

초하가 건네준 손전등으로 사면을 비춰보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선 것은 철문이 좌측으로 밀려나면서였다. 어떤 기관의 힘에 의해 철문은 점점 좌측으로 밀려들어갔다. 초하의 놀라움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세상에, 이런 기관이 있는 줄 어찌 알았겠어요. 언젠가 오죽헌에 대해 아버님이 말한 적 있어요. 밖에 있는 건물은 일제 때 왜경(倭警)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였지만 한고비 넘기고 안심하다 육이오 때 폭파당할 뻔했답니다.”

철문이 완전히 열리자 초하는 뒤로 물러섰다.

“여긴 여자가 출입해선 안돼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자세한 건 몰라요. 아버님이 그렇게 말했거든요. 지금부턴 혼자 들어가세요.”

일우가 고개를 숙이고 안으로 들어가 2미터 가량 나아갔다. 갑자기 뒤쪽에서 철문 닫히는 소리가 요란했다. 깜짝 놀라 돌아보았을 때엔 목침에서 찾아낸 쇳조각이 철문 아래 떨어져 있었다. 쇳조각을 갈무리 한 후 주위를 살폈다. 바깥문 너비의 통로를 빠져나오자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아래쪽은 일곱 평 남짓한 공간이었다.

“어, 사방이 막혔네?”

뜻밖이라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아닌 게 아니라 석실 안은 한결같이 자연석으로 막힌 상태였다. 주위를 둘러봐야 나가는 문은 없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자신이 서 있는 앞쪽으로 사방 두 자 쯤의 정사각형을 이룬 아홉 개의 돌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일우는 심각해졌다.

‘이상해.’

앞에 놓인 아홉 개의 돌을 내려다보자 뇌리에 스쳐가는 게 있었다.

구궁법(九宮法)이다.

중국의 황제 헌원씨(黃帝 軒轅氏) 때부터 사용되어 오던 구궁법은 주문왕(周文王)이 [주역]을 만들면서 점 치는 기술로 확정됐다는 법술로 이 법을 만든 이가 여상 태공망(太公望 ; 강태공)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일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뜻 지리학과 최경조 교수의 말이 뇌리를 스쳐갔다.

“훗날에 이르러 이 구궁법을 연구 발전시킨 인물은 제갈량과 장량이다. 이 법술은 점법이라 보기엔 뭣하고 병략에 이용되었다.

제갈량이 촉한의 유비를 섬기기 전 남양의 융중산(隆中山)에 은거한 적이 있었지. 그 당시 제갈량을 은애하던 구천현녀의 시녀 호리녀(狐狸女)가 세 권의 천서를 갖다 주었다. [육임(六壬)] · [태을신수(太乙神數)] · [기문둔갑(奇門遁甲)]이다.

육임의 용도는 인사(人事)에 관한 것으로, 사람을 다루고 어찌 응용시킬 것인가에 빈틈없는 서책이다. 그러는가 하면 태을신수는 천문을 다뤘거든. 하늘의 변화를 한눈에 꿰는 법술이지. 그리고 기문둔갑은 지리를 다루는 기서다.

나도 이 책에 대해 연구를 해봤지만 확실한 답안 작성이 안 되는 분야야. 내용면에선 지형지물을 이용해 병략적으로 어찌 대처할 것인가를 실제적으로 응용하는 법술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그렇다면 구궁법이란 것도 장량이나 제갈량이 발전시킨 법술이라 보는 게 타당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최경조 교수는 덧붙였다.

“위로는 하늘과 땅, 아래론 인간의 잡다한 일들까지도 이 법에 의해 발가벗겨졌다. 우리나라에선 고려 때 강감찬 장군이, 조선 시대엔 무학대사와 서경덕 · 이지함 등이 능란하게 펼쳤다는 기록이 있어. 그뿐 아니야, 근세에는 기정진(奇正鎭)도 구궁법을 발전시켰거든. 그 분들은 모두 바둑의 고수들이었어”

그리고 나서 최교수는 구궁도(독신기)를 그려냈다. 도형은 다음과 같은 형태였다.

“그래, 이것이었어. 내가 서 있는 곳에 아홉 개의 돌이 있다. 이것은 석실을 만든 분이 구궁도 원리에 따라 배치를 시켰을 것이다.”

약간 뒤쪽으로 물러서며 구궁도의 수리에 따라 걸음을 옮겨갔다. 자신이 서 있는 一(子)의 자리를 출발점으로 삼아 二인 미신(未申), 三인 묘(卯)…, 이렇게 순차적으로 九(午)의 자리까지 옮겨가자 막혀있던 앞쪽이 환해지며 사물의 윤곽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