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죽었다고 먼 길을 떠난 서방은 세상 사람들 이목으론 의리를 내세운 선비요, 사내 중의 사내다운 평가를 받을지 모르나 그 계집이 보았을 때엔 형편없는 졸장부라지 뭡니까. 제집 아궁이에 불이 꺼진 지 몇 달이 되는데 남의 집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는다고 손가락질 하는 것이 동물들 살아가는 우화(寓話)지 별것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자신도 고절한 선비의 마누라로서 그깟 허섭스레기 같은 놈의 입김을 받았으니 이거야말로 모를 일이란 겁니다.”

여기까지만 얘기했을 때도 최가는 이선비의 몸에 이상이 있거나 계집의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젊은 계집이 미친 듯한 행색을 보이는 것도 우스워 이를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아이를 묻었는데, 나주에서 돌아온 이선비는 마치 남의 집 일인 듯 관심을 보이지 않더란 것이다.

“이선비의 부인 박씨의 아비는, 전임 형조정랑으로 궤장을 하사받고 고향으로 돌아온 사내였는데, 기골이 훤칠하고 술과 계집을 칠십 고개에서도 가까이 할 정도로 호걸이었어요.

나라 일을 하는 사람은 두 가지 측면에서 평가를 받는다고 합니다. 오로지 ‘정(正)’을 따르는 자와 ‘의(義)’를 내세우는 쪽이죠. 옳은 일이면 자신의 목숨쯤 잡초처럼 하찮게 여기면서 달려드는 것이니 당연히 세상의 미련 같은 것은 가질 수 없는 편이죠. 그러나 ‘의’를 내세운 쪽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게 묘한 느낌을 던지거든요.”

이렇게 말한 것은 전임 형조정랑이 기생집에서 객담처럼 허세를 부린 얘기 때문이었다고 달갑잖은 표정을 지었다.

대부분 ‘의(義)’를 얘기할 때는 ‘모든 것이 잘 정리되거나 똑바르게 되어가는 것이 좋음’을 나타낸다. 아름다움(美)이나 올바름(義)을 나타내는 글자엔 한결같이 ‘양(羊)’이 들어가 있다.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데도 ‘양’이 들어가고 올바름을 가리키는 데에 양이 들어간 것에 대해 퇴임한 박정랑은 거리낌 없이 말했다는 것이다.

“양(羊)은 앞을 잘 보지 못하네. 또한 혼자서는 길을 갈 수 없어 항상 무리(群)를 지어 이동하거나 살고 있음을 볼 수 있네. 무리를 짓는 것은 양이 그렇게 살기를 희망하므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혼자서는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둥그렇게 무리짓는 것을 ‘군(群)’이라 하네. 이러한 양에 큰 대(大)가 합쳐지면 아름답다는 미(美)네.

그렇다면 대(大)라는 것은 뭔가. 이것은 사람이 팔다리를 벌리고 있는 모양이야. 양이 팔다리를 벌리고 있는 모습을 아름답다고 했다면 이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말할 수 있네. 하나는 ‘죽어있는 모습’이네. 죽었으니 팔 다리를 벌리고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방사를 나누기 위해 이불 위에 누워있는 모습’이지. 다시 말해 아름다움은 여인의 방사와 관계있는 것이네. 세상 사람들은 어떤 말을 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네.

예로부터 의리를 내세우던 영웅호걸치고 계집을 밝히지 않은 사람들이 없었는데 그것이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이고 의리를 아는 사내지.”

듣고 보면 그럴듯하여 퇴임한 박정랑의 말이 맞는 것 같았으나 조금 시간이 지나면서 반론을 펴는 무리가 나타났다.

“그 노인장이 이제는 망령이 났구만. 어떻게 아름다움과 올바름을 나타내는 의리같은 게 계집의 벗은 몸과 같은가. 그래서 한양에 있을 때엔 그토록 계집의 속살을 주무르고 난봉꾼처럼 행세했단 말인가. 나랏일을 하는 자가 힘이 약한 여인네를 보면 거들고 도와주어야 하거늘 고작 옷을 벗기고 속살 주무르는 데 관심 있으니 그게 어찌 관모(官帽 ; 벼슬아치)를 쓴 자가 취할 행동인가.”

얘기가 이런 정도에서 끝을 낸 것이 아니었다. 이제는 그가 읽던 서책이며 학문의 정도가 시장바닥에서 아녀자들을 등치는 시러베 상놈으로 몰아붙였다.

“어디서 배운 학문인지 모르겠으나 고작 한다는 소리가 음담패설이나 씨부렁거려 한양의 벼슬아치들을 떼거리로 시궁창에 밀어넣는 짓을 하고 있으니 그 자가 어찌 형조정랑이고 이 나라 관리였는가 말일세. 새삼 치밀어 오른 분기를 참을 수 없네. 아름답다(美)는 것은, 양이 스스로를 희생하는 모습이지 무슨 방사를 하고 죽어 나자빠진 모습인가.”

불평을 하고 쉬쉬 속살대며 어깃장을 놨지만 본인이 있는 데선 감히 할 수 없는 말이어서 뒷공론으로만 구린내나는 손가락질을 풍겼다. 그런데 이 전임 형조정랑이 느닷없이 사윗감을 고르겠다는 방(榜)을 붙여 마을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나는 전임 형조정랑으로 나랏일을 보살피다 고향으로 돌아온 박한수(朴翰守)다. 나의 딸이 과년하여 시집갈 나이가 되었는 데도 늙은 아비를 생각해 혼행을 미루고 있으니 오늘에 이르러 감히 방(榜)을 붙여 널리 사윗감을 고르려 한다. 재산이 있고 없고를 따지는 게 아니고, 학문이 많고 적음도 시비를 논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방문에 쓴 ‘우(牛)’가 무슨 뜻인지를 안다면 마땅히 이에 대한 답변을 내놓는 것으로 족하다. 누구든 나의 사윗감으로 도전하라.>

평소 호방한 성격으로 보면 장인을 삼아도 부족함이 없을 일인 데다 관직에 있을 때도 무난한 벼슬아치의 길을 걸었고 보니 손가락질 받을 일도 아니었다. 글줄이나 읽은 선비들과 도학(道學)에 술수가 있는 기인이사들이 찾아들었지만 ‘우’의 뜻을 깨뜨리지 못하고 물러났는데 이십 세의 약관인 이선비가 그 뜻을 알아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뜻은 이렇습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