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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기객 8회/ 묘수풀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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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기객 8회/ 묘수풀이 (3)
2007-11-28     프린트스크랩
 

방안의 불을 껐는데도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오늘 따라 창밖에서 들리는 빗소리가 유난히 가슴을 적신 것도 예사롭지 않았다. 그것은 멀리서 들리는 실로폰의 여음처럼 여인의 감성을 건드렸다.


그래서인지 누군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창문 가까이 멈춘 발짝은, 접수계 윤아(允娥)의 목소리였다.


“아가씨, 몸채에 들려달라는 전갈입니다.”


“우암(愚岩) 숙부님께 무슨 일이라도 있느냐?”


불을 켜고 두루마기 겉옷을 걸쳤다. 문지방을 타고 넘자 날개가 넓은 우산을 윤아가 받쳐주었다. 섬돌을 밟아가는 걸음이 무척 날렵했다.


“무슨 일로 숙부님이 기별했느냐?”


“자정이 다 된 시각에 두 사내가 진역관을 찾아왔답니다. 한 사내는 많은 피를 토해 살아나기 어렵다는군요, 아가씨.”


초하의 걸음이 빨라졌다. 겉문과 현관문을 열고 올라서자 기다리고 있던 유집사(劉琮河)가 안방으로 안내했다. 우암의 처소였다.


“어서 오시게.”


잔뜩 피곤한 낯으로 우암이 말했다. 방 가운데 펼친 대자리 위엔 사내 하나가 죽은 듯 누워 있었다. 토해놓은 핏덩이가 주위에 검푸르게 엉켜 있었다. 환자 앞 반 자 어림에 앉으며 얼핏 우암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에요, 숙부님?”


“아무리 세상이 흉악하기로 이렇듯 못된 짓을 할 수 있나. 극약을 먹이고 건물 짓는 공사장에 생매장하려 했다는 게야. 함께 온 청년이 직원인 모양인데 피 토하는 걸 보고 반죽음이 되었기에 수혈(睡穴)을 눌러 눈을 좀 붙이게 했네.”


“상태는 어떤가요?”


“이 정도 피라면 청산가리 양이 땅콩알 정도는 되겠어. 그런데도 절명치 않고 피만 토해낸 것은 오로지 고통을 주겠다는 의도로 봐야겠지. 그나저나 어찌한다, 벽암이 집을 떠났으니 달리 손쓸 수도 없고, 일단 병원으로 옮겨야겠지?”


“가는 도중 절명하겠지요.”


초하의 눈짓을 받은 유집사가 환자의 상의와 하의를 벗겨냈다. 팬티 한 장만을 남긴 채 온몸을 물수건으로 닦아낸 후, 맥을 짚고 가슴에 손바닥을 밀착시켜 천천히 오르내렸다. 온기는 남아 있었다.

손을 거두며 우암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부친의 말을 떠올리며 심각해졌다.


“독극을 먹은 사람이 기절하는 건 장이 파열돼 장내막(腸內膜)에서 핏덩이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땐 약으로 소생시키긴 어렵고 뜸으로 치료하는 게 제격이다. 뜸을 뜨면 신경(神經)을 회복되고 세포가 재생된다. 그리하면 조직신경이나 조직혈관이 되살아나 독성은 화독(火毒)에 흡수되고 파열된 부위는 뜸의 높은 열기와 합해져 온 몸의 피가 빠른 시각 제자리를 찾아 순환될 것이다.”


초하는 곧 뜸 뜰 채비를 하라고 당부했다. 우암이 환자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 환자는 수난이 끝없이 이어질 상이야. 오랫동안 좋지 않은 일을 해온 게 분명하네.
예로부터 청산가리는 부자(附子)와 함께 여남은 가지 독성으로 나뉘었네. 궁중의 상약국(尙藥局)에서 사약을 만들 때 죄질에 따라 독성에 차이를 두었는데, 그렇다보니 역모를 꿈 꾼 왕족들은 사흘 동안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게 했거든. 이것은 독성을 여과시킨 상태에서 마시게 해야만 가능했어. 평범한 죄인은 부자나 청산가리 양을 높이니 단번에 절명하겠지.”


