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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기객 6회/ 묘수풀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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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기객 6회/ 묘수풀이 (1)
2007-11-24     프린트스크랩
 

                                          묘수풀이


 

하필이면 커피숍 이름을 카사노바라고 했을까. 건물 외벽은 손질했지만 안으로 들어오니 구닥다리 다방 그대로였다. 한시(漢詩)를 휘갈긴 족자가 걸린 옆으로 흑백으로 촬영한 여인네의 바둑 두는 모습이 쓸쓸하게 붙어 있었다. 안쪽 구석진 곳엔 간이 칸막이가 있고 노란 니스가 칠해진 두께가 1센티가 못되는 접이식 바둑판이 덩그마니 놓여 있었다.

 

‘홍도야 울지 마라’를 구성지게 잘 부른다는 김마담은 근처 기원에 쌍화차 석 잔을 들고 배달 나갔다가 들어오는 참이었다.


“어머머머, 사납던 빗발이 약해지니 이게 웬일이야. 집 나간 서방님이 찾아오고!”


누가 들으면 안면이 굉장히 많을 것으로 착각할 만큼 김마담은 붙임성이 좋았다. 탁원제가 자동차 키 고리를 손가락에 끼워 빙글빙글 돌리며 창쪽에 자릴 잡았다. 모텔 출입구가 한 눈에 들어오는 자리였다.


“써방님, 우리집 쌍화차 맛이 그만이에요.”


“고거 두 잔 주셔.”


“어머머머, 우리 써방님 화끈하셔.”


마담의 입에 헤벌쭉해지며 주방을 향해 목청을 높였다.


“김양아, 홀에 쌍화차 두 잔이다아!”


“이런 다방 손님 들어요?”


“어머머, 무슨 말씀. 오늘은 비가 와 그렇지 늘 이곳을 찾는 멤버들 있어요. 향수병 걸린 사람들. 그런 거 있잖아요. 삐까번쩍하는 곳에 가면 괜히 주눅 드는 사람 있죠. 우리 다방처럼 한시라도 한 폭 걸리고 그것을 보면 자신에게서도 옛날 선비들의 향기가 풍겨 나오는 것 같은 그런 분위기 말에요.”


“말 되네. 그런데 다방 이름이 카사노바에요?”


“옛날식 다방이니까. 다방 마담이 쭈그렁바가진데 엑스 세대나 와이 세대 이름 쓸 수 없잖아요. 그렇다고 일출봉이니 삼학도 찾는 것도 우습구. 그래서 섹시한 멋을 풍기도록 카사노바라 한 거죠. 그치만 젊은이들만 뜻하는 건 아니에요. 중년 남자도 있고 영감님도 있으니까.”


탁원제가 쿡쿡쿡 웃고 나서 담배 한 개비를 뽑아 물었다. 담배 연기로 두 개의 도넛을 만들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마담은 카사노바가 누군지 알아요?”


“음마, 이 아자씨 사람 무시하는 것 좀 봐. 그렇잖아도 이 집에 올 때 여기저기 자료 많이 찾아봤어요. 그 양반 끝없이 바람피우면서 일흔 세 해나 살았더라구. 생전에 많은 여자들과 바람을 피웠다는 것이 훈장처럼 기록돼 있던데 그나저나 자식새끼는 얼마나 낳았을까? 우리나라의 어떤 스님처럼 자기 자식들에게 색동저고리를 입으라 했을까? 차암 웃겨. 근데요, 바람피운 걸 누가 기록 했을까. 아마 그 사람이 그랬겠죠?”

“마담이 그런 사람과 하룻밤을 보낸다면 환영입니까?”


“나야 늘 노코멘트죠. 왜냐믄요, 그런 일은 그 당시 무드가 좌우하거든요. 우리 다방 언니처럼 무드 없는 남편과 살다간 날마다 머리카락 빠져요. 글쎄, 주인 언니가 5백만 원 일수계 탄 걸 어떻게 알고 그걸 삥 쳐다 내기 바둑 뒀대요, 글쎄.”


“예에?”


“그래서 마음 단단히 먹고 중부서 김형사와 내기 바둑 두는 현장을 급습했대요. 오늘 새벽 모두 잡아다 철창에 집어넣고 그 동안 애 아빠에게 홀려간 돈 내놓으라고 난리를 쳤겠죠. 바깥 사장님이 3천만 원 가져갔다고 우기는 데 내가 생각할 때는요. 한 천만 원 정도 잃은 것 같아요. 언니가 안 오는 걸 보니 합의가 안 난 것 같아요. 하긴 어떤 놈이 푼돈 몇 푼 먹고 그 많은 돈 내놓으려 하겠어요.
근데 언니는요 첨부터 그 돈 받으려고 생각 안 해요. 이참에 모두 상습 도박범으로 집어넣으려나 봐요. 우리 언니 무섭죠?”


