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철의 주검이 발견된 그날, 서리배와 항인을 데리고 현장으로 달려간 유감사는 주위를 단속한 후 세세하게 증거찾기에 열심을 보였다. 산그늘이 짙게 내린 산록(山麓)이었지만 무더운 여름이라 이미 시신에는 구더기가 들끓었다.

중앙에서 지방 관아에 보내진 [중수무원록]에는 시체의 상태가 계절과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파악하는 게 중요한 일 중의 하나로 설명했다. 시간이 경과하는 것에 따라 사체의 변화를 정확히 안다면, 거꾸로 사망 후의 경과 시간을 추급(推及)해 언제 죽었는 지를 추정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사건이 일어나면 [중수무원록]에 근거해 사건을 파헤치는 것이 지방 관아에서는 정해진 일과였다.

그 첫째 단계가 얼굴에서부터 배 · 겨드랑이 · 가슴 부위의 살빛이 약간 누렇거나 퍼렇게 변해가는 것이고, 둘째는 코와 귀 등에서 많은 악즙(惡汁)이 흘러나오고 배가 팽창하고 구더기가 나오는 과정이다. 그리고 다음이 두발(頭髮)이 탈락하는데 이 점에 대해 [중수무원록]은 계절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설명한다.

봄과 가을은 기후가 온화하여 2~3일이 여름의 하루에 해당하고, 8~9일이면 여름의 3~4일에 비할 수 있다. 그런가하면 추위는 5일이 지나야 아주 더울 때의 하루와 같으며 15일이 더울 때의 3일이나 5일과 같지만 한 가지 유의해야 할 것은 모든 사람이 일관된 부패 정도(시간)를 갖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비만한 사람과 마른 사람, 또는 병약한 사람들은 부패 속도가 다르다.

[중수무원록]에는 ‘살이 찐 젊은 사람은 문드러지기 쉬우나 마르고 늙은 사람은 상하지 않는다’고 했고, 기후에도 남과 북의 차이가 있으며 평지와 산중의 격차가 있기에 이것을 헤아리는 관장의 판단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므로 임원철의 주검이 발견된 그날 관원들조차 고약한 냄새 때문에 꺼렸던 점을 떠올리며 유감사는 입맛을 다셔댔다. 물론 검시절차는 두말할 나위 없이 ‘초복검험관문식(初覆檢驗關文式)’의 양식에 따라 출발 일시, 검험하는 서리와 오작인(仵作人)의 이름, 시체가 놓인 장소, 관아에서 현장까지의 거리 등을 적고, 죽은 자의 친척관계인 시친(屍親)을 찾아 임원철의 배 다른 누이에게 알렸으나 당사자의 건강이 좋지 않아 참예할 수 없다는 말에 직접 검험에 나선 것이다.

그렇다하여 세세히 관문 양식을 따져가며 처리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 것은 동행한 항인들이 기록한 것이므로 자신은 사체가 어찌 놓였는가, 살해 방법은 무어라 보는가 등등을 조사했다.

배가 갈라지고 의당 있어야 할 간을 도둑맞았다면 그것이 문둥병자의 소행이라는 건 누구든 생각해볼 수 있는 일이었으나 그러한 괴질을 앓는 자의 소행이 아니라면 깊은 원한에 의한 살인으로 보았으나, 임원철의 평소 행동이나 주변인물 들에게서 얻은 정보는 결코 그런 쪽과는 거리가 멀었다.

심성이 무난한 임원철이 원한 살 일이 없고 보면 이것은 우발적으로 일어난 살인사건으로 단정돼, 검험 기록에서 의문이 가는 부분은 잊지 않고 적어놓았다.

<임원철의 주검(屍)에 특이한 점은 다른 기관과는 달리 간이 통째로 사라졌다는 것이다. 사체의 흉부는 반월형(丿)을 이루어 깊이 패었는데 시일이 경과됐다고는 하나 도검에 의한 손상임을 알 수 있다.>

근처를 수색하던 관원들은 머지않은 장소에 문둥병자가 살고 있는 움막을 발견했고 흉기로 사용된 낫이 발견돼 관찰사의 복검을 거쳐 문둥병자는 참형에 처해졌다.

셋째 날 - 점(丶)이 찍힌 목기와 부인의 뼈

유감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탁일환은 아래턱을 감아쥐며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문둥병자가 사건에 개입한 여러 여건에 부합된 바는 있으나 시장(屍帳)에 나타난 점을 살필 때 임원철은 날선 검에 의해 살해됐다는 색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시일이 흘렀으니 구더기가 들끓었을 것이고, 베인 상처 역시  본래의 모양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나, 베인 상처는 그 형태가 틀을 유지하기 마련이니 상처의 모양(丿과 같은 형태)으로 볼 때 이것은 결코 낫을 사용한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문둥병자가 항우처럼 힘이 장사가 아닌데 어찌 한 칼에 임원철을 쓰러뜨릴 수 있겠습니까.

상처의 흔적으로 볼 때, 칼을 쓴 자는 그 방면에 이골이 난 잡니다. 그렇다 하여 문둥병자들이 죄가 없다는 건 아닙니다. 그들 누군가는 죽어있는 사체를 발견하고 간을 얻으려 사체를 참혹하게 도륙했으니까요.”

“임원철을 살해한 범인이 따로 있다는 것인가?”

“정황으로 볼 때, 문둥병자 역시 씻지 못할 죄를 지은 건 사실입니다만 그것은 우연의 일칩니다. 임원철이 살해되었을 때, 지니고 있던 물건은 없었습니까?”

“있었네. 죽은 부인의 뼈였소. 그날 휴수(休囚 ; 무덤을 파헤쳐 상태를 보는 것)가 있었으니 부인의 무덤에서 가져온 것이겠지. 사건이 종결돼 가까운 인친들에게 돌려주려 했네만 찾는 사람이 없어 관속지(官屬地 ; 관아에 속한 땅)에 매장했네. 그 자가 무슨 이유로 뼈를 들고 왔는진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임원철이 처분한 재산을 두고 한동안 이런 저런 얘기가 있었네.”

“어쨌든 동자승이 된 그 아이의 얘길 들어봅시다. 묶인 매듭이 어디쯤인지 그 아이가 얘기할지 알겠습니까.”

유감사가 방을 빠져나가자 탁일환은 여전히 시장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는 신임 순검 오치환을 불러 귓속말로 명한 후 밖으로 내몰았다.

“허달호는 죽기 전 가까운 술집에 있었을 것이다. 그 자가 타살된 정황은 없지만 실족하여 죽게 된 것과 연관이 있는 건 모두가 술이다. 너는 그것을 알아 보거라. 이곳 전주감영에 발 빠른 자들이 있을 것이니 자네 수단껏 구슬려 보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