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극비문서 ‘에조 보고서’가 있었다. 쓰노다가 남긴 기록엔, 1895년 10월 9일. 또 하나의 문건이 일본으로 날아갔다는 것이다. 조선정부 내부(內部 ; 요즘의 내무부)의 고문이라는 직책의 이시즈카 에조(石塚英臟)가, 일본정부의 법제국장관인 쓰에마쓰 가네즈미(本松謙澄)에게 보낸 별도의 장문 보고서였다.

그렇다면 이시스카 에조는 어떤 인물인가. 명성황후가 살해 당할 당시 스무 살 가량의 일본 낭인이었다. 훗날(1988년) <민비암살(閔妃暗殺)>이란 책을 발간한 일본의 저명한 전기 작가 쓰노다 후사꼬(角田房子)에 의하면, ‘에조는 민비의 유해 곁에 있는 일본인’이라 설명하고 그가 명성황후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목격자였다고 썼다.

그런데 문제는, 자연적으로 생기는 의문이다. 왜 에조가 쓰에마쓰에게 보고를 냈는가 하는 점이다. 그 이유가 뭔가?

답변은 법국에서 참사관을 지낸 후사코 여사의 설명에서 찾을 수 있다. 에조는 명성황후 시해의 총책임자인 미우라 고로(三浦梧樓)의 재가를 받지 않고 비밀리에 전직상사에게 보고서를 보냈다. 이에 대해 쓰노다는 자신이 남긴 서찰에 ‘능욕(凌辱)’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모든 기록은 여기에서 끝났으므로 육도 선생 역시 더 이상의 의문점을 뒤적일 수 없어 오로관으로 돌아온 것이다.

     ▲명성황후 살해 보고서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일본은 7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철저히 숨겼다. 그런데 이 보고서를 찾아낸 사람이 일본의 역사학자 야마베 겐타로(1905~1977)였다. 그는 1966년 2월에 <일한병합소사(日韓倂合小史)>를 이와나미 서점에서 발간했다. 이 저서에서 ‘사체능욕’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나온 것이다.

이러한 <일한병합소사>가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것은 열여섯 해가 지난 1982년 6월, 신학자인 고 안병무 선생이 <한일합병사(범우사)>로 제목을 바꾸어 번역했는데 문제가 된 부분은 다음과 같다.

<···1985년 10월 7일 밤부터 다음날 이른 아침에 걸쳐 대원군이 훈련대에 있는 동안 일본 수비대와 대륙 낭인의 무리가 칼을 빼들고 경복궁에 들어가 민비를 참살하고 그 사체를 능욕한 뒤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

이 부분은 당연히 에조 보고서를 토대로 기록되었지만, 보고서에 대한 언급은 피했다. 그런데 야마베 겐타로는 ‘에조 보고서’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거론한 것이다. 1966년 9월 발간한 <일본의 한국병합>에서였다. 그러나 친북계열의 출판사에서 간행되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엔 불행히도 알려지지 않았다.

7개월의 시차를 두고 겐타로는 두 권의 책을 간행했다. ‘에조 보고서’가 언급된 두 번째 책은 국내학자들에겐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다시 22년의 세월이 흘러 쓰노다 후사코 여사의 <민비암살>을 통해 드러나게 된 것이다.

<···민비의 유해곁에 있던 일본인과 같은 일본인인 나로서는 차마 묘사하기 괴로운 행위를 하였다는 보고서가 있다. 전 법제국 참사관이며 당시 조선정부의 내부 고문관이었던 이시즈카 에조는 법제국장관 스에마쓰 가네즈미 앞으로 보낸 보고서에 ‘정말로 이것은 쓰기 괴로우나···.’라고 쓴 다음 그 행위를 구체적으로 적고 있다. 그러나 쓰노다 여사는 ‘구체적인 행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다.

이후 재일 사학자 김응룡 씨가 쓴 ‘에조 보고서’를 읽어보면 간담이 서늘한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명성황후는 살아 있는 채 능욕당하고 불태워지면서 죽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황후는 시간(屍姦) 당한 게 아니라 강간(强姦) 당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결정적인 이유는 에조 보고서에 ‘무리들이 안으로 들어가 왕비를 끌어내 상처를 입혔다(處刃傷). 나아가 왕비를 발가벗기고(裸體), 마지막으로 기름(油)을 부어 태웠다(燒失) 등의···.’ 일본 낭인들이 저지른 행위를 어떻게 필설로 옮기겠느냐는 넋두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쓰노다는 이 사실을 그 자신의 코드로 남긴 것이다. 죽음과 함께-.  [21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