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가는 기나긴 한담(閑談 ; 여담)이라도 엮는 듯 입가에 침을 두르고 분위기를 가다듬었다. 그 역시 난장판에서 한가락 하던 솜씨라 관원들이 들어주는 것 같았으나 사실은 그의 얘기 속에 그림자처럼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려는 의도였다.

“내가 이선비, 이선비 하지만 그 분의 본래 이름은 이낙배(李駱培)로 본래 나주 땅에서 살았답니다. 그에게 학문을 내린 스승은 나주의 명산인 금성산 출신으로 그 산이 안고 있는 금안동(金鞍洞)에서 태어났답니다.”

여기까지만 얘기해도 관원들이 알아들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최가는 사람들 눈빛이 담담한 것을 보고 자신의 설명이 더 보태져야 함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두어 번 헛기침을 뿌리고 금안동 역사로 거슬러 올라갔다.

“좌중에 계신 분들도 아시겠지만 시생이 유기장이로 나서기 전엔 명산대천을 유람하며 대갓집 혈자리를 찾아헤매던 소문난 풍수장이였습니다. 그런 나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금성산은 담양의 주월산에서 내려와 옥산을 거쳐 금성산으로 용맥을 쳐든 형탭니다. 이곳엔 우리나라 최고의 명당이 있다 할 정도로 그 품안에 호남의 3대 명촌 금안동이 자리합니다.”

금안동을 안고 있는 이 산자락(금성산)은 고려시대 이후, 전국의 팔대 명산이나 십일대 명산으로 손 꼽을 정도인 것은 역사적 사실로 증명된다는 것이다. 산의 정상엔 금성산성이 있어 견훤과 왕건의 싸움터로 알려지고, 삼별초의 나주 공략엔 나주를 지키려는 의혈인사들의 전공담이 촘촘히 박힌 곳이다.

나주의 진산인 금성산은 [증헌문헌비고]라는 책자엔 여러 얘기들이 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금성산이 안고 있는 금안동은 쌍계동에서 자랑하는 ‘대동계’를 시행하는 마을로 알려져 있다. 그곳의 명칭은 고려 조에 명문장가로 이름을 떨치던 정가신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멋들어지게 문장을 휘둘러 명황제로부터 금안장을 받아온 데서 ‘금안동’이란 이름이 붙었다.

어디 그뿐인가 조선왕조 세종대왕 때 훈민정음 창제에 힘을 기울인 신숙주가 태어난 마을로 유명했다. 이곳 쌍계정 대들보 다락에서 지금도 ‘대동계’가 성행되어 오고 있지만, 최가는 이낙배라는 선비의 고향이 이곳 어디로 알고 있었다. 최가의 말을 듣던 유감사가 분위기를 끊었다.

“자네 말을 들으면 하루 건 이틀이건···, 아니 한 달이 돼도 끝이 나지 않겠네. 그런저런 얘긴 나중에 듣기로 하고, 전임 형조정랑이 내건 사위 고르기나 매듭짓게.”

“아, 그렇게 하겠습니다. 전임 형조정랑에겐 선화(旋花)라는 따님이 있었습니다. 그 아가씨 사윗감을 고르려는 뜻으로 ‘우(牛)’를 붙였습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 것과는 달리 어느 누구도 그 문제에 답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자 사람들은 모이기만하면 억하심정이 있는 듯 전임 형조정랑 박한수 어른에게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아니, 고작 ‘우(牛)’라는 글자 하날 써놓고 그에 대한 답변을 내놓으라니 도대체 무슨 답을 내놓으란 건가. 소(牛)라고 했으니 그놈이 암놈인지 수놈인지를 분간하라는 게야 뭐야! 아니면 소처럼 끈질기게 일 잘하는 사내를 구하고 싶다는 게야? 이런 제길, 방을 내건 자의 마음이 어디 있는지를 모르는데 무어라 답을 쓰라는 게야? 웃기는 영감쟁이 같으니!”

그런데 한 달이 거의 다 되어갈 무렵 이낙배라는 선비가 그 집을 찾아가 필낭을 풀어 먹물에 붓을 적시더니 단숨에 ‘사(士)’ 자를 끼적이고 상대를 바라보았다.

“자네가 이 글자를 쓴 이유가 뭔가?”

“나으리께서 곳곳에 방을 붙인 ‘우(牛)’ 자는, 주(朱) 자가 좌우로 날개를 펼친 모양(八)을 거둔 모습입니다. 주작(朱雀)은 흉측한 신을 나타내는데, 주작이 날개를 거뒀다면 이것은 ‘관재를 비롯해 구설과 시비가 없는 것’을 뜻합니다. 나으리께선 이런 사람이 딸의 신랑감으로 찾아오라는 뜻으로 우 자를 붙였다고 봅니다.

더구나 우는 알리고 싶어도 할 말이 없으면 우(牛)가 되고, 할 말이 있으면 고(告)가 되는 것이지요. 이것은 딸의 신랑감을 구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자네가 ‘사(士)’ 자를 답변으로 내놓았다?”

“그렇습니다.”

“하면, 내가 준비한 글자가 무언지를 알아보게.”

이낙배는 잠깐 생각하고 나서 다시 필낭을 열어 붓 끝에 먹물을 적셔 일필휘지했다. 그것을 바라보던 전임 형조정랑 박한수가 서랍 안에서 네 겹으로 접힌 종이 조각을 꺼냈다. 그것들을 동시에 펼치니 드러난 것은 임(壬)이었다.

두 개의 임 자. 박한수는 몹시 흠쾌한 듯 대소를 터뜨리며 즐거워했다. 오랜만에 자신의 속내를 알아줄 사윗감을 찾았다는 뜻이었다. 유감사의 물음이 이내 떨어졌다.

“사(士) 자를 내놓은 건 무슨 뜻인가?”

“나중에 이선비에게 들은 얘깁니다만, 사는 길할 길(吉)의 절반이니 아주 좋은 것은 아니고, 벼슬길에 나간다는 사(仕)의 절반이니 큰 자리에도 나갈 수 없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사윗감은 글을 읽은 선비지만 벼슬자리에 오를 수 없는 중인이라 했습니다.

또한 임(壬)이란 글자는 아홉 번째 천간으로 박한수 마음에 흡족한 사람이면 당연히 수(須)인데, 이것을 쪼개면 맡길 임(任)과 탁(託)이 됩니다. 전임 형조정랑 박한수가 준비해놓은 것은 임(任)이었고, 자신을 사윗감으로 받아들인다고 보면 임(壬) 자를 내놓을 거라 생각한 이낙배의 예측도 맞아 떨어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