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제갈량은 자신의 심정을 이런 도형으로 나타냈는가. 그것은 사람이 지닌 2중성의 감성 때문으로,‘패의 마술'이라 불리었다. 정의인사와 도덕군자를 자처할지라도 그 내면을 파고 들면 세상의 온갖 더러움과 타협한 구린내 나는 악취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썩어버리면 모든 사람이 맡을 수 있지만, 상한 곳을 숨기고 거짓으로 다가오면 그렇지 못하다. 이러한 술책의 향기를 읽을 줄 알아야 고수의 반열에 들 수 있다.
이러한 사람의 이중성을 제갈량은 ‘패'라는 것으로 나타냈다.

때마침 문 밖이 소란스러워진 것은 일본에서 온 두 명의 바둑 고수가 ‘오로관'을 방문하겠다는 연락을 해온 탓이었다. 그들은 일본에서 국수(國手)와 명인(名人) 타이틀을 땄기 때문에 거만 무례함은 짝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라는 말이 떠돌았었다. 과연 그런 소문을 증명하려는 소식들이 전해졌다.

“조선에서 가장 기력이 세다는‘오로관'의 관주에게 우리 일본 기객들의 뜻을 전한다. 우리는 본국에서 명인과 국수타이틀을 획득한 고수들인 바, 그대들 조선 기객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없다.
그리하여 우리가 먼저 <문제도>를 보내 그것을 ‘오로관'에서 풀어낸다면 마땅히 우리들과 자웅을 결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이 보낸 기보를 보고 흑선으로 결과가 어찌되는가를 파악해 주기 바라오.”

이러한 서찰 뒤엔 네 겹으로 곱게 접은 한 장의 기보가 끼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