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화의 얘긴 계속되었다.

“그리한 탓에 소녀 역시 선비님과 인연을 만들기 전에 묻고자 하던 일이 있었습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선비님께선 아녀자와 방사를 치른 경험이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저의 부친께선 당시 가정을 이루었기 때문에 총각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목숨을 구했습니다만, 선비님께선 지금껏 지내오면서···.”

선비의 표정이 해쓱하게 변하며 더듬거렸다.

“아가씨, 저는 혼례 전입니다. 어릴 때 정혼한 사람이 있다 했으나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가씨의 마음을 얻는다 하여 당장 혼례를 치를 입장도 못됩니다. 용서를 구합니다만···, 시생으로서는 일종의 풍류 놀이였습니다.”

“그렇다 해도 인연을 맺었으니 할 수 없는 일이지요. 다만, 선비님께서 약재를 구하지 못하시면 목숨을 잃게 됩니다. 이레 안에 눈 위를 달리는 뱀을 잡아야 합니다.”

“눈 위를 달리는 뱀?”

“그렇습니다. 설상사(雪上蛇)라는 뱀입니다. 그 뱀을 잡아오시면 약재 만드는 방법을 일러드리겠습니다.”

뱀은 한 겨울에 동면에 들어간다. 그러한 뱀이 웅크리고 있던 장소에서 뛰쳐나와 눈 위를 달리는 것은 무언가 음식을 잘못 먹었기 때문이다. 즉, 산 중에 있는 부자(附子)나 산삼 등을 삼켜 열기가 들끓어 가만있지 못하고 눈 위를 달려가므로 설상사란 칭호가 붙었다. 그런 뱀을 부친은 약재로 썼기 때문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으나, 선비의 경우는 달랐다.

당시는 눈이 내리지도 않았기 때문에 뱀을 구한다 해도 그것이 설상사인지를 분간할 수 없었다. 더구나 기일이 이레뿐이었으니 하늘이 돕지 않는 한 목숨을 구할 방법은 없었다. 어둑새벽 처녀의 방에서 빠져나간 선비가 약재를 쓸 뱀을 구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전임 형조정랑 박한수는 방(榜)을 붙여 사위 고르기를 자청한 것이다.

“그런데 세상일은 참으로 알 수 없지 뭡니까. 그 선비가 세상을 버린 지 석 달이 되었을 때, 그러니까···, 선화 아가씨가 이낙배라는 선비와 혼인한 지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를 잉태한 사실을 알게 된 거지요. 이선비 역시 부인의 뱃속에 든 게 자신의 씨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하게 되었고, 어느 날 부인에게서 아이를 갖게 된 연유를 듣게 된 거지요.

결국 열 달 후에 아이를 낳게 되었는데 딸이었어요. 똑같은 불행을 당할 것이라 걱정하던 중 이선비가 고향으로 볼 일을 보러 간 틈에 은근히 꼬리친 효험을 허가 받은 것이지요. 물론 허달호는 그런 저런 사실을 몰랐으니 다행한 일입니다만···, 소인으로서는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감사 어른도 아시다시피 ‘고삼원’이란 약재는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거든요.”

감사 유천기는 묵묵부답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맛을 쩌업 다셨다. 곁에 있던 탁일환 순검에게서 질문이 떨어졌다.

“자네가 구한 약재를 어디 쓴다는 말이 없던가?”

“그걸 알았다면 약재를 팽개쳤겠습니까.”

“마음에 짚이는 곳도 없는가?”

“없습니다···. 다만···.”

“다만?”

“허가는 세상이 다 아는 잡놈입니다. 하는 행동에 걸맞게 입방정도 대단하거든요. 두어 해 전인가, 그 자와 전사주(田舍酒 ; 막걸리) 한 잔 마실 때 우연히 임원철의 누이에 대한 얘기가 나왔지요. 나이 스물이 넘었는데 문 밖 출입을 삼간 탓에 고약한 소문이 항상 따라 다녔어요. 낯짝이 곰보라느니 눈이 하나 밖에 없다느니 떠들었는데 나중엔 혼자서 낄낄거리며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겠어요. 필시 물건이 둘이라고요.”

“물건이 둘이라니?”

“에헤헤헤, 임원철의 누이는 사내 구실도 할 수 있고 계집 구실도 하고···, 그래서 물건이 둘이라는 거였지요.”

유천기의 낯빛이 일그러졌다. 그는 검미(劍眉)를 세우며 일갈 호통이었다.

“본론만 말해라!”

사내가 정색하며 얘기를 바로 잡았다. 분위기가 다소 건조해졌다.

“그날 소인과 헤어진 허달호는 야밤에 담을 뛰어넘어 칼을 들이댄 모양입니다. 순순히 말을 듣지 않으면 토막내 버리겠다 으름장을 놓았겠지요. 불을 밝히지 않은 방이었지만 망사로 얼굴을 가린 게 이상했던 모양입니다.

그 여자는 허달호의 말을 따를 것이니 잠시 자신의 얘길 들으라는 것이었어요. 계집이 그러더랍니다. 상대의 몸을 만지지 않은 상태에서 관계를 맺자는 것이었어요. 허가는 그것을 ‘통음(通淫)’이라 했어요.

그런데 체위가 이상하더랍니다. 일종의 후배위(後配位)로 길거리에서 흘레붙는 개처럼 얽히는 체위였으니까요. 내가 아는 건 이것이 전붑니다.”

최가는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고 물러서자 일단 돌려보내고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고삼원’이 창(瘡)에 쓰는 약재라면 첫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게 ‘매독’이었다. 허달호 개인으로 보면 그런 병을 앓고 있을 법했지만 병증을 찾아내지 못한 걸 보면 남은 것은 한가지였다. 바로 문둥병이었다.

‘임원철의 배 다른 누이가 문둥병을 앓고 있다?’

그렇다면 고삼원이 당연히 필요할 것이다. 허달호는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최가를 통해 고삼원을 구하게 했을 것이다.

탁일환은 오순검을 대동한 채 임원철의 집을 찾아갔다. 생각했던 것처럼 만나주지 않은 채 체격이 단단한 사내가 앞을 막았다.

“아가씨가 만나지 않겠다니 돌아가십시오. 그렇잖아도 오늘 몇 사람이 다녀갔습니다만 몸이 불편해 만나질 못했습니다.”

“그럼 이 말을 안으로 전하게. ‘고삼원’을 어찌 처리하는 게 좋은지!”

사내가 안으로 들어가더니 한참 만에 나타나 다소 수그러진 낯으로 탁순검 일행을 안내했다. 휘장이 걸린 방의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