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백록의 뒤를 쫓다보니 너무 깊이 들어온 것 같았다. 돌아가자니 얻은 게 없고 쫓아가자니 백록의 행방이 묘연해 한숨을 내쉬며 나무 등걸에 앉아 있었다. 손바람을 일으켜 땀을 식히는 데 가까운 곳에서 똑딱이는 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닌가.

가만가만 고양이 걸음으로 다가가니 소리는 석실 안에서 들려왔다. 닭장을 훔쳐보는 오소리처럼 고개를 빠곰히 빼들고 들여다보니 두 동자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 왕질이 다가가자 그들 중 하나가 대추씨 같은 것을 건넸다.

“이거라도 먹게나.”

그들은 다시 삼매경에 빠져 바둑을 두다가 어느 순간 왕질의 존재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반문했다.

“아직도 가지 않았는가?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지금까지 있었다니···. 어서 돌아가게.”

그 말에 깜짝 놀라 자신의 도끼를 내려다보니 날(刃)은 이미 검붉게 녹이 슬었고 자루는 썩은 채 푸석거렸다. 급히 산을 내려와 자신이 살았던 곳을 가 보니 모옥은 오간 데가 없고 제법 큼직한 대문에 고래등짝 같은 기와집이 서 있었다. 한참을 서성이다 안에서 나온 선비풍의 사내에게 물었다.

“이곳은 왕질이란 사람이 살았던 곳이 아닙니까?”

“그 분은 저의 고조 할아버집니다. 석교산(石橋山 ; 석실산의 본래 이름)에 올라가셨다가 호환을 당했다고 들었습니다. 고조 할아버지께선 바둑 두는 것을 몹시 즐기셨는데 한가한 시간이면 퉁소를 부시기도 하셨답니다.”

왕질이 품에 지닌 옥퉁소를 내보이자 젊은이는 혼비백산하여 집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이미 세상을 떠난 줄 알았던 고조 할아버지가 중년의 사내로 돌아오자 한동안 그에 대한 소문이 떠들썩하게 동네를 돌아다녔다.

어느 날 왕질은 바둑을 두던 두 동자의 모습이 눈앞에 나풀거려 아무도 모르게 산으로 들어가 버렸다.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그 후 석실산을 도끼자루 썩는 산, 즉 ‘난가산(爛柯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왕질이 입산하였을 때는 진조(晉朝)가 아니라 양조(梁朝) 연간이었다. 시간 차이를 헤아려 보면 벌써 100년의 세월이 번갯불에 콩구워먹듯 흐른 셈이다.

왕질이 산으로 들어가 버린 바로 그 무렵, 신안군 태수로 임방(任昉)이란 사람이 부임해 왔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양무제의 바둑 친구로 매우 호연한 성품이었는데 신안에 부임하여 백성들을 잘 다스린 덕에 칭송이 자자했다고 한다. 손수 ‘난가의 전설’을 기록하여 전했다고 하는데 불행히 49세에 병몰하고 말았다.

그가 신안군 태수로 자진하여 부임했을 정도로 이곳의 경치가 뛰어났음을 일직선으로 선을 그어 당나라까지 가면 이백의 <산중문답>을 만나게 된다.

問餘何意棲碧山
笑而不答心自閑

桃花流水渺然去

別有天地非人間

어인 일로 푸른 산에 사느냐 물으니

웃으며 대답치 않으니 마음 역시 한가롭다

도화유수(桃花流水)는 의연히 가버리지만

인간세상 아닌 곳에 별천지가 있노라

여기서 잠깐 ‘도화유수’에 대해 사족을 붙인다. 전술한 바 있는 신안태수 임방이 49세로 병몰할 때 유언하기를,

“내가 생전에 가지고 있는 재물이라곤 도화미(桃花米) 20석(石)뿐이나 이 또한 신안에서 난 것이니 나의 고향으로 가져가지 말라.”

도화미라고 하니 이름부터 그럴 듯하지만 기실은 벌겋게 변색된 해묵은 쌀이다. 더군다나 그의 시체는 유언대로 무명으로 만든 수의에 잡목으로 짠 관에 넣어져 임방의 고향으로 옮겨졌기에 사람들은 성의 남쪽에 사당을 짓고 그의 명복을 기리며 그가 낚시대를 드리운 곳을 ‘방계(昉溪)’라 이름하여 부르게 되었다. 얘기를 마친 옥녀가 한 수의 시구를 일필휘지했다.

蔽一輕紈細

橫山翠帶長

微風吹漸散

猶濕小池塘

해를 가리울 땐 엷은 깁인 듯

산에 빗길 적엔 푸른 띠어라

실바람 불려서 흩어지는 듯

다시 보니 연못 물 젖어서 도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