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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기객 4회/ 기이한 물건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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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기객 4회/ 기이한 물건들 (2)
2007-11-20     프린트스크랩
 

오후 다섯 시가 넘어가면서 물기가 비친 하늘이 어두워지자 데모대의 행렬도 씩씩한 행군을 멈추고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한두 방울 떨어지던 빗방울은 급기야 여섯 시가 넘어가자 순식간에 장대비로 변했다. 세상을 쓸어버릴 듯 으르렁대던 하늘에는 동에서 서로 불칼이 번뜩이며 줄달음질 쳤다.

 

“부장님, 일곱 시 다 됐어요. 얼른 올라갔다 오세요.”

 

박일우가 엉거주춤 다방에서 나갈 때 줄기차게 쏟아지던 빗줄기는 웬만큼 가늘어진 상태였다. 약속대로 505호를 찾아가자  그녀는 지적인 용모에 세련된 매너의 소유자답게 민우기 사장을 들먹이며 화제를 풀어놓았다.

 

“저도 한국은 처음이거든요. 그치만 이국 같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어머닌 일본인이지만 아버지가 한국인으로 창씨개명 전엔 하씨(河氏)였나 봐요. 할아버님이 강이나 개천을 나타내는 하씨를 맑은 물이라는 의미로 시미즈(淸水)라 했으니 제 이름도 시미즈 게이꼬(淸水京子)가 됐지만요.”

 

그녀는 오렌지 주스를 박일우 쪽에 놓으며 오른쪽 소파에 놓인 서류봉투를 엉덩이 가까이 옮겨놓았다.

 

“제가 일본에서 믿을만한 감정소(鑑定所)에 의뢰한 것은 세 가지였어요. 한 가지는 기보를 만드는 도구인데 70년 정도 지난 거로 보이거든요.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바둑을 두었던 기보(棋譜)에요. 각각 16절(切) 용지에 두 개의 도형이 그려졌어요.

제가 일본에서 알아본 결과 하나는 [현현기경(玄玄棋經)]이란 책에 나온 문제이고, 다른 하난 [관자보(官子譜)]라는 책의 문제에요.”

 

그녀는 막힘없이 두 책에 관해 설명을 붙였다.

 

“바둑을 두는 기사면 옆구리에 끼고 산다는 바둑 고전이 현현기경이죠.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650년 전 완성된 것으로 우리 같은 아마추어에겐 절대적으로 귀감이 된 책이죠. 각 문제마다 적당한 표제가 붙어 신비감을 일으키는데, 기력 향상엔 묘수풀이보다 좋은 게 없잖아요. 급소와 맥, 수순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어 어떤 것은 프로 기사라 해도 쉽게 풀 수 없는 것이 있어요.

다른 하나는 관자보(官子譜)인데, 청나라 강희(康熙) 28년부터 6년간 600여 편의 기보를 정리해 한 권을 만들었는데 지은이는 과백령(過百齡)으로 알려졌거든요. 관자보의 관자는 무엇을 주관한다는 의미고 자는 바둑알로, 바둑알을 어떻게 놓아야 하는가의 도보(圖譜)인 셈이지요.”

 

바둑을 잘 두지 못하지만 박일우는 최근에 돌아가신 한국 바둑계의 거목 조관수(趙寬秀) 선생에 대한 기사를 다루면서 그런저런 책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었다.

 

조관수 선생은 불모지인 한국 바둑계에 뛰어들어 여든 셋인가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오로지 한국 바둑의 중흥과 후배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세상을 떠나기 3개월 전의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기사가 서봉수나 조훈현 등의 난다하는 후진들 대신, 오서징(吳瑞徵)이나 루자은(婁子恩) · 채사덕(蔡四德) 같은 당대 고수를 비롯하여 석파(石坡), 만공(卍空), 허주(虛舟)라 하여 주위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게이꼬는 촬영된 몇 장의 사진을 봉투에서 꺼내놓았다.