“아이구, 그럼 큰일났네. 이 달에 광고 한 껀 해야 하는 데 잘 하면 모가지 날아갈 일 생겼구만.”


“아네요. 언니가 우리집 광고 3개월만 실으래요. 책 나올 때마다 수금 해준다고요.”


“그래요? 히야 죽으라는 법은 없구만. 어쨌거나 이집 싸장님 베리굿이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이곳에 와서 바둑 두는 사람들 있거든요. 손님도 만나고 커피도 마실 겸 해서 오는 것 같지만 사실은요 우리 싸장님 상태가 저기압인지 어떤지를 살피는 통보관들이에요. 그것을 바깥 싸장님한테 삐삐를 쳐서 알리거든요. ‘2929’는 이쪽 사정이 좋지 않다는 ‘에구에구’라는 뜻이고,  ‘8282’는 잡으러 갈 것 같으니 ‘빨리빨리’ 도망가라는 뜻이에요.
근데요 재밌는 것은요, 우리 싸장님이 그분들에게 쌍화차 대접하며 그러질 않겠어요. 왜 그런 내용만 약속했냐구요. 좋은 일이 있으면 자기를 불러 맛있는 것 대접한다는 ‘82535’도 치라는 거죠.”


“그게 뭐죠?”


“맛있는 거 사줄 테니 ‘빨리오세요’라는 뜻이래요. 웃기죠?”

마담은 불쑥 주방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김양아! 쌍화차 아직 끓고 있니? 명 짧은 사람 숨 넘어 가겠다야!”

 

“다 됐어요 언니. 지금 나가요!”


키가 작달만한 아가씨가 쌍화차 두 잔을 가져와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마담이 슬쩍 눙을 쳤다.


“원 얘두, 아무리 맛있게 끓여도 그렇지. 너무 늦었다 얘. 나야 아무려면 어떠니 우리 써방님이 문제지.”


“죄송해요.”


단발머리는 탁원제의 건너편에 앉으며 찻종기의 뚜껑을 벗겨주었다. 불쑥 그녀가 말했다.


“기자 아저씨죠? 나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말씀하세요.” 


“우리 가게에 온 할아버지가 그러는데요. 일제시대 때 엄청 바둑 잘 둔 사람이 있었는데 바둑이 너무 두고 싶어 글쎄 자기 딸을 걸고 뒀다는 데요?”


“글쎄요. 안 봤으니 뭐라 할 말은 없지만 옛날엔 재산이나 자신의 목숨을 걸고 두었다는 얘기가 있고 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요. 우리나라에 알려진 얘기는 주로 바둑을 두는 신선들을 찾아가 목숨을 연명했다는 것이지만, 중국이나 일본 쪽엔 귀신과 바둑 둔 얘기나, 바둑에 전념한 탓에 피를 토하고 쓰러진 토혈국(吐血局) 같은 얘기도 있어요.

지금 다방 안쪽에 걸린 ‘삼로대혁도(三老對奕圖)’는 아마 요나라 때인 1903년에 장문조(張文藻)라는 이가 무덤 속에 들어가 바둑 두는 모습을 그리게 한 것으로 알려졌거든요. 물론 저 그림은 인쇄한 복사본이지만요. 중국이나 일본뿐 아니라 우리 한국에도 알려지지 않은 얘기가 많을 겁니다.”


분위기가 자신의 궁금증과는 거리가 멀었던지 마담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약간 몸을 틀고 좀 더 앞을 보기 위해 고개를 길게 뽑았다.


“저어기 아저씨 술 취했나 봐, 사람들이 부축해 내려오네.”


얼핏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 탁원제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머리를 스포츠형으로 깎은 사내가 부축하고 내려온 것은 틀림없이 박일우였다. 그는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스포츠머리는 부축해온 사내를 승용차 뒷좌석에 구겨 넣더니 운전석으로 돌아가 재빨리 시동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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꾹리가아 |  2008-01-30 오후 12:36:2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2929 - 에구에구
8282 - 빨리빨리 도망가라
82535 - 빨리오세요

잼잇네요. ^^* 전전편에 나온 목걸이의 숫자(1934)랑 몬 상관 이 잇을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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