이것이 죄인을 다스리는 궁안 법도였다는 점에서 본다면 진역관을 찾아온 이 환자는 계획된 범행이었다.

초하는 중완혈(中脘穴)에 뜸을 떴다. 일반적으로 뜸 한 장 뜨는 시각은 15분에서 30분이다. 석 장을 뜨면 피가 그치고 열다섯 장을 뜨면 정신이 회복되는 게 영구법(靈灸法)의 묘미다. 환자의 용태는 새벽 네 시가 지나 조금씩 호전되는 기미를 보였다.


“조카님, 영구법을 언제 배웠는가?”


“세 해 전, 과천에 있는 어머님 묘소에 들를 때였어요. 문원동 길은 매우 한적해 도로공사가 안 된 탓에 비만 오면 질퍽거려 오가는 사람들이 짜증을 냈답니다.”


“비라는 게 그렇지. 잠깐 오는 것이야 운치 있네만 몇날 며칠 퍼부어대면 견딜 재간이 없지. 그래도 벽암같은 감상주의자는 비만 오면 좋아하거든. 자맥질하는 한강의 물고기처럼.”


“부림천을 지날 때였어요. 주택가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더니 무척 소란스러웠어요. 실연당한 처녀가 대들보에 목을 맸는데  축 늘어진 상태였거든요.”


“벽암이 어떤 처방을 쓰던가?”


“처녀를 회생시키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목을 매 죽어가는 사람을 발견하면 먼저 편편한 곳에 눕히고 가슴에 체온이 있는지를 감지하라는 것이어요. 가슴에 체온이 남았다면 닭벼슬의 피를 내어 입에 떨어뜨리면 죽음의 문턱에서 벗어날 수 있다 했습니다. 아픈 사람이 남자라면 붉은 암탉을 여자라면 붉은 수탉이 특방이랬어요. 그때 아버님이 그러셨답니다. 중완혈은 독극에 치명상을 입거나 물에 빠져 기절하거나 목을 맬 때도 회생의 묘수는 뜸이라구요.”

맥을 짚던 우암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 점이 초하를 불안스럽게 만들었다.


“허, 무슨 연유로 백문(魄門;항문)이 열렸지? 허면, 청산가리가 아닌 음성을 띤 독물이야? 중완혈에 뜸을 떴는데 어찌 백문이 열리나?”


그 말엔 답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 묘소를 돌아보고 왔을 때 벽암은 증상에 대한 처방전을 주긴 했었다. 독사와 같은 맹독이나 화독 · 주독 · 광견독 · 지네독에 대한 처방도 일러주었다. 그러나 뜸을 뜨자 백문이 열리는 뜻밖의 상황에 대한 처방은 없었다. 우암이 곤혹스러운 낯으로 심각해졌다.


“사람이 죽어 혼백이 나갔다는 건 위 아래로 몸 안의 기운이 빠져나간 걸 뜻하네. 위로 빠져나간 혼은 하늘로 가고 아래로 빠진 백은 땅으로 가지. 물에 빠져 익사했을 때 회생의 묘수를 찾으려면 백문(항문)이 열렸는가를 보고 판단하거든, 그곳이 닫혀 있다면 몸 안에 기운이 있으니 살릴 수 있으나, 만에 하나 열렸다면 편작(扁鵲)이 와도 살릴 수 없어. 한데, 어쩐 일일꼬! 중완혈을 다스렸는데 백문이 열렸으니?”

 

이번에는 초하가 묵상에 잠겼다. 부친이 계룡산에 있을 때 잡았다는 설상사(雪上蛇) 단약이 떠올랐다. 그것을 오동나무 열매 크기의 환약으로 조제해 일곱 알을 지니고 있었다. 깊은 산속 기화요초만을 먹은 뱀이므로 환자에 큰 도움이 될까 생각하다 고개를 흔들었다.

‘독극이 체적된 몸에 열을 가하는 건 위험해. 좀 더 안전한 방법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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꾹리가아 |  2008-01-30 오후 12:47:4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믕...

초하와 박일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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