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듯 캄캄한 밤에 불도 켜지 않고 바둑을 둔다는 말에 왕적신은 깜짝 놀랐다. 그는 귀뚜라미처럼 귀를 세워 안방의 동정을 살폈다. 이 집은 등불도 켜지 않은 데다 달빛도 없었다. 그렇다보니 바둑을 둔다는 것은 생각해 볼 수 없었다.

그런데도 노파와 며느리는 바둑을 두었다. 바둑판을 가져다놓고 그 위에 알을 놓는 게 아니라 구담(口談)으로 두었다. 노파가 나는 어디에 놓았다 하면, 며느리는 나는 어디에 놓았습니다 하는 식이어서 왕적신은 두 사람이 구담으로 바둑을 두는 현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자신은 한림원에서 황제의 바둑 지도를 하는 몸으로서 천하의 국수를 자처하고 있었다.

얼마 후 노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호라, 화국(和局)이다!” 승부가 나지 않은 빅이라는 말이다. 왕적신은 너무나 신기해 뜬 눈으로 밤을 세우고 다음날 아침 노파에게 머릴 숙이고 바둑 두는 법을 물었다. 노파는 낡은 바둑판에 도형 하나를 올려놓았다.

흑선으로 무슨 수가 있겠느냐는 무언의 물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