 

“제가 한국의 공인 감정기관에 의뢰한 것은 할아버지가 맡겨놓은 물건이었어요. 할아버진 내가 한국에 갈 일이 생기면 반드시 세 가지 물건을 감정해 보라 했거든요.”

 

“그게 사진 속 물건입니까? 일본에서도 받았고, 이번 한국 방문 길에 다시 받았다는?”

 

“네에.”

 

“감정을 받아야할 이유가 뭡니까?”

 

“이 물건을 만든 제작연대를 알려고요.”

 

“연대?”

 

“일본 감정기관처럼 한국에서도 결론은 같아요. 기보에 사용한 지질이 두 개가 다르다는 거죠. 하나는 원나라 때 것으로 대략 600년이 넘었고, 다른 하난 청나라 때 것으로 300년이 넘었어요. 기보에 사용된 종이가 300년의 차이가 나는데 문제는 기보를 만든 날짜에요. 그 날짜가 같다는 거죠.”

 

“예에?”

 

“그러니 신기한 일 아닙니까? 더군다나 기보를 만든 도구는 육칠십 년 전의 것이라니 1910년대 이후 어느 날엔가 두 장의 기보를 만들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러니 이해가 안 갈 밖에요.

할아버지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이 물건을 팔지 않고 숨겨 왔어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야쿠자들이 뺏으려 했지만 이미 할아버지가 어딘가에 감춘 뒤였거든요. 이참에 제가 서울에 와서 물건을 찾아낸 거죠.”

 

“물건이 서울에 있었습니까?”

 

“네에. 할아버지는 관광차 일본에 온 옛 친구 분을 통해 그것을 한국은행 비밀 금고에 맡겨 놨나 봐요. 친구 분은 남도의 ‘은행나무가 있는 마을’에 산다는 얘길 들었거든요.”

 

“남도요? 이해가 안 가는 말인데요. 남도라 해도 지명이 분명해야죠. 동네 골목에서 사람 찾는 게 아니고 대한민국이란 땅덩어리에서 그것도 생면부지의 사람을 찾는 일입니다. 게다가 기보 만드는 종이와 날짜, 그리고 도구 등이 수백 년을 뒤섞은 것처럼 반죽이 된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죠?”

 

“제가 궁금한 것도 그 점이에요. 과학적으로 풀리지 않은 일을 놓고 길을 찾아보려 왔어요. 도와주실 거죠?”

 

“그것참.”

 

“그리고 또 하나···, 이 목걸이에요. 삼각형 안에 1934라는 숫자가 쓰여 있는데 무엇을 나타내는지 알 수가 없어요. 감정기관에선 평범한 액세서리라고 하거든요. 표면에 단순히 그런 문양만 있으니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해요.

이건 박부장님이  가지고 계시면서 천천히 연구해 보세요, 그 목걸이에 어떤 비밀이 담겨 있는지.”

 

그녀는 목걸이를 박일우에게 건네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찻잔이 놓인 곳으로 다가가 곱게 포장된 병 하나를 가져왔다. 일어로 쓰인 상표여서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게이꼬는 즐겁게 웃으며 설명했다.

 

“이건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황후화(皇后花)라는 이름이 붙은 무후주(武后酒)에요. 중국의 당나라 때 여황제가 나타났는데 그 분 이름이 측천무후래요. 일흔이 다 된 나이지만 열일곱 처녀처럼 싱싱한 피부를 유지한 것은 모두  무후주 덕택으로 알려졌거든요.


구로다(黑田) 그룹에선 중국에 연구진을 파견해 무후주의 비밀을 파헤치는 데 성공했어요. 이 술은 강정 식품으로 알려졌지만 강장과 미용에 효과가 대단해 여성들에게 호평을 받은 물건이죠. 술이 생산된 초창기엔 신혼부부들이 즐겨 마시는 술이었죠. 깔끔하고 담백한 데다 강정효과가 있었으니까요. 한국에도 압구정동 쪽에만 판매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효험이 있는지 모르지만 한 병에 5만 엔이니까 비싼 술이죠.


