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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기객 1회/ 1부 마인(魔人) - 오늘의 운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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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기객 1회/ 1부 마인(魔人) - 오늘의 운세 (1)
2007-11-14     프린트스크랩
 
                                               1부 마인(魔人) 

                                        
                                         오늘의 운세



정오가 지나면서 시청 앞으로 진입하던 차량들은 데모대 행렬을 피해 잽싸게 우회해 청계천 샛길을 파고들었다. 그 바람에 세운상가 쪽 청계천 상업로(商業路)는 둑이 터진 듯 사람의 물결로 넘실댔다.

곳곳에서 들리는 함성과 호루라기 소리가 가까워졌다 멀어지고 갖은 욕설과 빵빵거리는 클랙슨 소리가 한낮의 따가운 햇볕 사이를 한가롭게 떠다니더니 앰뷸런스의 요란한 사이렌이 가뜩이나 복잡한 길 한복판에 뛰어들어 저 먼저 가겠다고 앵앵거린 것도 짜증나는 일이었다.


청계천은 북새통이었다.

퇴계로 대한극장에서 종로로 이어지는 시멘트 성곽(石材城) 같은 상가건물도 한낮의 소요에 슬슬 깨어났다.
3층의 극장에선 성룡이란 중국 배우가 애교스런 무술 연기로 관객들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소룡이 죽은 후 최대의 무술연기자로 추켜세운 것처럼 그의 연기는 손에 땀을 쥘 만큼 아슬아슬했다. 번뜩이는 칼날이 눈앞을 스쳐가고 두 다리가 뎅겅 잘라질 듯 위태로워도 개구리처럼 팔짝거리며 아슬아슬 피해나가 보는 이의 감탄이 절로 나왔다.


3층 전자상가 밀집지역으로 빠져나오는 극장 후문은 퇴계로 대한극장에서 종로 쪽으로 향하는 한적한 상가와 이어진다. 이곳 고가(高架)의 그늘과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앉아, 쥘부채 하느작거리며 더위를 쫓고 있는 사주쟁이 영감님 모습도 늘 보던 풍경이었다. 앞에 놓인 좌판엔 표지가 닳은 <주역> 책 한 권만 올려 있는 것도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아따, 저 영감 웃겨. 주역(周易) 한 권 놔두고 도사처럼 폼 잡고 있구만잉.”


“그런 소리 말어. 이 바닥에선 족집게로 소문났어. 아는 게 귀뚜라미 사촌이래. 죽은 놈은 말할 것도 없고 살아있는 인간들까지 영감님을 찾아와 운수풀이 해달라고 난리굿을 피운대잖아. 내막은 모르겄지만 저 영감 엄청 돈이 많대!”


“에이, 그런 사람이 여긴 뭐 하러 나와? 모두 쓰잘떼기 없는 소리지.”


“그래서 내가 물었지. 아 영감님 돈이 많다믄서 뭐 하러 난장판에 나오냐구잉. 그러자 영감님이, 돈 없는 사람도 봐 줘야 될 게 아니냐 그러잖아!”


접이식 자석 바둑판 위에 바둑알을 놓으며 빡빡머리 사내들이 수군거렸다. 영감님 곁에서 시시껄렁한 농담 따먹기를 즐기는 스물 어림으로 뵈는 녀석들은 그야 말로 밥 맛 없는 싸가지 들이었다. 이놈들은 삼삼오오 몰려 있다 얼뺑이 사내들이 기웃거리면 쪼르르 달려가 지지궁상을 떨었다.


“손님, 여긴 뭐든지 구해 드립니다요. 말씀만 하시면 소인이 재깍 대령하겄습니다. 신성일과 엄앵란이 나오는 짜잔한 플라토닉 러브가 있고요,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사랑의 기술’이란 비데오 테입도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 물건을 대한민국 정부가 보증한다는 글자가 퍼렇게 인쇄된 증지라는 게 고대로 붙어 있습니다요 네에.

야리야리한 섬나라 가시내들의 숨넘어가는 애로 만화가 있는디 고건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흥분 뿌라스 흥분의 극치지라우잉. 한 페이질 봐도 숨이 탁 막혀 숨 쉬기가 여간 곤란하지라우!

그리고 말입니다. 거시기가 당나귀만한 낯짝 시커먼 놈들이 이층 쌓는 그림이 있는디 워메워메 나는 그건 못 보겄습디다! 손가락만한 새우가 팔짝대는 내 거시기와 비교하면 완전히 쪽팔려 버린당께요! 그놈들은 무 밭에서 그런 것이나 뽑아 묵고 살아서 그런 걸까요잉?

자자, 선상님. 여기선 생각이 많으면 병이 생겨요. 고런 건 집에 가서 열심히 하시고 일단 물건을 정하면 구하는 걸 서둘러야죠잉. 으떤 걸 구해 드리까요. 손님?”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짱구란 놈의 넉살이 여기까지 풀어지면 대부분 사내들은 녀석의 얼렁술에 꼴딱 넘어가 버린다. 여기까지 온 사내면 구린내 풀풀 풍기는 만화나 비디오테이프를 찾는 쪽이지만 은근짜 물건 구해 달라 계약금 몇 푼 줬다간 하루 종일 기다려도 짱구 그림자도 구경할 수 없는 게 이 바닥 생리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주쟁이 영감님이 나타나면서 짱구의 방정맞은 행실도 막을 내렸다. 한번은 영감님 앞에서 재주를 부리다가 된통 당했다.


