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태어날 때만 포태 원리를 나타내는 게 아니고 죽을 때도 그에 따르게 됨을 탁일환은 강조했다. 이번 사건에서 검험관이 놓친 것은 저수지나 작은 연못 등의 사고에서 흔히 간과 되는 일기 변화를 놓친 탓이었다.

물에 빠진 사체가 있다 하여 곧 바로 끌어내는 경우가 지방 관아일수록 많았지만, 그것은 사소한 실수다. 사체가 떠올랐다면 그곳이 죽을만한 장소인지를 사방으로 측량해 보아야 하고, 물의 깊이를 안 후에 사체를 끌어내야 한다.

이날 저녁 간단히 술자리를 마련한 유천기는 순검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나서 ‘죽은 자에게서 온 서찰’을 슬그머니 꺼내들었다. 오치환이 그것을 읽는 중에 유천기는 주섬주섬 서찰을 보낸 당사자의 얘기를 풀어놓았다.

“이 서찰은 전주 감영 관아의 백성으로 이름을 임원철(林元哲)이라 하오. 사람의 됨됨이가 성실 근면하여 모아놓은 재산이 적지 않았습니다만, 그의 부친이 다른 곳에서 딸을 하나 보았는데 본처가 세상을 떠나자 집에 데려와 살았었네. 몇 해 전 시집을 보내려고 혼처를 정했으나 파혼이 되어 집에 있다는데 잘해야 스무 살 정도 되었겠구만.”

둘째 날 - 문둥이에 살해된 임원철 사건 기록

초임 순검 오치환에게 건네받은 청원인의 서찰을 한쪽에 내려놓고 탁일환은 귀를 기울였다. 세 해 전이라 했다. 멀쩡하던 아들이 잦은 병고를 치르고 자신에게도 이상이 생긴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불면증에 시달리자, 점쟁이를 찾아가 은밀히 연유를 알아보았다. 동전을 뿌리고 괘사(卦辭)를 주무르던 점쟁이 혀끝이 요동쳤다.

“이거 큰일났습니다. 장차 집안에 크나큰 우환이 닥칠 것이오. 아들을 다른 곳에 피신시키지 않는다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만날 것이니, 임씨 댁 손이 끊기는 걸 막자면 시생이 일러준 대로 하십시오. 우선 지난 해 아드님을 낳다  세상을 뜬 부인의 무덤을 파헤쳐 유골상태를 보시되···.”

점쟁이는 혹여 다른 사람이 들을 새라 비책이라는 것을 임씨의 귓가에 소곤거렸다. 그렇게 하여 어린 자식은 모악산(母岳山) 귀신사에 맡겨 동자승이 되게 한 후, 선산에 묻은 아내의 무덤을 파헤치자 인근 사람들이 임씨의 행위를 이상히 여긴 것은 당연했다.

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 있거나 알게 모르게 우환이 다가올 때엔 선산의 부모 무덤이나 내자의 무덤을 파헤쳐 무덤 안에 이상이 있는지를 살피게 된다. 이것이 휴수(休囚)다.

특별이 이상한 점이 나타나지 않자 봉분을 원래대로 세우고 산역꾼들과 술 한 잔 나누고 헤어졌는데 집으로 돌아오던 임원철이 감쪽같이 살해당해 유기된 것이다. 그의 주검은 이틀이 지나 근처에 봉분을 만든 산역꾼들에게 발견됐는데 주검의 상태가 워낙 처절했다.

복부가 처참하게 찢어지고 뱃속의 간(肝)이 사라진 것이다. 초검을 맡은 전주 감영과 복검을 담당한 관찰사의 시장엔, 임원철의 죽음에 몇 가지 특기할 사항을 기록하고, 사건 당시 모악산 움막에 사는 문둥이 사내를 범인으로 체포해 사건을 종결지었다. 물론 그렇게 한 데엔 근거가 있었다.

첫째, 문둥이들은 사람의 간을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속설을 믿고 예로부터 어린이들을 유인해 살해하였다는 점

둘째, 문둥이가 거처하는 모악산 움막 근처에서 임원철을 살해한 무기로 보이는 낫이 발견되었다는 점

셋째, 인근엔 그들 외에 왕래한 자들이 없었다는 점 등이다.

이런 점을 이유로 당시 전라도 관찰사 최석인(崔錫仁)은 문둥이를 잡아 처단하고 사건을 종결지었는데 세 해가 지난 지금, 모악산 귀신사에 동자승이 되게 한 아들에게 전주 감영을 찾아가 자신의 한을 풀어주고, 아들이 떳떳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청원이었으니 유천기로서는 백 번을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일을 뒤집어 보면 자신의 죽음에 이상이 있음을 알려온 것이며, 그로 인해 아들의 목숨을 구하고자 절에 보내 동자승을 삼게 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특이하게도 임원철은 자신이 살해당할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어서 탁일환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임원철의 아들은 내일 만나기로 하고, 우선은 그 자의 주검에 관한 시장(屍帳 ; 검시기록)을 보세. 오순검은 형방을 따라가 초검과 복검의 시장 기록을 찾아오게.”

해묵은 먼지에 쌓인 임원철의 시장을 들추자, 묶인 끈 속에 잠을 자던 기록들이 탁일환의 손 끝에 깨어났다.

임원철의 주검이 전하는 메시지는 ‘사라진 간’이었다. 멀쩡한 사람의 생간이 필요한 것은 오직 문둥병자였다. 또한 사건이 일어난 당시, 흉기로 지목된 물건이 그의 움막 가까이에서 발견되었으니 모든 정황이 하나의 원을 그리며 문둥병자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이러한 시장을 작성할 때, ‘간증(干證)’이란 것이 있다. 사건을 목격하였거나 주위에 있는 일종의 증인같은 신분인데, 임원철 사건의 간증자는 놀랍게도 허달호였다. 직업은 죽기 전과 마찬가지로 ‘무(無)’였다. 없다는 뜻이다. 초검관은 사건이 일어난 지역의 관장이니 당연히 유천기였고, 그는 당시 사건에 대해 기억하는 바가 있었다.

“본관이 지방 관아를 떠돈 지 여러 해 되었네만, 임원철 사건만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소이다. 사건 자체보다 그 자가  보내온 서찰이 그렇소.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모든 재산을 배다른 누이에게 건네는가 하면 어린 아들에겐 한 푼도 남기지 않고 동자승을 만든 이유를 모르겠다니까. 그렇듯 모진 마음이 어떻게 생긴 걸까.”

유천기는 시장을 들여다보고 있는 탁일환 쪽을 힐끔거리며 덧붙였다.

“모든 건 시장에 쓰인 그대로네만, 임원철의 주검은 이틀이 지나 때마침 그곳을 지나던 허달호에게 발견돼 감영에 알리게 됐었네.”