이것을 구로다(黑田) 회장이 공항까지 보냈잖아요. 진즉 축하주를 보내야 하는데 늦어서 미안하다는 메모가 있었어요. 그 대신 한국에 가면  주식회사 거산(巨山)에서 지은 충무로의 파라다이스 모텔 특실에 머물 게 한다는 약속을 했는데 김포공항에 사람이 나왔더라구요.”

 

들리는 소문엔 일본의 구로다 그룹이 한국에 맨 먼저 손을 댄 게 주식회사 거산과 합작으로 벌인 모텔사업이었다. 요즘은 친환경 사업으로 돌렸다는데 그게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생각나는 게 있었다. 연예인 대마초 사건이 있을 때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서 가수들을 만나 가까운 로바다야스키에서 활어회 몇 점에 무후주를 마셨었다. 그 친구는  대마초를 피운 동료가 끌려들어간 것을 운수 탓으로 돌리며 조금도 반성하는 기미가 없었다.

 

“박부장님, 세상 참 더럽습디다. 어떤 놈은 남이 보든 말든 이상한 짓 해대는데 가수들은 목이 터져라 불러도 생활비 대기가 힘들어요. 그러다보니 금방 지쳐 쓰러질 것 같은데 일은 안 할 수 없고, 스트레스 없애려 대마 몇 모금 빨았다고 천하에 둘도 없는 죽일 놈으로 언론이 몰잖아요. 이러다간 정말 돌아가시겠습니다.”

 

잠깐 동안에 마신 술값으로 백만 원을 지불하고 운수 좋은 가수 양반은 사라졌다. 그때 보았던 술이 노란 금줄이 쳐진 무후주였다. 칵테일 그라스에 따른 술을 건네며 게이꼬가 얘기를 돌렸다.

 

“차암 박부장님, 그 목걸이 말인데요. 삼각형 안에 1934라는 숫자가 쓰인 게 1934년의 정치상황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당시를 조사했더니 일본에선 구로다(黑田) 그룹이 그해 회사를 창립했고, 한국의 정치적인 면은 4월에 영친왕이 서울에 왔다는 것과 12월에 김구(金九) 선생이 중국 군관학교에 재학 중인 한인 정년들로 독립군을 조직했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문화면에 흥미로운 게 있었어요. 이상(李箱)의 오감도가 조선일보에 연재되고 있었거든요. 활자를 뽑는 문선공들은 오감도가 아니라 조감도(鳥瞰圖)라 주장하는 일이 벌어진 것 외엔 특별히 눈에 띄는 내용이 없었거든요.”

 

그런 것으로 보면 삼각형 안에 1934라는 숫자가 쓰인 목걸이는 특별한 용도가 있는 것으로 보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전연 도외시할 수 없는 것은 이제껏 한 장소에 세 가지 물건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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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등지고 |  2007-11-20 오후 1:29:3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우하하하~~ 1등 가문의 영광  
나무등지고 |  2007-11-20 오후 1:30:3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2등도 내꺼~  
나무등지고 |  2007-11-20 오후 1:30:5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미안하지만... 3등까지 내꺼~하면 안될까?..  
소라네 |  2007-11-20 오후 5:24:4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큰 기대 속에 다음편을 기다립니다  
꾹리가아 |  2008-01-30 오후 12:22:1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그리고 또 하나···, 이 목걸이에요. 삼각형 안에 1934라는 숫자가 쓰여 있는데 무엇을 나타내는지 알 수가 없어요. 감정기관에선 평범한 액세서리라고 하거든요. 표면에 단순히 그런 문양만 있으니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해요....>

세개의 물건에 이제 목걸이가...

요거이 현재로서는 바둑과 관련된 추리 역사 소설같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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