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선인이 건넨 건 조선의 풍류객들이 즐겨 쓰는 흥분 효과를 높이는 미초(媚燭)였다. 황촉의 심지에 약물이 묻혀있으므로 잠자리에 떨어진 처녀라면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연기에 중독되는 건 시간 문제였다.

장선인에게 주의를 받아서인지 선화 아가씨의 방문 앞에서 황촉에 불을 켠 후 일정한 시간이 흘러 출입문을 잠근 지도리를 풀고 안으로 들어가자 방안엔 흐릿한 불빛이 살아 있었다. 방안 구석에 켜 놓은 등에서 새어나온 불빛이었지만, 그것은 호롱불이 아니었다. 입을 벌린 조개(蛤)가 보석을 품고 있는 모양으로 불빛은 그곳에서 새어나왔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처녀가 불빛을 받은 채 다소곳이 앉아 있어 놀라움과 긴장감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문밖에서 안으로 들여보낸 미초의 영향 때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처녀의 두 볼은 발그레 달아올랐고 총기 있는 두 눈은  낯선 사내가 들어오는 것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사내가 더듬거렸다.

“내가···, 아가씨를 사모하여 이곳까지 오게 됐습니다.”

“그래서 미초를 태우셨나요?”

처녀의 말은 이내 이어졌다.

“어느 때인가 장선인이 그런 말을 했답니다. 나에게 악한 기운(惡煞)이 있어 나를 은애하면 불행한 일을 당한다는 경고였어요. 평생을 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명운인데 이렇듯 선비님이 찾아들었으니 기쁨과 슬픔이 한꺼번에 밀어닥치는군요. 소녀의 마음이 완악해 그러는 것일 것입니다만, 도련님을 보니 나의 작은 몸을 의탁해 한 세상 아롱다롱 살고 싶습니다만, 차마 그럴 수 없음을 용서해 주십시오.”

말을 하는 중에도 흥분 효과가 나타나는지 처녀의 얼굴을 더욱 붉어졌다. 단숨과 뜨거운 열기가 방안에 몰아치자 더욱 참기 어려운 것은 오히려 사내 쪽이었다. 어떻게든 처녀의 방에 침입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어쩌면 그 자신도 알 수 없는 방안에 퍼져나간 기묘한 향 내음의 영향에 의해 사내다운 자신감을 나타내려는 데 급급했다.ㅋ

“나 역시 아가씨께 여러 말을 듣고 싶습니다만, 그것보다는 이 놈의 애가 타올라 녹아버릴 것 같습니다. 모든 얘기는 나중으로 미루고 죽은 놈의 소원을 들어주듯 이 몸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십시오.”

“그래도 선비님께선 소녀의 얘기부터 들어야 후회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설령 내가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습니다. 그러니 아가씨께서 이 몸의 소원을 들어주십시오.”

사내는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이불 위의 여인을 덮쳐갔다.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오히려 교태롭게 받아들이는 처녀의 행동에서 이상한 기미를 느낀 것은 한 차례 방사를 치르고 난 후였다. 처녀의 눈에 물기가 비치더니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 선비를 향해 절을 올렸다.

“선비님께서 미초(媚燭)를 태워 소녀를 얻었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자보묘의 장선인이 선비님에게 준 것은 평범한 초였습니다. 사내의 몸을 흥분시키는 건 문갑 위에 놓인 조개 모양의 그릇 안에 든 불꽃입니다. 저 불꽃이 타오르는 기름엔 흥분 효과를 높이는 약물이 섞여 있어 이 방에 들어오는 사내들은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맙니다. 그렇다고 소녀가 함부로 몸을 굴려 사내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