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삼원?”

유천기는 형방을 불러 고삼원의 쓰임새를 알아보았다.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엔 ‘창(瘡)’에 쓰이는 약재라 했는데, 당시만 해도 ‘창증’엔 쉽게 구할 수 있는 소금을 많이 애용했었다. 우리나라 서해안 바닷물은 암과 같은 불치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천연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천일염(天日鹽)’은 유독성 광석물질과 핵비소(약소) 등이 혼합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므로 의원들은 소금에 함유한 독성을 제거하고 발전시켜 죽염(竹鹽)을 합성해냈다.

약재를 구하기 쉽지 않았던 당시로서는 비교적 쉬이 구할 수 있는 천일염을 가까이 했는데, 죽염의 주원료인 대나무와 서해안의 천일염이 합해지자 지상의 수정(水精)을 혼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을 오행으로 풀면, 물을 이루는 원료인 금(金)을 신(申)이라 하고, 그 모체인 토(土)를 진(辰)이라 한다. 진의 힘을 얻어 신에 의해 이뤄진 수정을 자(子)라 하는데 대나무는 동짓달 기운을 근원으로 화생한 물질이다. 땅속의 유황정(硫黃精)과 수분 속의 핵비소를 흡수해 창증(瘡症)의 치료제인 유황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보양과 보음 성분의 효능도 지니고 있다.

창증에 관한 여러 성분과 약재 등을 살피며 책장을 넘겨가는데 아래쪽에 ‘가장 악독한 창에 사용된다’는 글귀가 붙어 있었다.

‘가장 악독한 창이라?’

다시 눈여겨보니 거기에 해당하는 것이 천포창(天泡瘡) · 양매창(楊梅瘡) · 음창(陰瘡) 등에 주로 쓰이는 약재로 이러한 병들은 매독과 같은 일종의 성병이었다.

아래쪽에 쓰인 약재 사용시의 부연설명엔, ‘구료막(救療幕)을 설치하고 바닷물에 목욕해야 효과가 있다’고 했다. 이것은 단순한 성병이 아니라는 점을 유천기는 지적했다.

“창이라 했을 때엔 병증이 좀 심한 것을 뜻합니다. 양매창이니 음창이니 하는 것은 매독 중에서도 악독한 것으로 살이 썩어져가는 것으로 독성이 어찌 심한지 사내가 이 병에 걸리면 일주일 안에 양경의 살이 썩어 고름으로 떨어져 나중엔 여인네와 관계할 수 없을 정돕니다.

그리고 천포창은 천형으로 알려진 문둥병입니다. 누구라도 이 병에 걸리면 밖에 알려지는 것을 꺼려 입단속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듣다보니 이해가 되는 구석이 있었다. [삼국유사]나 [고려사] [향약구급방]엔 ‘나병(癩病)’이란 병명이 없다. 그러나 [세종실록]엔 ‘나병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구료막을 설치해 바닷물에 목욕시켰다’는 부분이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광해군 때에는 경상 · 강원 · 충청도 환자들을 남녀별로 수용해 치료시켰는데, 이들을 ‘도사(都事)’로 하여금 각 지방을 순시케 하여 환자의 상황을 등록시켰다. 만약 이를 소홀히 하면 엄벌에 처했다.

문둥병자가 발생하면 아무래도 그들의 접근을 두려워하여 돌을 던지거나 몽둥이를 휘둘러 먼 곳으로 쫓아내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문둥병자들이 넌짓넌짓 사람 사는 곳으로 몰려오는 것은 그들이 미신적인 속설을 신봉해 ‘사람의 장기를 약으로 사용했다’는 점 때문이다. 이런 점을 종합해 볼 때, ‘고삼원’이란 약재는 평범한 치료제가 아니었다.

“감사께선 어찌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최가를 잡아들여 그것을 허달호가 구하게 된 동기를 알아보아야겠습니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네.”

관원이 파견되고 삼거리 술도가에서 막걸리를 퍼 마시던 최가가 잡혀왔다. 그는 건장한 체신에 걸맞게 목소리까지 우렁그렁했다.

“내가 무슨 죄가 있어 잡아들이십니까?”

“자네에게 죄가 있다기보다 이미 세상을 버린 허달호의 행동이 의심쩍어 불러들였네. 자네가 그 자의 심부름을 했다는데 사실인가?”

최가는 평소의 걸쭉한 입담꾼답게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두어 번 빈 입맛을 쩝쩝거리고 나서 감춰둔 얘길 끄집어냈다.

“허달호는 근동이 다 아는 시러베 쌍놈입니다. 한마디로 인육을 뒤집어 쓴 철면피라고 해야겠지요. 석 달 전엔가 대나무골에 사는 이선비 집에 볼 일이 있어 들렀는데, 그것은 넉 달 전 이선비의 부인이 유기 몇 개를 들여놓은 탓에 돈을 받기 위해 갔었지요. 이선비는 나주에 사는 친구의 부친이 세상을 떠 그곳에 다니러 갔고, 집안에 두 살짜리 사내 녀석과 부인뿐이었어요.

내가 그 댁 집안에 들어설 때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더라구요. 사내가 우격다짐으로 계집을 겁간하는 모양새였어요. 내가 알기론 이선비는 나주에 갔는데 샛서방인가 싶어 몸을 숨기고 보았더니 뜻을 이루었는지 고의춤을 추스르며 느적느적 나온 사내는 허가가 아니겠어요. 나는 ‘오라 이놈이 억지로 겁간한 것이구나’ 싶어 머릴 굴리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인기척을 내고 집안에 들어섰지요. 누구 없느냐고 소릴 질렀더니 이선비의 부인이 눈자위가 붉어진 채 문을 열더니 한마디 합디다.”

“?···.”

“자식새끼가 죽은 날 돈 받으러 오는 건 예의가 아니라며 봉창문을 덜컥 닫아버리지 뭡니까. 소인은 부아가 치밀어 견딜 수 있어야지요. 그래서 내가 ‘외간남자 끌어들여 재미를 보더니 이젠 머리가 어찌된 거요?’하고 퉁명스럽게 몰아붙였더니 봉창문이 벌컥 열리며 죽은 아이를 안고 이선비 부인이 나오는 게 아니겠어요!

알고 보니 허달호란 놈이 방사를 하던 중 잠을 자던 아이가 깨어나자 한쪽 발로 목을 눌러 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건 부인의 말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