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녀는 얘기를 가다듬었다. 그러니까···, 중국의 진나라 때에 왕질이란 나무꾼이 있었다. 나이 다섯에 어깨너머로 바둑을 배우더니 아홉 살 때에는 가까운 곳에서 그의 상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동네 바둑의 고수가 된 것이다. 신동이었거나 수재였을 성 싶은데 왕질은 이에 만족치 않고 죽장 짚고 바둑 유랑길에 올랐다.

바둑이란 것이 참으로 묘하다. 처음 돌을 잡아 호구를 치고 단거리 주자처럼 일자행마(日字行馬)만을 고집하다가 모래밭에 앉은 기러기같이 평사낙안의 비마걸이를 어느 틈에 흉내내고 보면 눈을 감고 잠을 청해 봐도 천정에서 똑딱거리는 바둑돌 놓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돌 놓는 소리가 익숙해지면 바쁜 일과에 시들해졌다가도 내기바둑의 그물에 걸려 두 눈을 토끼처럼 빨갛게 달군 채 날밤 새우기가 다반사처럼 돼버린다.

이렇게 되면 어찌된 셈인지 바둑수가 진일보는커녕 영락없이 꼬누가 돼버린다. 여기에서 한 단계 나가면 정작 바둑을 사랑하게 되어 왕질(王質)처럼 고수를 찾아 유랑길에 나서게 된다. 상대와 대국하여 이기면 하룻밤 밤이슬을 걱정 없이 피할 수 있지만 형편없이 지게 되면 식객(食客)이 아니라 며칠간은 그 집 머슴이 되어 잔일하는 번거로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럭저럭 떠돌다 보니 어느덧 신안군까지 오게 되었다.

석실산 근동엔 청허(靑虛)라는 바둑 고수가 딸 하나와 살고 있었다. 이미 속세의 때를 벗은 양 두 눈엔 조요로운 빛이 넉넉하였고, 바둑판을 놓고 대좌할 때엔 아련한 추억에라도 잠기는 듯 눈꼬리가 가을 호수 물처럼 파르르 떨렸다. 처음엔 엽전 열 냥을 걸고 두었던 내기가 1년 동안 머슴살이를 약정하였고 이번엔 10년을 약정하고 한 수 바둑을 청한 것이다.

“자네가 내 집에서 10년 동안 머슴살이를 하겠다면 나는 손에 가진 것이 없으니 부득이 내 딸을 걸 수밖에 없네.”

왕질도 그것을 수락하고 바둑을 두었던 것인데, 초반 포석이 끝나고 중반전에 접어들어 물고 뜯고 돌이 엉키더니 어느새 종반의 끝내기에 접어들었다. 아무리 집을 헤아려 봐도 열다섯 집 정도는 부족한 상황인데 언뜻 왕질의 시선이 좌하변으로 향한 채 한동안 들여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