“저기 말입니다. 나도 청계천 바닥에서 잔뼈가 굵었걸랑요. 그래서 눈치 하난 빠삭한데 영감님한테 운수 보고 간 손님들이 한 번도 항의 방문을 안 하대요잉. 사실적으로 말해 나는 고것이 궁금해 죽겠어라우잉.”


“짱구야, 너는 혓바닥을 조심하거라. 그 옛날 말 잘하던 장의(張儀)라는 놈은 곤죽이 되도록 매를 맞았어도 혀만 있으면 괜찮다 했다만 너는 그 혓바닥 때문에 신세 조질 것이다. 오늘 네 놈 상을 보아하니 일진이 아주 좋지 않다. 원숭이 재롱떠는 짓 그만 두고 핑핑히 집에 들어가 발 닦고 놀그라잉.”


녀석에게 당한 피해자가 적지 않은 탓에 고발장을 열댓장 접수받은 중부서(中部署) 김형사가 헐렁한 차림새로 원정 나온 걸 모르고 짱구는 야바위 플랑크톤인 줄 알고 재주 부리다 잡혀갔다. 피해자들에게 손해난 것 원상 복구해주고 다시는 그런 짓 않겠다고 일흔이 넘은 짱구 부모가 각서에 보증인 세우고 울고불고 애걸하고서야 풀려나자 웬만큼 정신이 든 모양이었다.

그 후 사주쟁이 영감님 곁에 무릎걸음으로 앉아 잔심부름을 거들며 금과옥조 같은 말씀에 귀를 쫑긋 거렸다.

“저기 영감님, 저번에 내가 잡혀갈 걸 으떻게 알았습니까? 고것 참 신기합디다요잉.”


“신기할 것 없다. 이미 정해진 것은 사주나 이름이나 같다. 네 놈이 태어난 연월일시를 바꿀 수 없듯 네 이름자도 그런 것이다.
생각해 봐라. 용팔이는 의리가 있어 뵈니 그런 이름 붙었고, 춘심이는 마음에 봄바람 부니 종삼에서 작부 노릇 하는 것이다. 돌쇠는 돌덩이처럼 우직한 짓을 골라 하니 하인이나 하라는 것이고 짱구는 하는 짓이 짱구 같으니 네 별명으로 딱이다!”


“에이 영감님. 나도 이름 있어요. 친구들이 놀리느라 괜히 짱구라 한 거죠 뭐.”


“그래? 네 이름은 뭐냐?”


“김세연(金世然)이요.”


“글쎄 그렇다니까! 네놈 운수는 차라리 짱구가 낫다. 아예 짱구로 바꿔라. 김짱구가 아닌 뒷짱구로!”


“아니 왜요?”


“불이 탄다는 글자에 연(燃)이란 게 있다. 이 글자에서 불(火)이 떨어지면 어찌 되겠느냐? 무엇이 타건 그렇지 않건 불을 끄느라 요란스러울 것 아니냐. 그 형국이 네놈 이름자인 연(然)이다.
더구나 네놈 이름에 세(世) 자가 들어 있으니 향후 삼십년은 시끄러울 것이야. 세라는 글자는 열십(十)을 세 개나 묶어놓았으니까!

짱구야, 네 친구들을 한 번 보아라. 극장 앞에서 암표 장사하는 놈, 돈 몇 푼 생기면 종삼의 색시 집으로 달음질치는 놈, 대한극장 쪽에서 야바위짓 하는 놈, 술 취한 취객에게 간장 탄 콜라 먹이고 대통령이 좋아한다는 씨바스 리갈 마셨다고 빈병 내놓고 덤터기 씌우는 놈, 모두 그렇고 그런 놈들 아니냐. 그러니 이참에 대오 각성하여 새사람이 되려면 내 곁에 나와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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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55 |  2007-11-12 오후 3:42:5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앞으로 방랑의 기객은 격일로 연재합니다. 하루는 [투정여화], 하루는 [방랑의 기객] 순으로 번갈아가며 찾아뵙습니다. 많은 성원 바랍니다.  
나무등지고 |  2007-11-14 오전 7:45:1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나도 대오각성 해서 새사람되고 싶고...  
소라네 |  2007-11-14 오전 11:13:4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읽는 즐거움과 기다리는 즐거움이 기대가 큽니다.  
천사모만통 |  2007-11-18 오전 1:11:3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퍼가도 되나 모르겠습니다~~카페 옮겨서 회원들이 읽어볼수 있게 하고 싶은데요..
출처 및 작가등도 표시 하겠습니다..  
꾹리가아 |  2008-01-30 오후 12:03:0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아따, 저 영감 웃겨. 주역(周易) 한 권 놔두고 도사처럼 폼 잡고 있구만잉.” >

주역...한권?

믕...


 
꾹리가아 |  2008-01-30 오후 12:03:4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일단 시작이지만 잼 있네요. ^^*  
AKARI |  2008-12-26 오후 7:59:4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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