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왜 전임 형조정랑 박한수는 이렇듯 복잡한 방법으로 사윗감을 골라야 했을까.

거기엔 남들이 알아서는 아니 될 이유가 있었다. 마을 뒤쪽에 자리한 도화림(桃花林)은 특별히 복숭아가 열리거나 복숭아 그림이 있다 해서 붙여진 명칭이 아니었다. 복숭아는 한 그루도 없었지만 이 근방은 풍광이 좋아 전주팔경(全州八景)의 하나인 ‘덕진채련(德津採蓮)’이 머지않은 곳이었다.

저수지가 있는 곳에서 연꽃을 따는 풍광은 아무래도 이국의 정서가 흐른 탓에 아가씨들 역시 수줍음을 타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어둑한 마음이 밝아지고 허기진 마음에 무엇이 채워진다는 것은 허구가 아니었다. 그래서 옛 이름을 완산(完山)이라 하여 온전할 완 자를 쓴 것은 지금의 전주(全州)가 온전할 전(全)자를 쓴 게 하등 이상할 게 없었다.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어느 서생이 소나무 원통을 자른 곳에 복숭아나무가 한 그루 없지만, 도화림이라 이름 하였으니 그 선비 말 마따나 ‘마음자락에 복숭아나무를 숨겼기 때문’이란 게 그나마 찾아낸 합당한 이유였다.

이곳에 있는 정자를 ‘도화정(桃花亭)’이라 하였는데 근방을 놀러 온 선비들은 이곳에서 시회를 베푼 경우가 많았다. 어느 날 전임 형조정랑 박한수의 여식이 이곳에 나왔다가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를 본 선비 하나가 예서 허드렛 일을 하는 열대여섯으로 보이는 시동(侍童)에게 물었다.

“자네가 내 부탁을 들어주면, 자네 청은 무엇이든 들어주겠다. 내가 저 처녀와 가까워 질 수 있는 방법이 뭐겠느냐? 그것을 가르쳐 준다면 네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들어줄 것이다.”

시동은 몇 번이나 안 되겠다는 모양새를 취하더니 하루가 지나서야 방법을 일러주었다.

“그 동안 소인에게 그런 청을 드린 선비님이 적지 않았습니다만, 모두들 소인의 말을 듣고 생각을 돌렸습니다. 우리 아가씨 말씀이, 사흘 후면 한양에서 대감마님이 내려오시는데 그날 밤, 아가씨의 마음을 얻을 행동을 보여준다면 뜻을 얻을 수 있다 했으니 도련님께서 좋은 방법을 생각하시어 소원을 이루십시오.”

아가씨 이름은 ‘선화(메꽃)’라 하였고 그녀의 부친이 형조정랑이라는 점에 대해 젊은 선비는 한동안 곤혹스런 표정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마음 결정을 굳혔다.

“어쨌든 좋네. 내가 아가씨의 마음을 얻어 함께 날을 세운 걸 안다면 아가씨 부친이 이 사실을 안다하여 무슨 허물이 되겠는가. 아가씨와 혼인은 할 수 없지만, 내 첩실로는 반드시 거둬들이겠네.”

첩실이라는 말에 시동은 소스라치게 놀랐으나 젊은 선비는 대수롭지 않은 분위기였다. 자신은 이미 혼인을 약속한 처지고 자기가 듣기로 선화라는 아가씨는 본부인이 생산한 자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투였다. 시동의 말이 은근해졌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보기엔 선비님 마음이 아가씨께 향해 있으니 도움이 될까하여 드리는 말이니 이상히 여기진 마십시오. 이곳에서 아랫길로 오리(五里) 가량 가면 ‘자보묘(子寶廟)’라는 곳이 있는데, 근처 마을에 혼기를 놓친 처녀 총각들이 자보묘에 안치된 소상(塑像)을 향해 발원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거기엔 두툼한 책자(방명록)가 한 권 놓여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자보묘의 명화책(名花冊)’이라 부른답니다. 소인은 소상의 인물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곳에 가시어 발원하면 뜻을 이룬다는 말이 있으니 선비님께서 좋은 방도를 찾으시리라 봅니다.

제가 듣기엔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그곳 명화책에 마음에 둔 상대의 모습이나 글을 남겨둔다 했으니 우리 아가씨도 글을 남겼으리라 봅니다. 선비님께서 그곳에 계신 장선인(張仙人)이란 도인님의 마음을 움직여 명화책을 보신다면 분명 뜻을 이룰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